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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임은정 검사는 왜 또 나섰나?

[취재파일] 임은정 검사는 왜 또 나섰나?
기이한 데자뷔다. 과거 법무부 간부로부터 성추행 사실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와 당시 이에 대한 진상 파악에 나섰던 임은정 검사를 둘러싼 상황 말이다. 임 검사의 주장에 따르면, 2010년 12월 임 검사는 두 달 전 발생한 성추행 사건 피해자 특정에 나섰다. 당시 법무부 감찰단에 있던 검사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당시 서 검사는 “자신은 피해자가 아니다”는 취지로 이야기했고, 이후 임 검사는 최교일 당시 검찰국장에 불려 가 “피해자는 가만히 있는데 왜 나서냐”는 질책을 들었다는 게 임 검사의 주장이다.

“피해자는 가만히 있는데 왜 나서냐” 이 말은 서지현 검사의 용기 있는 폭로가 나온 2018년 현재에도 반복되고 있다. 임은정 검사가 검찰 성폭력조사단장에 임명된 조희진 검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면서다. 서지현 검사 측은 “검찰 조직을 신뢰하고, 조사단장에 대한 불신은 섣부르다”고 말하고 있지만, 임은정 검사가 조희진 단장의 자격을 문제 삼자 검찰 내부에는 또 “피해자는 가만히 있는데 왜 나서냐”는 힐난이 나오고 있다.

검찰뿐만이 아니다. 임은정 검사가 조희진 단장의 퇴진을 요구했다는 내용의 기사에는 마치 유행처럼 “본질은 그것이 아니다”는 식의 댓글이 달리고 있다. 중요한 것은 과거 안태근 전 검찰국장이 성추행을 했는지, 당시 최교일 현 자유한국당 의원은 그에 대한 감찰을 덮은 게 맞는지를 밝히는 것이니 조사단장 퇴진 요구 등으로 논점을 흐리지 말라는 취지다. 성추행과 감찰 중단에 대한 진상 규명,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유행처럼 달리고 있는 “본질은 그것이 아니다”는 댓글들은 이번 사안의 엄중함을 절반, 아니 1/3 정도만 간파한 것이다.

진상 조사단은 ‘안태근 성추행’ 사건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검찰 성폭력 진상조사단 출범은 서지현 검사의 폭로가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서 검사 관련 사건은 여론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성추행과 감찰 중단 의혹에 대한 수사는 원활하게 진행될 것이다. 서 검사는 부당하다고 주장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2014년 사무감사도 이번 진상 조사 이후에는 서 검사의 소명이 상당 부분 인정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만큼 여론은 중요하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진상조사단은 서 검사 관련 사건만을 다루는 기구가 아니다. 조사단은 서 검사 사건을 포함해 은폐됐던 검찰 내부의 성폭력과 관련된 사안을 전수 조사해 앞으로 그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제도와 시스템을 마련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그동안 말 하지 못했던, 그리고 말 했지만 덮여버렸던 과거 사건에 대한 당사자나 목격자의 용기 있는 진술이 필요하다. 임은정 검사가 우려하는 부분은 바로 이 대목이다.

임 검사는 SBS와의 전화 통화에서 ‘진상조사단에 대한 성폭력 피해자들의 신뢰’가 중요하다고 거듭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진상조사단에 대한 신뢰는 결국 조사단장에 대한 신뢰’라고 강조했다. 임 검사의 주장에 따르면, 조희진 단장은 과거 자신의 사례를 포함해 검찰 내 성폭력 사례를 이야기했었는데 이를 묵살했다고 한다. 임 검사는 이런 전례를 들어 조직 보호론자인 조희진 단장이 있는 진상조사단에 누가 용기 있게 피해 사례를 이야기 할 수 있겠냐고 우려를 표하고 있다. 임 검사의 우려는 기우일까?

●  진상 규명 보다 제보자 색출에 나섰던 과거

기자는 임 검사의 우려와 맥이 닿는 경험이 있다. 지난해 초 SBS는 수도권의 한 검찰청 간부가 후배 여검사들에게 부적절한 신체 접촉, 즉 성추행을 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취재가 시작되자, 해당 검찰청은 자체 감찰에 들어갔다. 그런데 통상 지방검찰청의 감찰은 선임이 형사 1부장검사가 담당하는데, 해당 검찰청은 다른 부서 부장검사에게 감찰을 맡겼다. 해당 부장검사가 여성이니, 여 검사들이 피해 사실을 더 쉽게 이야기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선의’에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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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후 진행 감찰은 진상 규명보다는 제보자 색출에 방점이 찍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추행이 발생한 회식자리에 참석했던 여 검사 중에는 자신이 제보자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거짓말 탐지기’ 사용에도 응할 의사가 있다고 주장한 사람도 있었던 걸로 전해진다.

보도를 앞두고는 당시 회식 자리에 참석했던 여 검사들이 통화를 원한다는 해당 검찰청 간부의 전화 이후, 여 검사들의 연락이 이어졌다. 대부분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는 검찰 간부의 행동에 대해 자신은 부적절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거나, 해당 간부를 좋은 사람으로 생각한다는 내용이었다. 자신은 제보자가 아님을, 그리고 성추행 의혹이 보도되지 않고 덮였으면 한다는 걸 누군가에게 증명하려 한다는 느낌이었다.

감찰 결과는 어땠을까? 해당 검찰청은 성추행 의혹을 받은 간부가 여 검사들에게 ‘포옹’ 등 신체 접촉을 한 ‘사실’을 확인했지만, 그 행동을 부적절하다고 느낀 사람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해당 검찰청의 ‘선의’에 따라 여성 부장검사가 여 검사들을 상대로 한 감찰의 결과다. 이 결과에 따라 포옹을 한 ‘사실’이 확인된 검찰 간부는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았고, 퇴직 이후 대형 로펌으로 가는 것에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서지현 검사 당시 직속상관 조사
검찰 진상조사단 성패는 서지현 검사 사건 너머에 있다

임은정 검사의 사퇴 요구에 조희진 단장은 사퇴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문무일 검찰총장 역시 조희진 단장을 교체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임은정 검사가 ‘조사단에 대한 신뢰’를 명분으로 또 나섰지만, 조사단은 조희진 단장 체제로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조희진 단장 체제의 진상조사단은 검찰 내 성폭력 문제를 뿌리 뽑고, 이를 예방할 시스템 마련에 성공할 수 있을까? 조사단의 성패는 검찰 내에서 제2, 제3의 서지현이 얼마나 많이 나오느냐에 달려있다. 의혹이 제기된 ‘귀족 검사’의 성폭행 의혹과 관련해 사건화가 되는 걸 거부하는 것으로 알려진 피해 여검사 등이 입을 열 수 있도록 조사단이 얼마나 신뢰를 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의미다. 부디 검찰 진상조사단이 임은정 검사의 우려는 기우였을 뿐이라는, 남성 중심적 검찰 조직에서 여 검사도 남성 문화에 적응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과거형일 뿐이라는 결론을 낼 수 있기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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