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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절차 지켜 조사해라"‥통신사 CEO가 방통위원장에 대든 이유는?

"증거인멸 시간 달라는 것" VS "원론적인 얘기일 뿐"

채희선 기자 hschae@sbs.co.kr

작성 2017.09.13 14:26 수정 2017.09.13 14:45 조회 재생수2,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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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절차 지켜 조사해라"‥통신사 CEO가 방통위원장에 대든 이유는?
●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 "방통위에 절차대로 조사해라" 요구한 이유는?

지난 6일 이효성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이동통신3사 최고경영자(CEO)와 조찬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과 황창규 KT 회장,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이 한자리에 모인 게 현 정부 들어 처음이다 보니 언론의 관심도 높았습니다.

이날 조찬에 대해 이 위원장은 그간 통신비 인하 등 현안의 중심에 섰던 통신업계의 얘기를 듣기 위한 자리라고 소개했고, 조찬을 마친 후에도 "'미래'를 얘기한 자리였다"며 훈훈하게 마무리됐음을 내비쳤습니다.

그런데 요즘 방통위에서는 그날 식사 자리에서 나왔던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의 발언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식사 말미에 권영수 부회장이 이효성 위원장에게 "방통위가 조사할 때 절차대로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겁니다. 권 부회장의 이 발언 탓에 화기애애했던 식사자리에 순간 애매한 분위기가 흘렀고, 동석했던 방통위 간부는 위원장을 대신해 "최대한 그리하겠다"며 서둘러 이야기를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방통위가 그동안 불법 조사를?

권영수 부회장이 던진 발언의 배경이 궁금했습니다. 그동안 방통위가 막무가내로 불법 조사를 벌여왔다는 말일까. 권영수 부회장의 이 말을 전해 들은 방통위 직원들은 지난해 <LG유플러스의 사실 조사 거부 사건>을 떠올렸습니다.

LG유플러스 임직원들이 휴대전화 불법 지원금 지급 혐의를 조사하기 위해 본사를 찾은 방통위 조사관들을 쫓아낸 사건입니다. 유례없는 조사 거부에 방통위도 모양새가 우스워졌습니다. 전체회의에서 상임위원들의 비판이 잇따랐지만, LG유플러스는 고작 2천 2백여만 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은 뒤 상황을 모면했습니다.

권영수 부회장의 "절차대로 조사해 달라"는 말이 이 사건을 떠올리게 한 것도, 당시 LG유플러스가 '절차를 지키지 않은 조사'라며 방통위 조사에 극렬히 반발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조사 7일 전에 사업자에 알리도록 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13조)을 어겼다는 주장이었습니다.

● "증거인멸 시간 달라는 것" VS "원론적인 얘기일 뿐"

LG유플러스의 주장대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13조)은 방통위의 조사 개시 7일 전에 사업자에게 통보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증거인멸 등의 우려가 있을 때는 예외로 하고 있습니다. 사업자의 방어권 보호 차원에서 조사에 대한 사전 공지가 필요하지만, 불법 행위 덮기 위한 증거인멸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취지일 겁니다.

그런데 권영수 부회장은 또다시 절차를 운운하며, 오해받을 만한 발언을 했습니다. 과연, 조사 거부 사태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있었는지 의심스러웠습니다. 또, 방통위가 불법 행위를 조사할 때 그동안 암암리에 귀띔을 해줬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이런 게 아니면 아무리 배짱 좋은 통신사 수장이라도 규제기관 장에게 대놓고 증거인멸 시간을 달라는 말을 할 수 없을 테니 말입니다.

지난해 LG유플러스를 담당했던 조사관은 "반성 없는 오만"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지난해 LG유플러스 지하 회의실에 8시간 가까이 발이 묶여 있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며 "조사 거부에 대해 과징금까지 받아놓고 반성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다른 조사관도 "아무리 전산화 돼 있다고 해도 하드를 교체해 버리면 증거를 잡을 수 없다"며 "법 조항을 너무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권영수 부회장의 이 발언이 알려진 뒤 방통위 조사관들은 제2의 조사 거부 사태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권영수 부회장의 발언이 조직에서 갖는 무게감을 고려할 때, 충분히 가능한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LG유플러스는 이와 관련해, 권영수 부회장이 원론적인 차원에서 한 발언일 뿐 <사실 조사 거부 사건>을 생각하고 한 말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또, 통신업계가 안팎으로 너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만큼 불필요한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