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태극기 게양 vs 박원순 디스…보훈처의 목표는?

보훈처는 정부부처 중에서 좀 폐쇄적인 편입니다. 지난 7월 23일 국방부 정례 브리핑 때 일입니다. 보훈처 제대군인국장이 나서 정전협정 62주년 행사 계획을 장황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때 기자들은 정전협정보다는 보훈처가 감독하는 재향군인회의 수장인 조남풍 회장의 금권선거 의혹이 더 궁금했습니다.

정전협정 설명이 끝나자마자 당연히 기자들은 보훈처 대변인에게 보훈처가 조 회장의 의혹을 조사하고 있는지, 어떤 조치를 할 것인지 등을 물었습니다. 그런데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보훈처 대변인이 기자들의 질문을 피해 줄행랑을 친 것입니다. 보수(保守)의 시대에 으뜸 보수단체의 회장이 돈으로 표를 얻어 당선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 불편하기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대변인이 입 대신 빠른 발로 상황을 모면할 줄이야....

그런 보훈처가 진보 진영의 박원순 시장이 이끄는 서울시와 광화문 광장 태극기 게양 문제로 다투게 되자 돌변했습니다. 유례없이 개방적이고 소통을 중시하는 기관이 됐습니다. 서울시와의 싸움을 실시간 생중계하듯 시시콜콜 국민들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광화문에 태극기를 거는 것이 목표인지, 박원순 시장을 흠집내는 것이 목표인지 헷갈립니다. 
● 보훈처, 볼썽사나운 싸움 홍보에 열심

보훈처는 광화문 광장에 대형 태극기를 영구 게양하고 싶어 합니다. 지난 6월2일 서울시와 업무협약도 체결했습니다. 협약서에는 ‘영구 게양’이라는 문구가 없지만 보훈처는 서울시와 협의 과정에서 “광화문에 영구 게양하자”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고 주장합니다.

서울시는 광화문 태극기 게양 행사가 광복 70주년 행사의 일환이니 한시적으로 태극기를 걸거나 이동식 게양대를 설치하자는 입장입니다. 광장에 어떤 시설을 항구적으로 설치하는 문제는 신중해야 한다고 부연했습니다. 보훈처가 주장하는 것처럼 태극기 게양을 거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태극기를 광화문 광장에 영구 게양해도 좋고 한시적으로 게양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습니다. 쌍방이 포기하지 않고 머리를 맞대면 합의할 수 있는 지점이 분명히 있는데 보훈처는 서울시를 몰아붙입니다. 지난 15일엔 국방부 브리핑 자리를 빌어 “서울시가 국무조정실의 중재 권고에도 광화문 광장 태극기 게양을 거부했다”고 발표하면서 행정협의조정위원회 조정 신청을 예고했습니다. 어제(21일)는 실제로 조정 신청을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볼썽사나운 싸움인데 이런 과정을 자랑이라도 하듯 기자들에게 사전에 공지까지 하며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습니다. 과거보다 더 폐쇄적으로 조용히 서울시와 이견(異見)을 줄이면 원만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일이건만은...

● 박원순 시장은 태극기를 싫어한다?
보훈처가 이번 논란을 애써 키우고 있는 이유는 뭘까요? 둘 중 하나 같습니다. 광화문 광장에 태극기를 영구 게양하는 사업이 너무도 중요하거나, 진영을 막론하고 지켜야 하는 가치인 태극기의 게양 문제를 핑계로 진보 정치인 박원순 시장을 공격하기 위해서!

보훈처가 평소 보훈처처럼 과묵하게 이 일을 다룬다면 전자 쪽으로 기울겠지만 요즘 워낙 보훈처답지 않게 호들갑이어서 후자 쪽이 더 맞는 말 같습니다. 이번 일로 보훈처는 박원순 시장 반대편 사람들로부터는 사랑을 더 받을 테지요. 단지 그뿐입니다. 대신 박원순 편 사람들로부터는 미움을 받을 테고 광화문 광장 태극기 게양 문제는 고약하게 꼬였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