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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알파고는 바둑의 즐거움 모르잖아요"

국내유일 바둑학과 교수·학생들 '충격'…"배울 것도 많아"

"그래도 알파고는 바둑의 즐거움 모르잖아요"
"알파고가 잔실수가 있네…프로기사라면 두지 않는 수도 나오고" 9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명지대학교 창조예술관 바둑학과 강의실에서 인간 최고의 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국을 벽에 걸린 스크린으로 지켜보던 한 학생이 혼잣말을 했습니다.

강의실 곳곳에 놓인 바둑판 앞에 삼삼오오 모여 앉은 동료 학생들도 알파고의 바둑을 보고 "교환에서 실수를 했다", "기복이 심하다", "이해할 수 없는 수를 둔다"며 거들었습니다.

국내에 단 한 곳 뿐인 명지대 바둑학과 학생 30여 명은 수업 대신 세기의 대국을 함께 시청하며 한 수 한 수가 나올 때마다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눴습니다.

이들 가운데에는 프로 기사도 있고 바둑 교육·행정 등으로 진로를 잡고 바둑을 공부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목표는 달라도 바둑 실력은 모두 프로급인 고수들입니다.

이들은 대국을 지켜보며 한 수 한 수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내놨지만 대국 결과는 하나같이 이세돌 9단이 승리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대국이 중후반에 접어들면서 달라졌습니다.

중계 화면에 백을 쥔 알파고가 유리하다는 해설 문자가 나오자 "그러게 백이 조금 유리하네", "흑이 초반 좋지 않던 분위기를 백의 실수로 만회했다고 봤는데 아닌가" 등의 웅성거림이 커지며 강의실에 긴장감이 돌았습니다.

결국 이세돌 9단이 186수 만에 불계패하는 순간 학생들의 입에서는 탄식이 새어나왔다.

"진짜 충격이다", "충격과 공포다"란 말도 이어졌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대국을 지켜본 남치형(41·여·1단) 주임교수는 "당연히 이세돌 9단이 이길 것이라고 예상하고 봐서 그런지 형세를 잘못 판단한 것 같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남 교수는 이번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이 승패에 상관없이 바둑의 깊이를 깊게 할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그는 "오로지 데이터에 의존하는 알파고의 바둑을 바둑으로 볼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면서도 "오늘 대국에서 고정관념과 편견을 깨는 새로운 수를 보여준 만큼 배울 것도 많아서 바둑을 더욱 심오하고 풍부하게 해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대국의 바둑사적 의미에 대해서는 "역사적인 사건인 점은 분명하다"며 "다만, 체스가 90년대 인공지능에 졌다고 해서 체스의 신비가 풀렸다거나 정복됐다고 하지 않듯이 알파고가 바둑의 위치를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학생들도 "이 수는 왜 뒀을까", "알파고가 좌상귀 지키는 수와 우변에서 침투하는 수를 잘 뒀네" 등 의견을 나누며 대국을 복기하는 등 충격에서 벗어나 다시 바둑에 빠져드는 모습이었습니다.

한 학생은 "이세돌 사범이 진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어서 순간 의욕이 사라지기도 했지만 생각해보니 알파고는 실력은 좋을지언정 바둑 두는 즐거움과 행복을 모르잖아요"라며 미소 지었습니다.

명지대 바둑학과는 지난 1997년 문을 열어 올해로 20년째를 맞습니다.

매년 중국 유학생 10여 명 등 40여 명이 입학하며 대학원에는 현재 독일, 네덜란드, 터키, 루마니아 유학생 등 13명이 재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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