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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빌린 장대'로 한국 新…진민섭 "도쿄에선 새 역사 써야죠"

[취재파일] '빌린 장대'로 한국 新…진민섭 "도쿄에선 새 역사 써야죠"
한국 장대높이뛰기 '간판' 진민섭(28)이 올 시즌 출전한 첫 대회부터 거침없이 날아올랐습니다. 5m 80cm. 지난 1일, 호주 뉴사우스웨일즈에서 열린 뱅크타운 대회에서 자신의 한국 기록을 5cm 경신했습니다. 올 시즌 세계 4위 기록으로 도쿄올림픽 본선행을 확정하자 밖에서 지켜보던 김도균(41) 코치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진민섭에게 달려가 얼싸안고 환호했습니다. 이 장면에는 숨은 사연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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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기 : 진민섭, '빌린 장대'로 도쿄행 쾌거…목표는 결선 진출

알고 보니 값진 기록을 세운 기특한 장대가 진민섭 선수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도쿄올림픽에 대비해 호주와 미국 전지 훈련을 준비한 진민섭과 김도균 코치는 이달 초 출국 현장에서 뜻밖의 난관을 만났습니다. 길이가 5m 20cm에 이르는 장대를 시드니행 비행기에 실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항공사 임원까지 나서 어떻게든 국가대표 선수의 장도(長途)를 도우려 애썼지만 시드니 공항에서 난색을 드러냈습니다. 자동화 물류 설비로는 일반 화물 컨테이너에 실리지 않을 정도로 긴 장대를 취급할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결국 진민섭은 자신의 장대를 2차 훈련지인 미국으로 선박에 실어 보내고, 맨몸으로 호주로 향했습니다. 김 코치는 호주에 도착하자마자 수소문에 나섰습니다. 아무 장대나 빌려 쓸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장대의 길이와 탄성은 선수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장대가 길수록, 또 탄성이 클수록 높이 뛰는 데 유리하지만 그만큼 근력과 기술이 더 필요합니다. 딱 맞는 장대를 구하지 못하면 훈련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김 코치와 현역 시절 인연이 있는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스티븐 후커(38·호주)가 비슷한 장대를 갖고 있었습니다.

여기서도 문제는 있었습니다. 하나는 거리였습니다. 호주 국가대표 출신 후커가 있는 곳은 시드니에서 1,500km가 떨어진 노스 애들레이드 인근이었습니다. 또 그 장대는 1998년에 제작된 오래된 것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김 코치는 직접 차를 운전해 호주 횡단에 나섰습니다.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왕복 3,000km. 48시간이 넘는 여정이었습니다. 22년 된 장대가 혹시나 부러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지만 진민섭은 겁 없이 뛰었습니다. 김 코치에겐 자신의 일처럼 기뻤던 순간이었습니다. 호주에서 훈련을 이어가고 있는 진민섭과 김도균 코치를 화상으로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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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m 80cm를 넘은 뒤, 김도균 코치가 경기장에 난입(?)했던데, 그래도 괜찮나요.
진민섭(이하 진) : 원래는 안 되죠. 코치님도 정말 기뻐서 달려오신 것 같아요. 이번이 새해 첫 시합이라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라 더 감정이 폭발했던 것 같습니다. 지켜보시던 심판들도 웃으시더라고요.
김도균(이하 김) : 5m 80cm를 넘는 건 시간 문제라고 생각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꿈꾸던 기록이고, 또 도쿄 올림픽 기준 기록을 통과해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생각에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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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그 장대가 빌린 장대라면서요.
진 : 호주로 올 때 아예 비행기에 싣지를 못했어요. 항공사에서도 정말 애써 주셨는데 시드니 공항에서 안 된다는 거예요. 걱정을 많이 했죠. 이런 적은 처음이라서.
김 : 오자마자 장대부터 알아봤죠. 민섭이가 지난해부터 장대를 바꿨어요. 기존에 쓰던 5m 10cm보다 10cm가 더 긴 장대에 적응을 거의 마쳐가던 단계여서 최대한 비슷한 걸 찾으려 했죠. 다행히 후커가 가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바로 운전대를 잡았죠. 장대가 있다는데 왕복 3,000km가 뭐 대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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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메달리스트의 장대이고, 새 기록도 세운 장대인데, 후커에게 사야 하는 거 아닌가요.
진 : 22년 된 장대이더라고요. 그것도 큰 걱정이었어요. 혹시나 오래되어서 부러지면 다칠 수도 있고요. 마침 저랑 잘 맞아서 좋은 기록이 나오긴 했지만 언제 부러질지 모르니까 사는 건 좀. (하하)

▶ 티켓을 확보했으니, 이제 도쿄까지 계획이 어떻게 되나요.
진 : 이제 시작이죠. 세계적인 선수들과 계속 부딪혀 보려고 합니다.
김 : 기복을 줄이는 게 중요합니다. 꾸준한 기록을 내는 단계가 되면 올림픽에서도 충분히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습니다. 이번 호주와 미국 훈련의 목적입니다.

▶ 좋은 성적이라면, 구체적인 목표가 뭔가요.
진 : 5m 90cm입니다. 무조건 넘을 수 있게 만들겠습니다.
김 : 리우 올림픽 동메달 성적이 5m 85cm입니다. 5m 90cm를 넘는다면 사상 첫 결선 진출은 물론이고 메달도 노려볼 만합니다. 물론 10cm를 더 높이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진 : 맞아요. 하지만 5m 80cm를 목표로 했다면 장대를 5m 20cm짜리로 바꾸지도 않았을 겁니다. 지난해만 3차례 한국 기록을 새로 썼고, 올해 첫 대회부터 5m 80cm를 넘으면서 딱 열 달 만에 기록을 10cm 올렸습니다. 자신 있습니다.

▶ 그러려면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나요.
진 : 지금보다 더 탄성이 강한 장대로 바꿔보려고 합니다. 그만큼 강한 근력이 필요하겠죠.
김 : 장대높이뛰기는 종합 스포츠입니다. 스피드, 근력, 기계체조 감각 등이 모두 어우러져야 합니다. 조금씩 다 보완해야 합니다.
진 : 도쿄올림픽 때 경기장에 비가 오든 태풍이 오든, 저는 다 뚫고 나갈 자신이 있습니다. 동메달 이상을 얻어오는 게 목표입니다.

▶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확산 중인데, 훈련에 어려움은 없나요?
김 : 진천 선수촌은 안전하게 관리가 되고 있고, 대한육상경기연맹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해외 전지 훈련을 계획대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문제없습니다.
진 : 다시 한번 육상연맹에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최선을 다해 훈련하겠습니다. 바이러스와 싸우는 국민들께 위안이 되었으면 합니다. 앞으로 계속 좋은 소식 들려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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