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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놈놈놈' 감독과 '감감감' 배우들…영화 '밀정'의 생활감+존재감+기대감

[취재파일] '놈놈놈' 감독과 '감감감' 배우들…영화 '밀정'의 생활감+존재감+기대감
● 생활감

이쯤 되면 이제는 ‘클리셰’가 됐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겠다. 배우 송강호의 연기를 얘기하는 이마다 거의 매번 사용하는 ‘생활감’이라는 단어 말이다. 영화 속 캐릭터가 마치 실제 자신인 듯, 영화 속 인물의 삶이 실제 자신의 생활인 듯 표현해 낸다는 찬사다.
 
사전에 나오는 단어로 표현하자면 생활감은 사실감, 현실감 같은 말로 바꿀 수 있겠다. 하지만 바꿔놓고 보면 맛이 안 난다. 배우 송강호의 연기엔 사실감과 현실감을 넘는 2%가 더 있다. 그래서 배우 송강호의 연기는 결국, 다시, 어쩔 수 없이, ‘생활감’ 덩어리다.
 
‘밀정’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배우 송강호만의 생활감 꽉 찬 연기가 또 한 번 빛을 발한 영화다. 스크린 속 송강호의 표정은 시종일관 ‘대략난감’과 ‘어이쿠야’ 주변을 바쁘게 오간다. 특별한 방향성이나 의지가 잘 보이지 않으니 오간다기 보다는 방황한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수도 있겠다.
 
배우 송강호가 실제 자신의 것인 양 보여주는 주인공 이정출의 ‘방황’은 영화 ‘밀정’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의견은 갈리는 듯 하다. 어떤 이들은 이 ‘방황’ 때문에 이정출이라는 캐릭터의 입체감이 설득되지 않는다고 한다. 반면 실감나는 방황 덕분에 캐릭터가 한층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는 이들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후자에 한 표다. 영화를 본 지 2주가 넘었다. 그 동안 내내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도 이정출의 표정 속에 담긴 방황의 행로를 여전히 모르겠다. 오늘도 영화 후반부 재판 장면에서 이정출의 진술을 되새기며 고민한다.
 
그의 말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일까? 그 경계선을 이정출 본인은 알고 있을까? 아니, 그 경계선이라는 게 실제 있기는 했던 걸까?
 
그런데 그 모호함 때문에 오히려 이정출이라는 인물을 이해할 듯 하다. 이름은 다를지라도 영화의 배경이 된 그 무렵 어딘가엔 꼭 이정출 같은 이가 한 명쯤은 분명 있었을 것 같다. 이정출을 둘러싼 뿌연 안개가 너무 눈에 익어서다. 어디서 봤더라? 맞다, 그거다. 그 안개는, 무릎 튀어나온 트레이닝복 바람으로 대중목욕탕에 갈 때마다 탕 문을 여는 순간 후끈하게 덤벼 오던 수증기를 닮았다.
 
영화 '밀정'의 이병헌
● 존재감 

알려진 대로 ‘밀정’은 송강호와 공유가 주연한 영화다. 그런데 전문가의 비평이든 일반인들이 남긴 후기든 어딜 봐도 이병헌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요즘 영화계에 흔하고 흔한 게 ‘특별출연’이라지만, 이만하면 정말 특별한 출연이다.
 
러닝타임 140분에 달하는 영화에서 배우 이병헌이 등장하는 분량은 10분에 불과하다. 장면 수로 따지면 단 세 신. 국어사전에 ‘존재감’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었을까?
 
자연인 이병헌에 대한 세간의 시선은 다양하다. 하지만 적어도 ‘영화’라는 울타리 주변에서 배우 이병헌에 대한 평가에는 일종의 ‘모범답안’이 완성된 듯싶다. “단 한 컷으로도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주는 배우. 연기는 정말 잘 하는 배우.” 그 평가에 아직 동의하지 않는다면 영화 ‘밀정’을 본 뒤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만하다.
 
영화 '밀정'의 공유
● 기대감 

먼저 배우 공유와 그의 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시작해야겠다. 이미 ‘천만 배우’ 타이틀을 거머쥔 이에게 ‘기대감’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건 어쩌면 좀 무례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기대감’이라는 단어를 붙이면서 두 가지 이유를 들어 본다.
 
하나는, 배우가 그릇이라면 그 그릇은 결코 숫자만으로 가득 채울 수 있는 게 아닐 거라는 것. 또 하나는, 재고 따지고 설명할 것 없이, 이유불문하고, 어쨌든, 기대가 된다는 것. ‘팬심’ 차원(도 아주 없지는 않지만)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다. 내로라 하는 선배 배우와 감독들이 직접 한 얘기다.
 
송강호 배우는 ‘밀정’에서 공연한 경험을 얘기하며 “공유는 빙산의 일각 같은 친구”라고 치켜세웠다. 지금까지 보여준 것보다 앞으로 보여줄 것이 더 많은 배우라는 의미다. “원석 같은 느낌의, 뭔가를 더 닦으면 닦을수록, 갈면 갈수록 더 좋아지는 배우”라는 김지운 감독의 평가도 마찬가지다.
 
같은 영화를 만든 ‘식구’끼리 하는 얘기니 반쯤 깎아 들어야 정확할 수도 있다. 그래서 기억을 돌이켜 본다. 2016년에만 인터뷰 자리에서 배우 공유를 세 번 만났다.
 
그때마다 받았던 인상들을 종합하면 두 가지다.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연구와 분석이 철저한 배우’, ‘배우와 스타의 갈림길에서 배우의 길을 선택한 게 확실해 보이는 배우’. 이 정도면 오늘보다 내일을 족히 더 기대할 만하지 아니한가.
 
영화 '밀정' 포스터
● ‘감+감+감’의 시너지

안타깝게도 140분 짧지 않은 러닝타임 가운데 세 배우가 한자리에 모이는 장면은 단 두 신뿐이다. 그 중에서 특히 세 사람이 처음 만나 막걸리 통 앞에 마주앉은 장면은 ‘감+감+감’의 시너지를 실감하게 한다. 영화 전체의 이야기와 흐름을 이끄는 결정적인 장면이면서 묵직한 주제와 무거운 공기에 눌려있던 관객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청량제기도 하다.
 
‘밀정’을 기다렸던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김지운 감독이 보여줄 스타일에 안테나를 집중했을 것이다. 전작들을 통해 김지운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쟝르적이면서 쟝르의 관습을 탈피한 그만의 신쟝르. 반면 앞으로 ‘밀정’을 기억하는 이들은 스타일보다 배우를 먼저 떠올릴 수도 있겠다.

‘놈,놈,놈’의 강렬한 스타일이 없는 대신 ‘밀정’엔 ‘감+감+감’의 시너지가 있다. 마니아보다 대중의 선택이 중요한 추석 대목 대작 입장에선 단점보다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면 이렇게 위안해 보자. 어찌됐든, ‘송강호+이병헌+공유’가 한 앵글 속에서 빚어내는 ‘생활감+존재감+기대감’의 시너지를 다른 영화에서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러니,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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