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평가는 차치하겠습니다. 대구의 한 공원에서 어르신 세 분을 만났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가 매우 높았습니다. 확실한 대통령 지지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두 분의 말에 특이한 화법이 있었습니다. '비록 여성이지만'이란 표현이었습니다. "대통령이 비록 여성이지만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냐. 야당은 걸핏하면 시비를 거는 데 대통령이 어떻게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 (대구 시민)
예를 들어 볼까요. 지난 총선에서 지역구에서 당선된 새누리당 여성 국회의원은 6명이었습니다. 서울 서초갑 이혜훈, 동작을 나경원, 강남병 이은재, 송파갑 박인숙, 안산단원을 박순자, 포항북 김정재 의원입니다. 이 가운데 이은재, 박순자, 김정재 의원은 '여성 우선 추천'으로 공천을 받았습니다. 이런 혜택을 받지 않고 당선된 새누리당 여성 지역구 의원은 3명에 불과했습니다.
이 사실을 진지하게 알아차리게 된 건 총선이 무려 두 달이나 지났을 때였습니다. 이 6명 의원 가운데 한 명과의 식사 자리였습니다. 무심도 하죠. 공천과 총선 정국 내내 친박계과 비박계, 두 거대 계파 취재에 정신이 팔려 우리 일상의 절반인 여성 권력 문제에 둔감했던 모양입니다.
"새누리당 지역구 의원 가운데 여성 우선 추천 없이 당선된 의원은 딱 3명뿐이다. 새누리당이 그만큼 남성 중심적이란 방증이기도 하지만, 여성이 유권자의 선택을 받는 게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다. 유권자의 절반이 여성인데, 왜 그럴까." (새누리당 A 여성 의원)
여성에 대한 남성의 물리적 폭력은 물론이고, 심지어 여성 스스로에게도 나타난다고 봤습니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성형 수술 열풍, 다이어트로 인한 거식증까지도 그 사례로 들었습니다.
여성끼리 관계에서도 나타납니다. TV 프로그램 '사랑과 전쟁'에서 걸핏하면 나오는 고부 갈등을 들 수 있습니다. 며느리에게 가혹한 폭력을 행사하는 그 시어머니도 불과 이삼십 년 전에는 누군가의 억압을 받는 며느리였을 테니까요. 우리 시대 여성 혐오는 이렇게 가해자와 피해자가 얽히고설킨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생물학적 차이로 여성과 남성 사이에 선을 딱 긋고, 여성은 폭력의 피해자 남성은 폭력의 가해자로 도식화할 수만은 없습니다. 마이클 플러드의 여성 혐오는 가부장제와 맞닿아 있는 '문화적 현상'이지, '기괴한 정신병'이 아닙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매우 호의적인 사람조차 정치적 평가를 내릴 때 '비록 여성이지만'이란 수식어가 튀어나오는 현실. 유권자의 절반이 여성이지만, 여성 정치인이 유권자의 선택을 받는 게 쉽지 않은 문화. 적어도 마이클 플러드의 분석대로라면, 이 역시 '여성 혐오' 관점에서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성이 정치 영역, 권력의 영역에 편입하는 것에 대한 인색함을 전제하고 있을 테니까요. 유권자의 절반이 여성이니, 인색함은 남성은 물론 여성까지 망라하고 있습니다. 제도는 여성을 배려한다고 생색을 내지만, 문화는 또 다른 문제인 게 현실입니다.
만일 김 씨가 남성이 던진 담배꽁초에 맞았었다면 어땠을까요. 남성에 대한 분노가 생겨 길 가던 남성을 무자비하게 살해했을까요. 김 씨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아니라 담배를 피우는 '여성'을, 꽁초를 아무데다 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꽁초를 아무데다 버리는 '여성'을 괘씸하게 여긴 것 같습니다.
담배 피우는 여성을 혐오하는 우리 문화와 다를 게 없었습니다. 정치인들 싸우는 것에 매몰돼 여성 권력의 문제를 간과했던 기자나, 수사에 열을 다하느라 혐오의 정의를 애써 뭉갰던 검사나, 세상을 편협하게 보는 건 매한가지인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고 검사도 그렇고, 우리 공부 좀 더 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