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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법무부 탈검찰화보다 중요한 과제

[취재파일] 법무부 탈검찰화보다 중요한 과제
법무부 탈검찰화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가장 힘주어 추진하는 개혁 과제이기도 하다. 법무부 주요 보직에 검찰 출신이 아닌 인사를 배치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 결과 지난 8월 21일에는 50년 동안 검사가 차지했던 법무부 법무실장 자리에 판사 출신 이용구 변호사가 임명됐다. 지난 8월 28일 법무부 업무보고에선 문 대통령이 "박상기 장관 취임 이후 법무부의 탈검찰화라는 방향을 잘 잡고 있다"라고 치하했다. 그러나 정부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과연 법무부의 탈검찰화가 검찰 개혁을 위해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과제인지는 의문이다.

● 법무부 탈검찰화의 명분

먼저 법무부 탈검찰화의 명분부터 살펴보자. 법무부 탈검찰화를 주장하는 대표적 학자인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네 가지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 법무부가 검찰에 대해 실질적인 관리·감독권을 행사할 수 있다. 검사의 잘못에 대해 '내 식구 감싸기'를 하지 않고 엄정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둘째, 검찰은 반대하지만 국민이 원하는 공수처 설치 같은 정책을 법무부가 힘있게 추진할 수 있다. 셋째, 수사와 기소의 전문가인 검사보다 해당 분야를 잘 아는 공무원이 보직을 맡는 것이 법무 행정의 전문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 넷째, 1~2년 단위로 순환 배치되는 검사들의 인사 원칙 때문에 그동안 법무부 행정 업무의 일관성이 떨어졌다.
(2017년 8월 13일 경향신문 "[정동칼럼] 법무부의 탈검찰화" 요약 발췌)

합리적으로 검토할 만한 주장이다. 일선 검사들도 실무적 어려움을 예상하기는 하지만 법무부 탈검찰화에 원칙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 만성적으로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일선 검찰청 형사부에선 오히려 반색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법무부 탈검찰화가 검찰 개혁의 대표 과제처럼 논의되는 것을 들을 때마다 반쪽짜리 진실이란 느낌을 받곤 한다.

과연 지금까지 검찰이 보여준 많은 문제들이 법무부를 검사들이 장악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일까? 오히려 법무부가 검찰을 부당한 방식으로 지휘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더 많지 않은가? 특히 지난 정부에서 논란이 된 검찰 수사를 살펴 보면 법부부의 검찰에 대한 교묘한 통제, 즉, 부당한  방식의 '검찰의 법무부화'가 더 큰 문제란 생각이 든다.

● 세월호와 국정원 댓글 사건, 법무부의 교묘한 '조율'
법무부
2014년 광주지방검찰청이 진행했던 세월호 구조와 관련한 해경에 대한 수사를 보자. 여러 차례 보도됐듯이 광주지검은 구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해양경찰관들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하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법무부 생각은 달랐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업과사(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하겠다는 보고서를 대검에 보내면 대검에서 이런 저런 부분을 더 검토해보라고 돌려 보냈다.

근거를 보강해서 다시 보내면 또 한참 시간을 끌다가 이런 저런 부분을 더 검토하라는 회신이 온다. 자꾸 다시 검토하라는 지시가 떨어져서 대검에 물어보니 법무부 뜻이라고 하더라. 물론 아예 기소하지 말라고 지시하진 않는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와 달리 계속 재검토하라며 시간을 끌면 윗선의 뜻을 알게 되기 마련이다."고 말했다.

채동욱 前 검찰총장과 윤석열 現 서울중앙지검장이 이끈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수사 막판에 검찰이 고민한 쟁점은 두 가지였다.

1. 원세훈 前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인가 말 것인가.  

2. 원세훈 前 국가정보원장에게 정치 관여를 금지한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만 적용할 것인가, 아니면 선거에 개입한 사실은 인정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까지 함께 적용할 것인가.

윤석열 당시 수사팀장을 비롯한 수사팀 의견은 '1. 구속영장 청구 2. 선거법까지 적용'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보고를 받은 법무부는 재검토를 지시하거나 회신하지 않고 시간을 끄는 방식으로 불편한 심기를 전했다. 결국 검찰은 원세훈 前 국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포기하고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하는 길을 선택했다.

(** 이것으로 타협에 성공했다고 생각한 것은 검찰 수뇌부의 판단 착오였다. 정권이 더 아프게 여겼던 것은 18대 대선에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사실이 검찰 수사 결과에 포함되는 것, 즉, 원세훈 前 국정원장에 대한 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이었다.)

● 영화와 현실의 차이

영화나 드라마처럼 민정수석이 검사장에게 밤늦게 전화를 걸어 수사에 개입하는 장면은 현실에서 자주 벌어지지 않는다. 앞서 두 사례에서 보듯이 법무부가 수사팀에 이런 저런 부분을 더 검토하라고 의견을 제시하는, 사실상의 '법무부 수사지휘'를 통해 정권의 뜻이 관철되는 경우가 더 많다.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사건, 청와대와 법무부가 신경 쓰는 사건일 수록 더욱 그렇다. 우병우 前 청와대 민정수석과 가장 많이 통화한 것으로 특검 수사에서 드러난 검찰 간부가 검찰총장이나 서울중앙지검장이 아니라 법무부 검찰국장이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은 물론 검찰총장 등 다른 검사들도 모두 업무상 필요한 통화였을 뿐 우병우 前 수석의 부당한 지시나 청탁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이런 관행이 불법 또는 편법이라는 점이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임명 첫날  "청와대 민정수석은 수사지휘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법무부 장관 역시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하도록 검찰청법이 규정하고 있다. 예컨대 노무현 정부 때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김종빈 검찰총장에게 강정구 교수에 대한 불구속 수사를 지휘한 것은 구체적 사건과 관련해 검찰총장을 공개 지휘한 것이기 때문에 합법이다.

하지만 법무부 검찰국이 구체적 사건에 대해 대검과 일일이 의견을 조율하거나 일선 수사팀에 재검토를 지시하는 것은 검찰 수사의 중립성 보장을 위해 구체적 사건에 대한 장관의 지휘 범위를 검찰총장으로 제한한 법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 청와대가 법무부 검찰국을 통해 편법적으로 검찰 수사팀에 정권의 뜻을 전달한다면 더 큰 문제다.

● 용기 없는 검사도 중립성 지킬 수 있어야
문무일 검찰총장
법무부의 편법적 수사 개입을 막기 위한 고민 없이 추진되는 법무부 탈검찰화는 반쪽짜리 진실에 불과하다. 검사 인사와 검찰 예산 편성을 통한 행정적 지휘, 엄정한 감찰을 통한 검사의 권력남용의 방지 같은 법무부의 검찰 통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법무부가 구체적 사건에 대해 하나 하나 조율하고 사실상 수사를 지휘하는 관행은 그렇지 않다. 수사의 중립성을 크게 훼손한다.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언제 자신을 겨눌지 모르는 검찰의 동향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권력자들이 법무부의 편법적 수사지휘를 통해 검찰을 통제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너무 쉽기 때문이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지난 8월 8일 첫 번째 기자간담회에서 검찰 수사의 중립성은 "최종적으로 검찰총장이 나서서 지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것이 저한테 주어진 직무상 그리고 인간적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물론 검찰총장이나 수사 검사가 용기를 발휘하면 정치적 중립을 지킬 수 있다. 그러나 검사가 특별한 용기를 내지 않아도 수사의 중립성을 지킬 수 있는 제도와 환경이 더 중요하다. 모두가 국정원 댓글 사건 때 윤석열 검사처럼 행동할 수는 없다. 특별한 용기가 없는 검사도 수사의 중립성을 지킬 수 있어야 나라다운 나라다. 법무부의 탈검찰화보다 구체적 사건에 대한 편법 지휘를 근절하는 '검찰의 탈법무부화'가 더 절실한 과제로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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