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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비행기 멈추자 쫓겨나는 사람들, "죽든지 말든지 내던져진 것 같아요"

감염보다 무서운 '해고'… 노동계 "한시적 해고 금지 도입해야"

대한항공 청소노동자 탄원서 (제희원 취파용)

대한항공 항공기 기내 청소노동자 50여 명은 작업 도구를 손에 놓은 지 벌써 한 달이 넘었습니다. 지난달 5일 회사가 갑자기 이들에게 해고를 통보했기 때문입니다. 대한항공 자회사의 하청업체 ㈜EK 맨파워 소속인 이들은 대부분 생계를 책임지는 50~60대의 여성 노동자들입니다. 운항 편수 급감으로 인한 위기를 연차 소진과 무급 휴직으로 함께 헤쳐 나가자는 약속은 온데간데없이 회사는 정리해고를 단행했습니다. 기내 청소로 받던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마저도 끊기면서 이들은 당장의 생계가 막막합니다. 기내 청소노동자들은 스스로가 '최말단 노동자'이자 '하청의 하청'이라 더 쉽게 잘렸다고 말합니다.

인천공항 옆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외국인 손님들에게 리무진 서비스를 제공하는 운전원 21명도 지난달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호텔과 도급 계약을 맺은 용역업체 ㈜서빅 소속인 운전원들은 고통 분담 차원에서 당분간 돌아가며 무급 휴직을 쓰기로 약속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돌연 회사는 계약을 해지했습니다. 대부분 40대 중반인 이들도 당장 생계가 아득합니다. 재취업도 쉽지 않습니다.

● '해고 낙인 탓' 재취업도 못 해… 항공업계는 지금 '게릴라식 해고' 확산

코로나19발 경제 위기는 역시 가장 약한 고리부터 파고들었습니다 . 연차와 무급 휴가 강요에서 점차 권고사직과 해고 수순으로 '실업 대란'은 확산하고 있습니다. 민간 공익단체 직장갑질119가 3월 한 달간 접수된 제보를 분석한 결과, 총 3천410건의 제보 중 코로나 갑질 제보가 1천219건으로 37.3%를 차지했습니다. 무급 휴가(무급 휴직, 무급 휴업)이 483건(39.6%), 불이익 253건(20.8%), 해고·권고사직이 214건(17.6%), 연차 강요 99건(13.9%), 임금 삭감 99건(8.1%) 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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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 청소 노동자 50여 명, 정리 해고 통보

눈에 띄는 점은 해고나 권고사직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단 겁니다. 영종도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는 요즘 항공업계에서 해고가 '게릴라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고 말합니다. 오늘은 청소원, 내일은 공항 식당 조리원 순서로 동료들의 해고가 확산하고 있다는 겁니다. 정리해고는 근로기준법 제24조의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의 제한' 요건을 충족해야 하지만, 사용자가 이를 지키지 않는 일도 요즘엔 비일비재합니다. 불법과 편법의 줄타기도 만연합니다. '회사 사정이 좋아지면 다시 채용할 테니 일단 사직하고 실업급여를 받고 있으라'고 노동자에게 권고사직을 강요하는 방식은 이 동네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 칼바람은 가장 밑바닥부터…노동자 빠진 '정부 지원'

노동자들은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다고 말합니다. 정부의 특별고용지원 업종에 항공업과 관광숙박업 등이 포함됐지만, 정작 피부에 와 닿는 혜택을 전혀 못 보고 있다는 겁니다. 사용주는 최소한의 지출마저도 거부하며 비용 절감을 택하면서 권고사직이나 해고를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심지어 협력업체나 파견업체는 아예 특별고용지원 대상에서 빠져있습니다. 항공업은 특별고용지원 업종에 포함되지만, 항공사의 협력사나 하청업체는 항공업으로 분류되지 않아 지원 업종에서 제외됐습니다. 인천공항 노동자들의 절반 가까이는 협력업체 소속인 현실에 맞지 않습니다. 고용유지 지원금은 그림의 떡인 셈이지요. 그야말로 탁상행정이 만들어 낸 결과입니다.

● 해고 쓰나미 막아야… 노동계 "재난 상황 해고 금지"

코로나19 확산은 주춤해지고 있지만,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실직 공포는 눈앞의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노동계에서 이들의 절규가 더 커지기 전에 한시적 해고 금지와 고용 유지로 '코로나 해고'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실제 프랑스는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를 금지했고, 이탈리아 역시 60일간 모든 형태의 해고를 금지했습니다. 네덜란드와 미국은 항공사와 하청업체에 고용지원금을 주는 대신, 해고 금지와 임금 수준 유지 의무 조건을 달았습니다. 노동계는 △재난 상황에서 해고 금지 △해고 금지를 전제로 한 기업 지원 △간접고용 노동자 해고 관련 대책 마련과 고용 유지 지원금 사각지대 해소 △'해고제한법' 도입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100조 원 규모의 기업 구호 긴급자금 투입 계획을 밝히면서 기업을 살려 국민들의 일자리를 지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이 공허한 외침이 되지 않으려면 당장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해고부터 막아야 합니다. 노동자와 사용주가 상생 방안을 찾는 기업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그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기업들의 고용 유지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외환위기 때의 아픈 경험을 상기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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