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벨기에 룩셈부르크에서 한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벨기에의 사진가 세바스티앵 쿠벨리에가 연 Eunmatown(은마아파트)이라는 제목의 사진 전시회였습니다. 그는 몇년 전 서울에 왔다가 아무 연고도 없는 은마아파트 구석구석 사진을 찍었다고 합니다.
"아파트에 살고 싶어 했던 중산층의 열망 속에서 경제 발전이, 뜨거운 교육열 속에서 다재다능한 신세대가 출현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근현대사를 정확히 꿰뚫은 한 이방인 사진가의 시선 속에서 해질 녘 은마 아파트는 중년의 사내처럼 꽤 쓸쓸한 분위기를 풍긴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부동산 기사에 아주 오랜시간 단골로 등장해 온 은마아파트에는 1970년대 이후 우리가 겪어온 경제개발과 주거, 교육 환경의 변천사가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1963년 광주, 시흥군에서 서울로 편입되기 전 지금의 강남 서초 지역은 영동 지구로 불렸습니다. 논과 밭, 야산으로 이뤄진 한적한 농촌이 은마아파트 같은 대형아파트 건설로 30여년만에 부동산 시장의 불패 신화로 떠오른 것입니다.
1970년대 지금의 강남구 일대 주거지 3.3m²가 3∼4만 원대, 상업지는 15만 원대였습니다. 최근 강남 역세권 대로변의 상업지 3.3m²가 2억 원을 넘기도 했습니다.
은마아파트 계획이 발표된 1978년 서민을 외면하는 고분양가라고 비판도 많았습니다.
1979년 은마아파트 분양가는 2천만 원 정도였는데, 지난해엔 11억 원을 넘겼습니다.
2010년 안전진단을 시작으로 재건축이 진행중인데 당장은 아니지만 추억의 은마아파트는 얼마 뒤 사라질 것 입니다.
어제 다큐멘터리 사진가였던 故 권태균 작가의 1주기 추모 사진전 '노마드'가 끝났습니다. 1980년대 서울 명동과 강남에서부터 전국의 도시 골목골목을 누비며 풍경을 담았던 작가였습니다. 그가 1981년에 찍은 서울 은마아파트 모습은 초가집과 공존하던 때였습니다.
권 작가가 이 은마아파트 사진을 찍은 26살 당시 이곳이 지금처럼 달라진 대접을 받을 줄 알았을까 갑자기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