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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박태환 규정' 모르고 만들었다

[취재파일] '박태환 규정' 모르고 만들었다
수영 스타 박태환의 발목을 잡고 있는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선발 규정 <제5조 6항>이 국제 규정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박태환의 리우올림픽 출전 여부가 논란이 되면서 과연 대한체육회가 알고 규정을 만들었는지, 아니면 모르고 만들었는지가 관심의 초점이 됐습니다.

그런데 대한체육회 주요 관계자의 증언을 취재한 결과 관련 국제 규정이 폐지된 것을 모르고 국가대표 선발 규정을 제정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국제 스포츠계의 ‘대법원’으로 불리는 스포츠중재재판소(CAS)는 2011년 10월 “금지 약물 복용 선수에게 징계 만료 이후에도 추가 제재를 가하는 이른바 ‘오사카 룰’은 ‘이중 처벌’로 <올림픽 헌장>과 세계반도핑규약(WADC) 위반이기 때문에 무효”라고 판결했습니다. 그런데 대한체육회는 이로부터 2년 9개월이나 지난 2014년 7월 15일 ‘이중 처벌’ 조항이 담긴 국가대표 선발 규정 <제5조 6항>을 만들었습니다. 
그럼 대한체육회는 ‘금지 약물 복용 선수는 징계 만료 이후에도 3년 간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는 조항을 왜 만들었을까요? 국가대표 선발 규정 제정 당시 대한체육회 고위 간부였던 A씨는 SBS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국가대표 선발 규정을 만드는 절차는 이렇다. 먼저 태릉선수촌에서 경기력 향상위원회를 열어 초안을 정하면, 법제상벌위원에서 의결을 하고, 그 다음에 이사회의 최종 승인을 얻어야 한다. 당시 배드민턴 ‘이용대 파문’ 이 터지며 도핑 문제가 큰 이슈가 됐다. 문화체육관광부도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고 체육회 내부에서도 도핑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래서 제5조 6항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국제 규정에 위반되는 줄은 전혀 몰랐다.”

대한체육회 내부 논의 과정에서 “3년은 너무 심하다. 선수 생명을 끊을 수 있으니 1년이 적당하다”는 논란은 있었지만 그 누구도 이 조항이 국제 규정 위반이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2014년 당시 대한체육회 법제상벌위원회(현 스포츠공정위원회)에서 활동했던 B씨의 증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2014년 이전에는 국가대표 관리 지침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국가대표 선발에 관해 말들이 많았고 문체부도 경기 단체의 비리에 대한 특별 감사에 들어갔다. 보다 엄격하게 국가대표들을 관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에 새 규정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논의 과정에서 ‘오사카 룰’ 같은 얘기는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 제5조 6항이 국제 규정 위반이라는 점은 당연히 전혀 몰랐다. 대한체육회가 CAS의 판결이 나올 때마다 매번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의 한 관계자도 “박태환 도핑 파문이 터진 뒤에 한국 국가대표 선발 규정에 이런 조항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고 깜짝 놀랐다”고 밝혔습니다. 이 관계자는 “CAS가 2011년 가을에 ‘오사카 룰’을 무효로 판결한 뒤 세계반도핑기구(WADA)가 세계 각국에 공문을 보내 ‘이중 처벌’ 조항을 없애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스웨덴, 뉴질랜드 두 나라가 관련 규정을 삭제했다. 만약 대한체육회가 단 한 번이라도 국가대표 선발규정을 만들기 전에 우리(KADA)에게 국제 정을 문의했더라면 제5조 6항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고 단언했습니다.

국내 체육계 여러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대한체육회는 국제 규정을 모르는 가운데 국가대표 선발 규정을 새로 만든 것이 거의 틀림없습니다. 몰랐던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대한체육회가 그 이후에 보인 행태입니다. 자신들이 제정한 정관에 “대한체육회 정관과 올림픽 헌장이 서로 다를 경우 올림픽 헌장이 우선이다.세계반도핑규약을 준수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는데도 끝까지 박태환의 리우올림픽 출전을 허용하지 않다가 국내 법원으로부터 완패하는 망신까지 당했습니다. 지금이라도 대한체육회가 CAS의 판결을 기다리지 말고 박태환의 출전을 승인하는 것이 지난 과오를 조금이나마 씻는 길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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