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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의도된 지역주의'…'우리는 남'이 아니라고 전해라


[ 인터랙티브 그래프 설명 ] 
1. 각 정당이 권역별 차지한 의석 비중을 선으로 연결했습니다.
2. 선의 개수는 각 권역에서 지역구 의석을 확보한 정당의 숫자, 선의 굵기는 각 정당이 차지한 의석 비중을 의미합니다.
3.시기를 이동하면 각 권역에서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 변화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의도된 지역주의’...‘우리는 남’이 아니라고 전해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 "통합과 화합의 정신으로 지역주의를 청산하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 : "망국적 지역주의를 개혁 못하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한 양당 구조를 타파 하겠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가장 뜨거운 인물 3인이 내뱉은 말이다. 하나같이 지역주의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지만, 이 말을 듣고 울림이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돌이켜보았을 때 ‘지역주의 타파’라는 선언은 줄곧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정치적 수사에 그쳤다. 선거가 임박하면 항상 공고한 지역 기반에 의존해 공천을 계획하고, 지역구를 관리를 했다.

시민들 또한 이런 이중적인 모습을 비판하기보다 당연하듯 받아들이는 게 현실이다. “우리 사회의 지역주의는 조선시대부터 존재했어. 새롭지도 않은 일이야.” 지역주의를 얘기할 때 한번쯤 들어봤을 얘기다. 조선의 붕당정치, 당쟁(黨爭)이 지금의 지역주의의 시작이라는 속설을 용인한 결과다. 그 탓에 속설은 어느새 진실이 됐고, 지역주의를 자연의 법칙처럼 여긴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지역주의를 ‘진실 같은 속설’로 볼 수 있을까. ‘TK=새누리당 , 호남=민주당’를 인수분해 공식으로, 아니면 불치병처럼 당연한 듯 받아들일 만큼 지역주의가 우리 뼛속까지 파고든 것일까.

SBS 데이터저널리즘팀은 이런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역대 총선을 분석했다. 서울-경기-인천(수도권), 대구 경북(TK), 부산 경남(PK), 전북-전남(호남), 충북-충남(충청), 강원, 제주를 구분해 1대~19대 총선별 지지 정당을 살펴봤다. 7개 권역별로 당선된 의원 수를 바탕으로 정당 지지율을 구분했다. 그 결과 속설은 속설이었다. ‘뿌리 깊은 나무’로 생각했던 지역주의가 한국 정치의 현실이긴 했지만 그것은 만들어진 현실이었고, 그 뿌리도 깊지 않았다.

# 지역주의 없는 1대~12대 총선...민주세력 vs 반민주세력 

최초의 국회인 제헌국회 선거, 즉 1대 총선(1948년) 결과를 보면, 지금 상황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광복 직후 이뤄진 우리나라 첫 선거였고, 각 지역별로 지지 정당도 다양했다. 김구 선생과 이승만 대통령이 결성한 ‘대한독립촉성국민회’가 전체 의석수 200석 중 55석을 확보했지만, 한국민주당도 29석을 차지하는 등 의원을 1명 이상 배출한 정당만 13개, 무소속 의원만 87명에 이를 만큼 다양했다. 수도권, TK, 호남, 제주 등 7개 지역에서도 10여개 정당에 대해 고른 지지를 보였다. 특정 지역이 특정 정당에 몰표를 행사하는 선거 형태는 없었던 것으로, 애초 총선은 지역주의를 기반해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

분석 결과를 보면 지역주의 선거, 바꿔 말해서 지역정당체제는 이후 선거에서도 드러나지 않는다.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당이 처음 등장한 3대 총선(1954)에선 수도권, 강원도, 호남, TK, PK, 제주 등 모든 지역에서 자유당을 가장 많이 지지했다. 지금과 같이 지역별로 지지하는 정당이 따로 있지 않았다. 4대 총선(1958)에선 호남, PK에서 지지하는 정당이 비슷한 수준으로 다양했다는 것만 봐도, 지금과 같은 지역구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도리어 전국적으로 공통된 지향점과 정치적 성향을 보이면서 선거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기도 했다.  4·19혁명 이후에 치러진 5대 총선에선 수도권, 호남, TK, PK, 제주 등 전국에서 민주당이 가장 많은 지지를 공통적으로 받았고, 전체 의석 수 중 73%를 차지했다. 전 지역에서 야당 지지가 가장 높게 나타다면서 자유당 정권이 붕괴했다. 당시 야당은 집권당의 독재에 대한 저항, 즉 민주화를 가치로 내걸었다는 점을 볼 때, 시민들은 지역성이 아닌 반민주 세력에 대한 심판이라는 공통된 지향점을 바탕으로 투표를 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학계 일부에선 현대 정치에서 지역주의 출발 시점을 박정희 정권 때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분석 결과를 놓고 보면 지역주의가 투표 결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박정희의 군사정변 이후 처음 치러진 6대 총선(1963)부터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 시해사건이 있기 한 해 전인 1978년 10대 총선까지 전국 각 지역별 투표결과를 보면 지역주의가 드러난 선거는 찾기 힘들다.

5번의 총선 동안 전국 7개 지역 중 수도권을 제외하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민주공화당이 지속적으로 가장 많은 의석수를 확보했다. 대표적으로 6대 총선에서 강원도에서 당선된 의원 9명 중 7명이 박정희의 민주공화당 소속으로 78%를 차지했고 호남 67%, TK 95%, PK 77%로 나타났다. 다만, 민주공화당은 수도권 전체 의원 27명 중 9명인 33%에 그쳤다.

이런 추세는 10대 총선까지 이어졌다. 지금 관점에선 호남이 노무현-김대중 정권 시절을 제외하곤 야권성향을 띤다고 파악되고 있지만, 6대~10대 총선에선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6대 총선 63%를 시작으로 7대 90%, 8대 62%, 9대 44%, 10대 44%로 호남 지역구 의원 중 다수당은 민주공화당이었다. 도리어 수도권과 PK에서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의 신민당 소속 의원수가 과반을 넘을 때도 호남에선 민주공화당이 다수 의석을 확보했다.

분석결과를 보면 박정희 정권 시절 치러진 다섯 번의 총선에서 야권 성향을 가장 뚜렷하게 드러낸 곳은 호남이 아닌 수도권이었던 것이다. 민주공화당은 9대 총선(1973년)에서 단 한번만 수도권에서 50%의 의석을 차지했고, 그 외에는 단 한 번도 다수 의석을 차지 한 적이 없다. 지금의 지역주의 관점으로 당시 선거를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박정희 정권 시절 치러진 다섯 번의 총선을 두고 “투표수보다 개표수가 많았다”며 신뢰성에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당시 선거가 무효로 확인되지 않은 이상, 기존 자료를 통해 확인된 결과만 놓고 보면 지금의 지역주의 선거가 당시에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

1979년 12·12쿠데타 이후 군사정권에서 치러진 11대(1981), 12대(1985) 총선에서도 지역주의 선거는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전두환의 민주정의당이 두 번의 총선에서 수도권, 호남, TK, 제주 등 각 지역에서 각각 50%에 육박하는 의석수를 차지했다. 이런 결과를 보면 1대~12대 총선에선 영호남 대결구도로 대표되는 지역주의 투표는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도리어 1대~12대 총선 결과와 패턴을 보면 도시화된 수도권에서 야권 성향이 상대적으로 높았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여촌야도’ 선거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종합적으로 볼 때 7개 권역에서 집권당(여당)에 대한 지지가 고르게 나타났고, 각 지역별 선호도, 즉 지역주의에 따라 몰표가 쏟아진 선거 결과는 없었다. 반민주세력으로 규정되는 ‘집권당(여당)’과 ‘민주세력으로 규정되는 야당’의 대결 구도로 총선이 치러졌고, 투표도 이런 두 진영에 대한 선택이었다고 분석할 수 있다. 즉, 1대~12대 총선 당시에도 영호남 지역감정이 존재했더라도, 이런 지역감정이 투표로 드러나는 ‘지역주의 선거’가 아니었다는 해석이 타당성을 갖는 것이다.

# ‘모 아니면 도’ 지역주의의 시작...13대 총선

지역주의가 선거 결과로 뚜렷하게 나타난 건 13대 총선(1988년)부터다. 반독재와 민주화를 요구한 ‘6월 항쟁’으로 정치민주화의 전환점이 된 시기인 ‘1987년’ 직후 치러진 총선이었다. 87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과 김대중이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면서 노태우가 정권을 잡게 되었다. 같은 시기 민주화 세력은 ‘김영삼의 통일민주당’과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으로 분리됐고, ‘노태우의 민주정의당’과 함께 크게 3축으로 13대 총선은 치러졌다.

결과는 민주정의당(노태우)은 TK에서 86% 의석, 통일민주당(김영삼)은 PK에서 62% 의석, 평화민주당(김대중)은 호남에서 97%의 의석을 차지했다. TK, PK에서 평화민주당은 한 석도 차지하지 못했고, 호남에선 통일민주당과 민주정의당이 완패했다. 지역에 기반을 둔, ‘지역주의 정치’가 선거 결과로 처음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이 노태우의 민주정의당과 합당한 이른바 '3당합당(또는 3당 야합)'이 이뤄진 1990년 이후 치러진 14대 총선(1992년)부터 호남에선 김대중의 민주당 계열이, TK와 PK에선 김영삼의 민주자유당 계열이 절대적 지지를 받는 구도가 고착화됐다. 13대 총선부터 19대까지 각 지역별 지지율을 보면 이런 현상은 뚜렷하게 드러났다.

지금 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은 TK에서 최대 100%(16대,19대 총선)에 해당하는 의석수를 차지하기도 하고, ‘더불어 민주당’ 계열인 ‘평화민주당→통합민주당→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통합민주당→민주통합당’은 호남에서 절대적 지지를 받았고, 최대 97%(15대 총선 호남) 의석수를 차지하기도 했다. 기타 총선에서도 각 지역에 기반을 둔 정당이 가장 많은 의석수를 확보했고, 다른 당 소속 또는 무소속 의원들이 당선됐더라도 해당 지역 출신들이었다. 즉, 민주당 계열은 TK에서 의석을 차지할 수 없고, 새누리당 계열은 호남에서 의원을 당선시킬 수 없는 ‘모 아니면 도’의 선거 결과였고, 철저한 지역주의 선거라는 점에선 차이가 없었다.

종합적으로 1대~19대 총선 분석 결과를 분석해보면, 13대 이전 총선에선 지역주의 선거는 없었고, 시기적으로 볼 때 김영삼-김대중 두 정치인의 분열 이후인 13대 총선부터 19대까지 지역주의 선거가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걸 알 수 있다. 즉, 양김의 분열 이후 한국 정치는 ‘지역정당체제’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13대부터 19대 총선까지 이런 지역주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결과를 놓고 보면, 우리 정치에서 지역주의가 드러난 건 27년 정도에 불과해 조선시대 등 오래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문화라고 보는 시각은 잘못된 ‘속설’일 뿐이라고 할 수 있다. 1948년 제헌국회를 기준으로 68년 선거 역사의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치는 게 ‘27년산 지역주의’라는 말이다. 이처럼 지역주의를 애초에 존재하던 것처럼 여기는 건 잘못된 ‘사실’이다. 도리어 정치엘리트나 지역정당이 자신의 세력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지역주의를 이용하고 만들어나간 것으로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지역주의 선거는 ‘의도된 정치 현실’일 뿐이다. 그렇기에 변화도 가능하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분석: 한창진·안혜민(인턴)
디자인: 임송이       

(SBS 뉴미디어부)   

※ 마부작침(磨斧作針) :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방대한 데이터와 정보 속에서 송곳 같은 팩트를 찾는 저널리즘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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