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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장석 옥중경영' 조사 발표 임박…KBO의 선택은?

이장석 전 대표이사
KBO의 '이장석 옥중경영 파문' 조사가 빠르면 이번 주에 마무리될 전망이다. 법조인, 전직 경찰, 회계사 등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조사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한지 무려 석 달 만이다. 프로야구 출범 이래 단일 사건에 대해 이렇게 긴 시간의 조사가 이뤄진 경우는 없었다. 중대하고 복잡하면서, 향후 리그에 큰 변화가 생길 수 있는 사안이기에 KBO 조사위는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위가 결과 보고서를 제출하면 상벌위원회가 관련자들에 대한 징계 수위를 결정한다. 아울러 KBO가 이장석 씨의 경영 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별도의 방안을 내놓을 지도 관심이다. KBO가 2년 전, 이장석 씨를 실질적으로 추방할 첫 번째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 2년 전, 첫 번째 기회를 놓친 KBO

이장석 씨는 2018년 2월 1심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재미교포 투자자 홍성은 씨에게 넘겨줘야 할 지분 40%를 주지 않은 사기죄는 이미 야구팬들에게 익숙했지만, 재판부가 유죄로 인정한 다른 죄목들은 충격적이었다. 허위 거래, 임대보증금 빼돌리기, '상품권 깡' 등 다양한 방법으로 거액의 구단 돈을 횡령했고, 비자금을 조성했으며, 회사 돈을 지인에게 룸살롱 인수 자금으로 대여해주는 등 사적 이익을 위해 사용했다. 재판부는 이장석 씨가 히어로즈 구단에서 빼돌린 액수가 48억 원에 달한다고 판결했다.

구단주가 구단의 돈을 빼돌려 제 호주머니를 채운 범죄는 세계 프로야구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 선수를 포함해 현직 프로야구계 인사가 실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갇힌 경우도 매우 드물다. 박현준, 김성현, 이태양, 문우람 등 세상을 뒤흔든 '승부 조작범'들은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KBO는 이 선수들을 모두 영구 실격 처분하고 야구계에서 쫓아냈다. 이장석의 죄는 이들보다 훨씬 중했다. 당연히 이장석에 대한 KBO의 제재는 더 단호해야 했다.

2018년 11월 KBO가 이장석에 대해 내린 영구 실격 및 '경영 개입 금지' 조치는 표면적으로 강력해 보였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한계가 뚜렷했다. 조치를 강제하고 실행 여부를 감시할 장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투옥된 이장석 씨가 마음만 먹으면 여전히 구단을 장악하고 있는 최측근들을 통해 얼마든지 구단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
박준상 전 대표이사
대표적인 인물이 박준상 전 대표이사와 임상수 구단 자문 변호사다. 2018년부터 히어로즈의 대표이사를 맡은 박준상 씨는 이장석 씨가 컨설팅업계에 종사하던 시절부터 이 씨를 '인생의 멘토'로 섬기며 따랐던 선후배 관계로 알려져 있다. 임상수 변호사는 대형 로펌에서 일하던 2014년쯤부터 이장석 씨와 인연을 맺었고, 히어로즈 구단으로 연수를 올 정도로 인연이 깊어졌다. 이후 소형 법무법인으로 옮겨 이장석 씨와 히어로즈 구단 업무를 도맡아 왔다. 임 변호사에 대한 이장석 씨의 신임은 절대적이었다. 히어로즈 임직원들은 이장석 씨가 떠난 구단의 최고실권자는 박준상 대표가 아닌 임 변호사라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임 변호사는 이장석 씨가 서울 구치소에 있던 시절 매일같이 면회를 다니며 구단 상황을 보고하고 지침을 받아 구단에 지시했고, 상주교도소로 옮긴 뒤에도 수시로 면회를 다닌 것으로 파악됐다. 임 변호사는 지난해 4월 KBO의 마케팅 대행사인 KBOP에 히어로즈를 대표하는 이사로 등록하려 시도했다가 KBO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KBOP 이사회는 구단당 1명씩의 이사로 구성된다. 보통 단장, 혹은 마케팅 팀장이 맡는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이장석 씨의 최측근인 박 대표와 임 변호사가 과연 이 씨로부터 독립적으로 구단을 경영할까? KBO의 '영구 실격-옥중 경영 금지' 조치는 문제의 해결보다는 의문의 시작에 가까웠다.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는 데는 채 1년이 걸리지 않았다.

● '구단 돈이 내 돈' 이장석과 똑같았던 측근들의 행태

지난해 9월부터 여러 매체들이 보도한 히어로즈 구단의 경영 실상은 충격적이었다. 박준상 대표와 임상수 변호사는 KBO의 명령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장석 씨의 뜻을 충실하게 받들어 구단을 운영했다. 스폰서 계약, 선수단 운용, 임직원 인사 등 구단 운영의 세세한 부분까지 이장석에게 보고하고 재가를 받아 이뤄졌다. 이들 밑에서 일한 많은 구단 임직원들이 구단 상황을 면회 혹은 서신을 통해 이장석에게 보고하고 지시를 받았다. 녹취 파일에 담겨 보도된 "걸리면 퇴사하면 된다"는 박준상 씨의 육성은 이들이 KBO의 명령을 얼마나 우습게 여겼는지를 잘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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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놀라웠던 것은 이들이 구단으로부터 받아간 이해할 수 없는 거액이었다. 박준상 대표이사의 연봉 5억 원과 판공비 월 2천만 원은 단연 업계 최고 수준이었다. 임상수 변호사는 월 평균 6천만 원이 넘는 법률 자문료를 구단으로부터 받아갔다. 다른 9개 구단의 1년치 법률 비용보다 많은 돈을 달마다 가져간 것이다. 선수단 처우는 리그 최악인데, 이장석의 최측근들은 돈 잔치를 벌였던 것이다.

또 최근에는 임 변호사가 구단 자문 변호사로 있는 동안 이장석 씨 개인 사건도 여러 건을 수임한 의혹이 드러나기도 했다. (SBS가 입수한 자료들을 근거로 수임 이유를 물었지만 임 변호사는 몇몇 사건들을 수임하지 않았다며 부인했다) 임 변호사가 수임한 것으로 보이는 이장석의 개인사건 대부분은 히어로즈 구단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이장석 씨는 거액의 구단 돈을 빼돌려 히어로즈 구단에 피해를 끼친 범죄자다. 구단 변호사가, 구단에 피해를 끼친 범죄자의 변호를 맡은 것이다. 임 변호사는 2018년 3월, 히어로즈 구단에 '구단의 이해와 상충되는 이장석 개인 사건을 수임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보내기도 했다. 이후 행동과는 정반대 내용의 각서를 쓴 이유를 묻는 SBS의 질문에 임 변호사는 답을 하지 않았다. 또한 위 사실을 현 구단 경영진에게 보고했는지도 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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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합리적인 의문이 두 가지 생긴다.
1. 과연 이들은 자신들의 '주군'인 이장석 소유의 회사 돈을 이장석 몰래 챙겼을까? 이 돈의 흐름은 이장석과 관련이 없을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수사 당국의 강제 조사가 필수적이다. KBO가 조사 과정에서 발견한 근거들을 더해서, 반드시 이들을 당국에 고발해야 하는 이유다.

2. 이장석의 최측근들이 영입한 허민-하송은, 과연 '히어로즈 경영 감시자'일까?
구단 돈을 작정하고 챙기고 리그의 명령을 대놓고 무시하려는 사람들이, 과연 자신들을 엄정하게 감시할 사람들을 끌어들였을까? 허민 위메프 창업주와 하송 현 대표이사가 히어로즈에 입성한 뒤 보인 행태는 이 의혹을 더욱 짙게 만든다.

● 허민-하송 콤비 : 최소한 방조자, 아마도 '대리 경영자'

사실 이장석 최측근들의 행태는 더 일찍 드러나거나 예방될 수 있었다. 지난해 1월, 법원은 히어로즈 구단의 감사를 선임할 주주총회를 열라는 소수주주들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다. 히어로즈의 감사 자리는 2년 가까이 비어있었다. 한 히어로즈 임직원은 "아무도 맡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감사는 경영 비위를 알고도 덮으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이장석과 측근들의 비리로 가득한 히어로즈의 감사를 맡는다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었을 거다.

법원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게 된 히어로즈 구단은 작년 3월, 감사 선임을 위한 주주총회를 소집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꼼수를 부린다. '감사 선임 주총' 한 시간 뒤에, '감사 해임 주총'을 연 것이다. 히어로즈의 주주 총회는 당연하게도 전체 주식의 67%를 보유한 이장석의 뜻대로 결정이 이뤄져왔다. 즉 이장석은 감사 선임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즉 회사의 속내를 절대로 들키지 않겠다는 의지를 명확하게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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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태를 알게 된 KBO는 히어로즈에 경위 설명을 요구했다. 여기서 히어로즈 구단은 뜻밖의 방안을 제시한다. 이장석과 다른 주주들의 입장이 팽팽하게 대립되는 감사 직책을 없애고 사외이사로 구성된 '감사위원회'를 설치해 경영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것. 감사위원회는 2018년 12월 사외이사로 등장한 허민 위메프 창업주와 최측근 하송 씨, 그리고 2018년 8월 사외이사로 등장한 변호사 1명으로 구성됐다. 사실상 허민 씨가 감사 기능을 장악한 것이다.
하송 현 대표이사
감사위원회는 제대로 기능만 한다면 해결책이 될 수도 있을 듯했다. 문제는 '허민-하송 콤비'와 '이장석 측근들'의 관계였다. 2018년 12월 허민을 이사회 의장으로 앉힌 히어로즈 이사회는 박준상 대표를 비롯해 고형욱 상무, 박종덕 관리팀장 등 이장석 씨의 최측근들인 히어로즈 임직원들로 구성돼 있었다. 즉 이장석이 이사회를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이사회가 끌어들인 허민-하송 콤비가 과연 이장석을 감시-견제할까? 허민-하송이 만든 감사위원회는 제 역할을 할까? 어쩌면 이들은 구단 경영이 정상화되고 있다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얼굴 마담'은 아닐까?

이후 이들의 행태는 이런 의혹을 더욱 강화했다. 3월에 설치된 감사위원회는 박준상 대표의 과다 급여-임상수 변호사의 과다한 법률 자문료 문제 등에 대해 9월까지 아무런 실질적 조치를 하지 않았다. 하송 당시 감사위원장은 SBS의 질의에 "임 변호사가 가져가는 자문료가 과다하다고 생각해 월정액 대신 자문 건당 계산 방식으로 계약을 바꿨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임상수 변호사가 가져간 돈은 이전과 별 차이가 없었다. '옥중 경영' 의혹에 대해서는 "의심은 했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SBS를 비롯한 여러 매체들이 확보해 보도한 녹취 파일에 따르면 하송 씨는 구단이 이장석의 뜻대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지난 4월에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허민-하송 콤비는 이장석의 옥중경영도, 이장석 최측근들의 '구단 수탈'도 방치한 것으로 보인다.
허민 히어로즈 이사회 의장
이들은 제 역할은 방기한 채 '구단주 역할극'에 열을 올렸다. 허민 씨는 스프링캠프 첫 연습경기에 선발 등판했고, 2군 구장에 등장해 선수단과 '야구 놀이'를 했다. 옥중경영 사태는 도리어 구단 장악의 핑계로 사용하고 있다. 장정석 감독에게 해명 기회조차 주지 않고 경질한 뒤 허민 씨의 측근인 손혁 감독을 선임했다. 허민 씨의 '야구 과외교사'였던 또 다른 인물이 새로 코칭스태프에 선임되기도 했다. 제보자로 나선 임은주 부사장은 도리어 '옥중경영 가담자'로 몰려 직무 정지됐다. 히어로즈 자체 조사와 KBO의 조사 과정에서 이장석을 여러 차례 면회했다고 자인한, 즉 장정석-임은주 씨보다 옥중 경영 가담 의혹이 훨씬 짙은 임직원들은 여전히 직위를 지키고 있다. (손혁 감독은 프로야구팀의 지휘봉을 잡을 충분한 역량이 검증된 지도자다. 그래서 손 감독도 어찌 보면 이 사태의 피해자다.)

허민-하송의 행태는 한 가지 가정만 받아들이면 모두 아귀가 맞는다. 이장석과 경영권에 대한 모종의 합의가 있었다는 것. 실제로 KBO 조사위는 이에 대한 진술도 어느 정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 KBO는 '이장석의 굴레'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박병호, 이정후, 김하성, 조상우 등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별들이 뛰는 서울 연고팀이 '이장석의 범죄'라는 늪에 빠져 있는 건 한국 야구 전체의 재앙이다. KBO는 이번만큼은 히어로즈가 '이장석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옥중 경영 시스템'을 가동하고 구단을 사유화한 이장석의 측근들, 그들의 행태를 방치하고 사실상 손을 잡은 것으로 보이는 허민-하송, 그리고 '옥중 경영 시스템'에 죄의식 없이 참여한 구단 임직원들에 대한 징벌로는 충분치 않다. 이장석이 야구계에서 떠나게 만들 실질적 조치가 필요하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까지 법원 판결도 가볍게 무시해 온 이장석의 '법꾸라지 행태'에 비추어 보면, KBO의 지시를 순순히 따를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 KBO 조사위원회가 활동한 석 달이라는 시간이 묘책을 찾아내기에 충분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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