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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박태환 완승 요인은 대한체육회의 궤변

[취재파일] 박태환 완승 요인은 대한체육회의 궤변
수영스타 박태환 선수가 대한체육회를 상대로 법원에서 완승을 거뒀습니다. 서울동부지법 민사21부(염기창 수석부장판사)는 박태환이 지난달 23일 신청한 '국가대표 선발규정 결격 사유 부존재 확인 가처분 신청'을 전부 인용했다고 지난 1일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박태환은) 국가대표 선발규정 제5조 제6호에 의한 결격사유가 존재하지 아니한다”고 인정했습니다. 또 “(박태환은) 리우올림픽 수영 국가대표로 출전할 수 있는 지위가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대한민국 법원이 이렇게 빨리, 이렇게 완벽하게 박태환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으로, 복싱에 비유하면 1회 KO승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박태환의 완승 요인, 바꿔 말하면 대한체육회의 완패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해답은 서울동부지방법원이 내놓은 판결문에 나와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박태환의 리우올림픽 출전을 가로막았던 국가대표 선발규정 <제5조6항>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헌장과 세계반도핑규약(WADC)을 위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는 2011년 10월 도핑 징계선수에 대한 ‘이중처벌’을 <올림픽 헌장>과 세계반도핑규약 위반이라고 판결했고 IOC는 관련 조항을 즉각 삭제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 4월 5일 제정된 대한체육회 정관에는 반드시 <올림픽 헌장>과 세계반도핑규약을 준수하도록 명시돼 있습니다. 또 <올림픽 헌장>과 대한체육회 정관이 다를 경우, <올림픽 헌장>이 우선한다고 돼 있습니다. 논란의 핵심인 국가대표 선발규정은 대한체육회 정관보다도 하위 개념입니다. 정관과 다를 경우 정관이 우선입니다. 이런 논리를 적용하면 금지약물 복용 선수에게 징계 만료 이후 3년간 국가대표가 될 수 없도록 규정한 <제5조 6항>은 무효가 되는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치를 외면해온 대한체육회가 법원에 의해 철퇴를 맞은 셈입니다.

판결문을 보면 대한체육회가 얼마나 궤변을 폈는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박태환의 가처분 신청에 대해 대한체육회는 “<올림픽 헌장> 제61조 2항에 따라 국내 법원의 관할권을 배제하고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가 관할권을 갖는 전속적 중재조항을 정관 제65조에 규정하고 있는 바, 이 사건 가처분 신청을 국내 법원에 제기하는 것은 관할권이 없어 부적법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쉽게 말해 이 안건이 CAS에서만 해결될 수 있는 사항이기 때문에 국내 법원에서 다루는 것은 법에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대한체육회의 주장은 궤변인 동시에 자가당착에 불과합니다. 그동안 대한체육회는 “CAS의 판결에 승복하겠느냐?”는 언론의 줄기찬 질문에 “결정이 나오면 대응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승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을 시사했습니다. 대한체육회 정관 제65조 2항에 CAS가 유일한 분쟁 해결 기구라고 명시해놓고도 불복할 의사를 간접적으로 표시한 것입니다.

대한체육회의 태도는 박태환이 국내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하자 또 바뀌었습니다. “박태환의 리우올림픽 출전 여부는 오로지 CAS에서만 해결이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국내 법원은 관할권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대한체육회 특유의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감탄고토’식 행태를 또다시 보인 것입니다. 

하지만 대한체육회의 이런 이율배반적 태도와 궤변이 법원에서 통할 리가 없었습니다. 서울동부지방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채무자들(즉, 대한체육회, 대한수영연맹)은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 제기한 위 분쟁사안에 관하여 이 사건 가처분신청의 심문 종결 당시까지 위 중재절차에서 이루어지는 결정에 대하여 국내법적 기속력이나 집행력 등에 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등 이를 이의 없이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고 있지 아니한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채무자들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밝혔습니다.
‘국내법적 기속력이나 집행력 등에 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등’이란 말은 대한체육회가 그동안 “CAS의 결정에 반드시 따를 의무가 없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만약 국내 법원이 박태환 측의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지 않을 경우 설사 CAS가 박태환의 손을 들어준다 하더라도 대한체육회가 그동안 보여준 입장을 고려하면 끝내 국가대표로 뽑히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법원은 바로 이런 점을 감안해 박태환 측 주장을 100% 수용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대한체육회의 이중적 태도가 박태환 완승의 결정적 도우미 역할을 한 한 셈입니다.

국내 법원에서 망신을 톡톡히 당한 대한체육회는 이제 며칠 안에 국제 망신을 또 당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국제스포츠계의 ‘대법원’으로 불리는 스포츠중재재판소(CAS)가 박태환이 제기한 항소건에 대한 판결을 내리기 때문입니다. CAS가 이미 5년 전에 ‘이중 처벌’을 <올림픽 헌장>과 세계반도핑규약 위반이라고 결정한 판례가 있기 때문에 결과는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국내 법원에서 박태환에게 패소한 대한체육회는 규정에 따라 소송비용을 모두 부담하게 됩니다. 만약 CAS 판결에서도 진다면 역시 박태환 측 비용까지 전부 물어야 합니다. 1억 원이 넘을 것으로 보이는 이 막대한 비용은 사실상 국민 세금으로 지불됩니다.

처음부터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었던 대한체육회는 스스로 아집을 버리지 못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문화체육관광부의 지령이 무서워 그랬는지 간에, 결국 혈세 낭비까지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이 책임을 어떻게, 또 누가 질 것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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