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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이 '영린이' 탈출하려면?…"대사 잘 안 들리면 저 같아도 꺼버려요"

코로나19 재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공연장에 청중이 모이기 점점 힘들어지면서, 공연단체들은 점점 더 영상화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말로만 듣던 영상화… 어떻게 해야 할까? 평소 모든 작업이 무대 위에 공연을 올리는 것에 맞춰져 있던 공연단체가, 어느날 갑자기 영상화 작업을 하려면 시작부터 부딪히는 난제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무슨 카메라 쓰는 어떤 사람을 얼마나 불러야 하지? 답 없는 질문 투성이가 된다.

재단법인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운영하는 '공연예술 국제교류 정보플랫폼' <더 아프로(the Apro)>가 SBS보도본부 팟캐스트 <커튼콜>과 함께 이 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했다. 총 5회에 걸친 전문가 심층토론 중 3회차의 주제는 <공연예술 영상의 제작>. 실제 공연영상 제작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들에게서 영상화 작업의 노하우를 들어보았다. SBS보도본부 정책문화팀 김수현 선임기자의 진행으로 신태연 예술의전당 영상제작 PD ('싹온 스크린' 총괄), 지민주 국립극단 공연기획팀장, 김수기 디지컴코리아 엠앤엠 (영상제작업체) 대표가 참여했다.

1시간 40분에 걸친 토론내용을 둘로 나누어 요약, 소개한다. 이 기사는 토론의 전반부를 다룬다.

커튼콜 리사이징

● 공연을 영상으로 옮겨야겠다면…실제 단계는?

김수현 : 공연계가 사실 영상화 작업에 익숙하지 않다. 코로나19 상황에 갑자기 영상화를 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는 형국인데… 실제 경험을 해보니 어떤지?

지민주 : 국립극단도 7개 공연을 취소해야 했다. 우리는 민간 연극인들이 들어와서 공연을 하는 시스템이다보니, 공연을 취소하면 그분들이 생계까지 막막해진다. 우리가 영상화를 적극 추진한 건, 그분들이 덜 힘들어지도록 하려는 생각이 컸다. 그런데, 막상 해 보니 우리는 "영린이 (영상화) 어린이" 수준이라 어려움이 많다.

신태연 : 예술의전당 '싹온(SAC ON) 스크린'은 원래 문화소외계층이나 지역에서 함께 공연을 보는 체험을 만들어주기 위해 2013년에 시작했다. 지방의 문예회관, 작은 영화관, 학교, 군부대 같은 곳에서 스크린에 상영하고 함께 보는 것이다. 그런데 올해 코로나 19가 터지면서 온라인 상영도 하게 됐다.

김수현 : 공연을 영상으로 옮기려면 막상 무엇부터 해야 하나 막막할 것 같다. 카메라 몇 대 불러야 되는거지? 그런 것부터 궁금할테고…

신태연 : 싹온 스크린 ('싹'은 예술의전당-Seoul Arts Center-의 약자)의 경우, 1년 전부터 다음 해에 무엇을 찍을 지 작품 라인업 검토를 한다. 영상으로 찍을 작품이 정해지면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할 것은 저작권과 출연진 초상권 등에 대한 권리 협의다. 이게 제일 까다롭다. 공연하는 극단과 "통으로" 계약하면 그나마 수월하다. 그 공연단체가 개별 출연자들, 저작권자들과 계약 문제를 풀어줄 수 있는데, 예술의전당 직접 기획일 때는 하나하나 풀어가야 한다. 영상물이 무료배급되느냐 유료로 배급되느냐도 영향을 준다. 무료배급 할 때는 초상권료와 저작권료가 줄어들 수가 있는데, "어, 이걸로 너네가 돈 번다고?" 이렇게 돼 버리면 개런티를 많이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조건이 굉장히 다양하다. 이거 해결하는 게 1번이다.

그 다음, 제작 기간의 일정표를 만들어야 한다. 언제 무엇을 어떻게 찍을지, 언제까지 후반작업을 마무리하고 결과물을 낼 지 세부 계획을 짠다. 그러면 예산을 짜는데, 이 단계에서 촬영팀 구성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카메라를 몇 대나 쓸지, 특수장비는 어느 만큼 쓸지, 촬영팀 구성을 어떻게 할 지에 따라 예산 규모가 달라진다. 대체로 영화팀은 방송팀보다 단가가 비싸다.
프로덕션 팀이 꾸려지면 실제 촬영을 한다. 처음엔 '싹온 스크린'도 리허설이나 프레스콜(보도진에게 미리 공연을 공개하는 것) 때 촬영을 했는데, 그렇게 해 보니 영상감독이 작품을 공부할 시간이 없더라. 요즘은 공연 올라가는 일정의 후반 날짜에 찍는다. 그때 쯤 되면 공연하는 배우들도 호흡이 척척 잘 맞고 영상감독도 공연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촬영이 더 수월해 진다.
촬영이 끝나면 데이터 변환, 색 보정, 음향작업 등을 통해 영화관에서 상영할 수 있는 품질로 만든다. 공연을 라이브로 중계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전에 권리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라이브의 경우 '어떤 플랫폼으로 송출할 것인가?'를 고려해서 프로덕션 팀을 꾸린다. 결과물이 잘 나왔다 싶으면, 그걸 재가공해서 별도의 영상물을 만들기도 한다.

● 찍는 사람이 작품을 사전에 공부할 수 있게

김수현 : 공연 촬영 들어가게 되면 작품 공부를 많이 하시는지?

김수기 : 촬영에 앞서 '콘티'를 많이 그려 봐야 한다. 카메라 대수가 많아질수록, 각각의 역할을 정확하게 부여하지 않으면 무대에서 동시다발로 벌어지는 일들을 제대로 잡아낼 수 없다. 영상을 연출하는 감독의 학습도 중요하지만, 각각의 카메라맨들에게 어떤 역할을 부여하고 어떤 앵글을 잡아내도록 할 것인지 서로 학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다.

신태연 : 그래서 촬영팀도 사전에 몇 번씩 공연을 보도록 한다. 공연 촬영은 한정된 시간에 끝내야 하는 작업이다. 다수의 카메라가 들어가서 한번에 최대한 많은 화면을 뽑아내야 한다. 공연을 여러 날 하면 계속 찍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첫날과 둘째날 배우의 호흡도 다르고 말투도 달라진다. 나중에 보면, 서로 다른 카메라맨이 같은 컷을 찍어놓은 경우도 많다. 그런 중복을 방지하기 위해 촬영 중에도 무전으로 서로 체크하고, "몇번 카메라, 뭐 잡아주세요" 하는 식으로 계속 조정한다.

● 객석에서 느끼는 현장감, 영상으로 전달하려면…

지민주 : 코로나로 인한 영상화를 하면서, 처음엔 관객이 없는 상태에서 공연을 찍었다. 그랬더니 배우들이 에너지를 못 받더라. 공연관계자들도 '관객이 가득 들었을 때의 그 열기가 살아있지 않다' 고 걱정을 했다. 어려운 딜레마였다. 코로나19로 인해 관객을 못 받는데, 관객이 있어야 공연의 에너지가 산다니… 결국 관계자들로 '관객단'을 꾸려서, 사전에 방역 조치를 철저히 한 뒤 '제한된 유(有)관객'으로 촬영을 했다. 확실히, 관객이 아예 없는 것과는 다르다고 배우들이 얘기하더라.
그런데 실제 객석에서 들을 때, 영상물 시청하는 것보다 대사가 훨씬 잘 들리지 않나. 온라인으로 보시는 분들께 어떻게 하면 대사를 더 잘 들려줄까 고민하다가, 객석 통로에 마이크를 놓았다. 그랬더니 실수로 조금만 사람들이 다녀도 그 소리가 다 소음으로 잡혀서 득보다 실이 더 컸던 경험이 있다. 실제 영상작업 경험이 많은 분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김수기 : '영상화'라는 단어에는 빠져있지만 사실 '음향'이 굉장히 중요하다. 실제 전문공연장에서 사람들이 받는 감동의 상당 부분은 '소리'에서 온다. 주변음 또는 앰비언스(ambience) 라고 하는 이런 요소들이, 실제 공연장에서는 듣고 싶지 않아도 사방에서 들려오지 않던가? 그런 부분이 굉장히 큰 임팩트를 만든다. 영상을 찍을 때도 적절한 위치에 앰비언스 마이크를 설치해서 공간음을 적절히 담기 위해 노력한다. 저희가 참여한 뮤지컬 <모차르트>의 경우, 관객석의 환호와 박수를 잡으려고 관객석으로 지향한 마이크를 쓴 바 있다. 소극장에선 마이크를 위에서 떨어뜨려서 공간음을 확보한다든지.. 공연장 구조와 상황에 맞게 다양한 마이크 기법을 사용한다. 결국 공연 영상화라는 것이, 현장에서 보는 '맛'을 살려주는 작업 아닌가? 그런 노력이 건조한 영상을 좀 더 촉촉하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

● 보이는 것보다 어쩌면 '들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신태연 : 동의한다. 요즘 유튜브나 네이버 등을 통한 공연 온라인 중계가 많은데,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 소리가 분명하게 안 들리면 진짜 답답하다. 5분도 못 견디고 끄게 된다. 영상화의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춤만 추는 발레나, 기본적으로 출연자가 마이크를 다 차는 뮤지컬의 경우는 이런 문제가 별로 없는데, 문제는 연극이다. 연극은 본래 배우가 육성으로 대사를 하는 것이지 않나. 마이크 차라고 하면 반감 표시하는 배우들도 적지 않다. 연극을 '싹온(SAC ON) 스크린'으로 옮길 때 이 문제로 고민이 많았는데, 전부 핀마이크를 차지 않으면 우리 스크린에 못 올린다고 지금은 정리가 됐다. 화면에 좀 보이더라도, 배우들이 모두 핀마이크를 차는 게 수음(소리를 전기신호로 받아들여 기록함)을 위해 맞다. 배우들이 마이크에 익숙해지도록 하기 위해, 촬영 3~4일전부터 마이크를 차고 연습 또는 공연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소리가 잘 잡혀 있으면 카메라 한 대로 풀샷만 보여줘도 감상에 큰 무리가 없는데, 무슨 소리인지 제대로 들리지 않으면 나 같아도 좀 보다가 꺼버리게 된다.

지민주 : 과도기가 필요한 것 같다. 연극인들 상당수는, 연극이 갖고 있는 본연의 가치가 손상될 수도 있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 가면서 영상화를 해야 하느냐는 반감을 표시하기도 한다. 연극 보러 간다는게 사실 상당히 귀찮은 일이지 않나. 차려 입어야지, 가야지, 좁은 데서 숨죽이고 봐야지… 그럼에도 공연장을 가면, 공연에 관객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여백이 많다. 그만큼의 가치가 있으니 가는 것이다. 그런데 영상화가 되면, 어떤 상황에 있는지 모르는 누군가의 단말기에서 다른 모든 맥락이 제거된 채 콘텐츠만 달랑 보여질 거라는 두려움이 연극인들에게는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영상화를 거부한다고 안 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기 위해 더 많은 설득과 노력이 필요하다.

● '무대'와 '영상'의 타협점 찾기

김수현 : 음악회의 경우는 영상화 하자고 하면 어떤 반응인지?

신태연 : 영상으로 찍자고 하면 좋아하는 분위기다. 어차피 한 번 연주하는 거 그때 딱 찍는 거니까. 클래식 음악회의 경우 확실히 청중이 있을 때 더 좋다. 관객의 분위기, 앰비언스.. 그런 것들도 생각보다 재미있게 나온다. 공연하시는 분들 중엔, 카메라가 있으면 더 흥이 나는 분들도 있다. 그런 분들에겐 카메라가 어디 어디 있으니까 그거 보시면 된다고 알려드리기도 한다.

김수현 : 그런데, (연극의 경우) 공연하는 배우의 시선도 연출의 대상인데, 배우가 카메라를 보면 연출의 원래 의도와 달라질 수도 있지 않나?

김수기 : 영상화(-化)는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일을 영상으로 옮기는 것이다. 본질은 무대 위의 공연이다. 관객이 현장에서 볼 법한 공연과, 촬영 결과물로서의 영상에 어느 정도 동질성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공연 감독과 영상 감독의) 협업에 의해 새로운 크리에이티브가 가미된 작품이 나올 수는 있겠지만.
다만, 영상을 보시는 분에게 무대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을 전부 그대로 전해줄 수는 없다. 영상물이라는 특성상, 카메라가 찍는 것을 보여드릴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존재한다. 그래서 '찍는 자'의 책임감을 느끼기도 한다. 영상화를 준비하면서 작품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이유다. 작품의 본질을 잘 지켜야, 영상으로 보신 분들이 나중에 무대로 돌아올 것이다.

지민주 : 실제로 작업을 해 보니, 무대연출 중에는 '영상화'는 공연 모습을 "그대~로" 담는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적지 않더라. 아직까지는 공연 연출진과 영상 찍는 감독 양측 사이에 창작의 권한을 약속하고 합의한 바 없다보니, 어디까지 서로 존중하며 권한을 나눠야 할지 애매하던데…

김수기 : 제 경우는 무대 연출의 의도에 대해 제가 잘 모르겠다 싶은 부분은 물어본다. 영상을 이렇게 만들겠습니다, 이 부분은 영상에서 어떤 점을 강조하겠습니다 등의 계획을 브리핑 드리고 동의를 받는다. 무대 위의 공연과 영상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은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는데, 그 합의점은 제작과정에서 반드시 필터링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무대 위 공연의 본질도 사라지고 영상의 매력도 사라진,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고 무엇도 건질 수 없는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다.

김수현 : 공연예술 영상화 토론 첫 회에 연극평론가 조만수 교수가 이 부분을 지적한 바 있다. 공연연출과 영상연출 사이의 중재자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신태연 : 실제로 어렵다. 공연 연출하시는 분들 중엔 영상은 나는 모르겠다고 하시는 경우가 많고, 영상을 이렇게 저렇게 해 주면 좋겠다고 미리 의견 주시는 경우도 거의 없다. 보통은 연출가의 의도를 물어보고 중시하지만, 영상도 편집점이 틀어진다거나 영상의 템포가 죽는다거나 하면 안되니까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공연연출의 뜻대로만 끝까지 밀어붙이면 이상한 영상물이 나올 수도 있다.

김수기 : 어느 단계에서 협업하느냐에 따라 품질이 달라진다. 영상 결과물 나온 다음에 시사회 하면 이미 강 건넌 뒤일수도 있다. 제작 행태가 대체로 '아웃소싱'이고 최근에는 영상화가 급하게 이루어지는 경우도 잦다 보니, 공연측과 영상측 사이에 이견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제 경우는 리허설부터 들어가서 촬영해보면서 작품의 동선과 해석을 공부하려 한다. 그보다 전단계에서 들어갈 수 있으면 더 좋고.

지민주 : 제작의 입장에서 보면 그게 다 사실은 예산인 거다 (일동 웃음). 그만큼 더 드려야 하는거고, 중간에 조율하는 사람을 쓰는 것 조차도 다 새로운 예산이 필요하다보니, 어렵다. 국립극단이 연극 만드는 단체 치고는 큰 편인데도….. 선택과 집중을 할 필요가 있는데 지금까지는 영상은 집중의 대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제는 자원 배분을 새롭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2부에서 계속)

● 이 토론의 전문은 SBS 골라듣는 뉴스룸 팟캐스트 <커튼콜> 코너에서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SBS뉴스 홈페이지 또는 네이버 오디오클립, 팟빵, 애플팟캐스트, 팟티, 구글팟캐스트 등 다양한 팟캐스트 플랫폼을 통해 제공됩니다. 유튜브와 SBS뉴스 홈페이지, 예술경영지원센터 홈페이지 등을 통해 동영상도 제공될 예정입니다.
* 유튜브로 영상 보기  https://youtu.be/uywy68sOVok

● 토론회 제작지원 : 재단법인 예술경영지원센터     

(기획 : 허윤석 / 총괄 : 이현식 / 녹음 : 하지윤 / 촬영 및 편집 : 이홍명, 황현정 / 타이틀 그래픽 : 김신규 / 주최 및 주관 : 예술경영지원센터 ‘더 아프로(The Apro)’)

▶ [다음 토론회 보기] 영상 찍는 공연 도중 배우가 넘어졌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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