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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기무사 사진첩, 37년 만에 공개 ② : "무장한 폭도가 먼저 공격" 5·18 왜곡, 사실은…

장훈경 기자 rock@sbs.co.kr

작성 2017.12.04 11:01 수정 2017.12.07 15:47 조회 재생수62,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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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기무사 사진첩, 37년 만에 공개 ② : "무장한 폭도가 먼저 공격" 5·18 왜곡, 사실은…
※ SBS 기획취재부가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5·18 민주화운동을 기록한 기무사 사진첩을 입수했습니다. 사진첩은 모두 14권으로 1,659장의 사진이 담겼습니다. 취재진은 이 가운데 6권, 688장을 확보했습니다. <편집자 주>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5·18'을 검색하면 바로 '북한군 투입설'과 '시민군은 폭도'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37년 간 기무사가 숨겨왔던 사진첩을 공개한 지난 취재파일에도 그런 댓글이 달렸습니다. '무장한 폭도를 국가가 진압하는 게 뭐가 문제냐', '차량 털고 교도소 습격하는 게 민주화운동이냐'는 식입니다.

물론 왜곡입니다. 교본처럼 잘 정리된 책도 있습니다. 전두환 씨가 올 초 낸 회고록입니다. 그는 '시민들이 먼저 무기고를 습격했다는 기록들이 있다', '북한 특수군 개입 정황이라는 의심이 계속 나온다'고 썼습니다. 일부 극우세력은 한 술 더 뜹니다. '5·18 유공자들이 가산점을 받아 공무원을 싹쓸이한다'는 주장을 선거철마다 퍼뜨립니다. 지역감정을 부추기기 위함이지요. 주장의 근거는 황당합니다. '공무원들의 말을 들어보면 대개가 전라도 사투리를 쓴다'는 것이지요. 이번 취재파일에서는 이런 유언비어와 왜곡을 바로잡고자 합니다.

■ "무장한 폭도, 군은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 – 거짓
장훈경 기무사 사진첩 취재파일 본문용 사진채증하기 위해 군 관계자가 촬영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입니다. 시민이 투석하는 모습을 담았는데 5월 18일이라고 기록했습니다. 95년 특검 조사에 따르면, 바로 이날 민주화운동 기간 중 처음으로 희생자가 나왔습니다. 귀가 들리지 않고 말을 할 수 없었던 김경철 씨입니다. 그는 친구들과 점심식사 뒤 귀가하다 공수부대에 무차별 구타를 당했습니다. 적십자병원에 옮겨진 그는 다음날인 19일 새벽 3시 끝내 숨졌습니다. 후두부 타박상에 의한 뇌출혈이 그의 사망진단서에 적힌 직접 사인이었습니다. 갓 백일이 지난 딸이 있는 평범한 가장은 그렇게 아무 이유 없이 숨졌습니다.

시민이 무기를 든 것은 계엄군의 과잉진압 때문이었습니다. 5월 18일 0시,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된 직후부터 광주에선 과격 진압이 시작됐습니다. 광주 금남로에 있던 동구청이 작성한 '5·18 사태일지'에는 이런 내용이 생생하게 실려있습니다.장훈경 취재파일 2편 시간표시민이 무기를 든 것은 계엄군의 집단 발포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난 5월 21일 오후 1시 이후부터입니다. 전두환 씨 등은 "21일 오전부터 시민들이 무기고를 탈취했다는 경찰 기록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올 초 전남경찰에서 그런 기록은 조작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문건 제목의 한자부터가 경계할 경(警) 대신 공경할 경(敬)으로 잘못 써 있었고 내용도 당시 경찰 타자기에는 없는 활자체로 작성돼 있었지요. 군이 처음 총을 쏜 19일부터 21일 집단발포까지 민간인은 무장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군이 총을 쏜 것은 폭도가 아니라 비무장 상태의 시민이었습니다.

■ "교도소 습격하는 게 민주화운동이냐?" – 거짓
장훈경 기무사 사진첩 취재파일 본문용 사진처음 공개되는 이 사진은 80년 당시 광주교도소를 장악한 군이 중무장을 하고 경계를 서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교도소는 1급 국가보안시설인만큼 민주화운동 초기부터 계엄군이 장악했습니다. 극우세력들은 '잘 훈련된 무장 시민군이 교도소를 습격했다"는 의혹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러 차례 확인된 거짓말입니다. 2007년 군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교도소 습격설은 군이 5·18을 불순분자의 소행으로 몰기 위한 의도에서 조작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당시 광주교도소장도 95년 언론인터뷰에서 "당시 교도소에 3공수여단이 중무장하고 있어 습격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며 "시민군이 교도소를 습격했다면 교도소 주변에 시체가 있어야지 어떻게 도로에 있을 수 있겠냐"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5·18 진상규명 작업은 모두 4차례입니다. 88년 국회 청문회, 95년 검찰 수사, 2005년 과거사진상규명위 조사,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입니다. 사실 앞선 조사에서 '폭도가 먼저 공격했다'거나 '교도소를 습격했다'는 의혹은 모두 거짓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주장이 아직도 나오는 것은 자신이 믿는 것만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거나 전두환 씨를 정점으로 한 신군부의 조작과 왜곡이 그만큼 철저하고 치밀했다는 방증입니다.

아래 슬라이드 포토를 통해서 '북한군 개입설' 등 80년 5월, 그날의 왜곡을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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