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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김무성과 이한구, 누가 맞고 누가 틀렸나

절차 정의와 공천 내홍

[취재파일] 김무성과 이한구, 누가 맞고 누가 틀렸나
1년 간 국회를 출입을 하다보니 귀가 얇아졌습니다. 국회란 곳, 말 참 많습니다. 이쪽도 그럴 듯하고 저쪽도 또 그럴 듯합니다. 요즘 같이 계파 갈등이 극에 달한 공천 정국에선 더욱 그렇습니다. 고민이 생깁니다. 이 수다스러운 정치인들 사이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하나. 쉽게 말해,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어떻게 판단할까.

제 나름의 원칙은 이렇습니다. 첫째, 이들의 정치 행위가 절차 정의를 따르고 있느냐. 둘째,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느냐. 절차 정의는 비교적 명확한 구석이 있어서 이야기가 좀 더 쉬울 것 같습니다.

새누리당을 출입하고 있으니, 새누리당 공천 내홍을 빗대보겠습니다. 지난 4일, 새누리당은 1차 공천안을 발표합니다. 공천위는 친박 3선 김태환 의원을 공천에서 탈락시킵니다. 상향식 공천을 주장했던 김무성 대표와 이한구 공천위원장의 갈등이 불거집니다.

그리고 지난 7일, 이한구 공관위원장은 1차 공천안 추인을 위해 최고위원회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김무성 대표는 김태환 의원을 탈락시킨 게 상향식 공천 정신에 어긋나는 거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한구 위원장은 김 대표에게 공천에 관여하지 말라며 공개 경고를 보냅니다.

김무성 대표를 포함한 최고위원들도 모두 공천 심사 대상자다, 그런데 공천 심사를 수행하는 공천위원장이 피심사자들에게 보고하는 모습이 과연 합당한 것이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최고위를 온 것이니 더 이상 부르지 말라고 말합니다. 김무성 대표는 불쾌합니다. 최고위원회 한 참석자는 김무성 대표가 이한구 위원장에게 “(공천위원장이 최고위원에게) 지금껏 보고해 왔는데, 유별나다”라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생각해보죠. 공천이란 중대한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공천위원장이 피심사자인 최고위원의 압력에 휘둘려선 안 된다는 원칙은 절차 정의 관점에서 옳습니다. 지금까지 공천은 일부 권력자의 힘이 크게 작용해 왔습니다. 따라서 둘 사이의 만남의 여지를 자르고 가는 게 맞습니다. 그게 절차 정의입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는데 유별나다”는 김무성 대표의 말은 이런 원칙에서 벗어났습니다.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결국, 김무성은 틀렸고, 이한구는 맞았습니다.

그 다음입니다. 지난 10일 이한구 위원장이 청와대 현기환 정무수석을 만났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기자들은 사실 확인을 요구합니다. 이한구 위원장은 “내가 왜 기자들에게 만난 사실을 알려줘야 하느냐”며 버럭 합니다.

그런데 앞서 이한구 위원장은 공천위원장과 최고위원의 만나는 행위 자체에 오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해석한 바 있습니다. ‘압력’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최고위원회 출석 자체가 절차정의에 어긋난다는 원칙이었습니다. 이한구 위원장이 그 근거로 들었던 건 ‘공천위의 독립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청와대 정무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을 몰래 만났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정말로 만났다면 이한구 위원장이 내세웠던 절차 정의를 스스로 훼손한 것이 다름 없습니다. 청와대가 역대 총선에서 공천 압력을 행사해 왔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었습니다.

매우 중대한 의혹이고, 공당의 공천 업무를 담당하는 이한구 위원장은 당연히 이를 밝힐 의무가 있습니다. 그 사실에 따라 책임을 져야 하는 게 절차 정의에 부합합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한구는 틀렸고, 기자들은 맞았습니다.
사석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향해 막말한 것으로 알려지며 파문의 중심에 선 윤상현 의원이 9일 오전 국회 김무성 대표 사무실에 들어서려다 당직자로부터 저지당하고 있다.
이제 윤상현 의원의 막말 파문으로 넘어가보겠습니다. 지난 8일, 윤상현 의원의 막말 녹취록이 공개됩니다. 김무성 대표를 원색적으로 비난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만취한 윤상현 의원이 통화하는 걸 주변에서 엿들은 사람이 녹음한 모양입니다.

'김무성 대표를 죽여야 한다', '솎아내서 공천에서 떨어뜨려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친박계는 “없는 데서 나라님이라고 욕 못할까”라며 큰 일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헤프닝에 불과하니 대표가 윤상현 의원의 사과를 받고 넘어가면 된다고 말합니다. 비박계는 “좌시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공천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나타났고, 공천 배제, 더 나아가 탈당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계파 이익이 워낙 얽히고설켜 판단이 어렵습니다. 누구 편을 들었다가는 정치적 오해도 받을 것 같습니다. 이럴 땐 새누리당이 막말 파문을 어떻게 다뤄왔는지, 그 원칙을 살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경기 파주을 예비후보였던 류화선 전 파주시장 사례입니다.

지난달 26일, 류화선 후보는 여성 당원에게 전화를 걸어 지지를 호소합니다. 이 당원은 이름도 알려주지 않으며 떨떠름한 반응을 보입니다. 2분간의 통화가 끝나고, 상대가 전화를 끊었을 거라 생각했던 류화선 후보는 갑자기 욕설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 독백 음성은 고스란히 녹취가 됐고, 한 언론에 의해 공개됐습니다.

류화선 후보는 즉시 사과했습니다. 파문이 커지자 새누리당 경기도당은 지난 2일 류화선 후보에 대한 윤리위원회를 개최하고 탈당 권유 처분을 의결합니다. 권유를 받은 날로부터 10일 내에 탈당 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제명 처분이 됩니다.

적어도 새누리당이 최근까지 세웠던 절차 정의는 이렇습니다. 상대가 듣지 못할 것이라고 무심코 내뱉은 욕설이라도, 그게 녹취되고 있는지 모르고 있더라도, 또 이에 대해 정중히 사과했더라도, 그 파문이 커지고 있다면, 탈당 권유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적어도 새누리당의 절차 정의대로라면 윤상현 의원은 단순히 사과로 끝날 일이 아닙니다. 류화선 후보와의 형평성 차원에서 더더욱 그렇습니다. 결국, 친박은 틀렸고, 비박은 맞았습니다.

물론, 반박이 나올 수 있습니다. 단순히 결과적인 파문의 크기에 따라 징계수위를 결정하는 게 옳으냐는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이럴 땐 새누리당이 자신의 절차 정의에 대해 뼈저리게 반성한 뒤 새 원칙을 세워야 합니다. 만일 이 원칙에 따라 윤상현 의원에게 자비를 베풀게 된다면, 더불어 류화선 후보도 구제해주는 게 절차 정의상 합당합니다.

정치인의 공적 행위를 판단할 때 절차 정의의 문제는 핵심 준거가 됩니다. 절차 정의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친박이던 비박이던, 원외이던 원내이던, 이런 외부적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원래 정치인의 공적 행위는 목적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당선을 위해서, 혹은 계파의 승리를 위해서,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정치인의 정치적 행위는 말 그대로 정치적이기 때문입니다. 가령, 야당이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을 반대하기 위해 했던 필리버스터는, 새누리당 말대로 그 목적이 선거운동이었을지라도, 절차 정의에는 하자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사회에서 이런 절차 정의를 대입하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언론 역시 이런 대입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쉽게 쓰는 용어가 ‘논란’입니다. 간편하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정치뉴스는 둘이 싸우면 무조건 ‘논란’입니다. 개중 절차 정의에 부합하는 개인 혹은 집단이 있어도 상관없습니다.

역시 그래도 ‘논란’입니다. 절차 정의가 중요한 걸 다 알면서도, 이렇게 화석이 되고 있습니다. 절차 정의의 관점에서 옳으면 옳은 것이고 그르면 그른 것입니다. 언론이 나서 복잡하게 계파 이익을 계산해줄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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