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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가난한 나라 원조에도 때가 있다"

총리 라오스·몽골 순방 동행 취재기

[취재파일] "가난한 나라 원조에도 때가 있다"
▲ 황 총리 한-라오스 아동병원 방문

● 라오스에서 몽골까지 '50도 기온 차이'

지난 15일 라오스에서 황교안 국무총리의 마지막 일정은 한-라오스 아동병원 방문이었다. 우리 정부가 KOICA, 즉 한국국제협력단을 통해 무상으로 지어준 병원이다. “폐질환이나 바이러스성 질환에 걸린 어린이들이 주로 치료를 받고 있다”고 병원 측은 밝혔다.

총리를 수행하는 공무원들은 병원에서 하나 같이 땀을 흘리고 있었다. 날씨가 덥기도 했지만 다음 순방국이 몽골이라는 이유가 더 컸다. 라오스와 몽골의 기온 차는 50도 정도였다. 라오스는 영상 30도 정도였고, 몽골은 영하 20도를 밑돌았다. 몽골로 가는 전용기내에서 양복을 갈아입기는 힘들다. 그래서 다들 한 여름 날씨의 라오스에서 겨울 양복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아동병원의 라오스 간호사들

● 라오스 아동병원의 '백의의 천사'

 황교안 총리는 병원의 발전을 기원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일하는 한국인 간호사들을 특히 격려했다. "백의의 천사가 재림한 것 같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병원에 한국인 간호사는 5명이다. 이들은 말 그대로 봉사가 좋아서 이곳에서 어린이들을 진료하고 있었다.
엄영아 간호사
기자가 만난 엄영아 간호사는 이대 목동병원에서 간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봉사를 좋아하는 가정 분위기 때문에 라오스 행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가족 중 실제로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은 자기 뿐"이라고도 했다. 양 간호사는 "한 달에 주거비와 생활비로 9백 달러 정도를 받는다"고 말했다. 그게 전부다. "따로 월급은 없고, 9백 달러 정도면 라오스에서 생활하는데 크게 불편하지 않다"고 말했다. 1년 근무에 1년 더 연장할 수 있다. 당연히 연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가능하다면 그 이상도 이곳에 있고 싶다” 고도 했다. 아이들을 돌보는 모습은 진지했고, 그지없이 행복해 보였다.
황교안 총리 몽골 공항 도착

● 몽골서 느낀 '정복국가의 힘'

다음 순방국인 몽골에는 해가 질 즈음 도착했다. 전용기에서 내리기 전 여승무원들은 방한용 귀마개와 '핫 팩'을 나눠줬다. 영하 21도라며 아주 춥다고 했다. 실제 추위를 가늠할 수 없다보니 "과연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런 생각은 5분도 가지 못했다. 강추위였다. 두툼한 외투가 몸통을 감싸고, 귀마개는 귀를 보호했다. 하지만 내복을 안 입은 아랫도리가 문제였다. '핫 팩'을 들고 있어도 와들와들 떨렸다.

추위 만큼 사람들도 위압적이었다. 총리를 환영하기 위해 기다리는 의장대는 평균키가 2m 정도는 돼 보였다. 언어적 특징인지 말투도 거칠었다. 역사상 최대의 제국을 건설했던 정복국가의 '포스'가 느껴졌다. 이전 순방국인 라오스와는 모든 것이 모든 것이 달랐다.
황 총리-몽골 총리 회담


● 몽골의 젊은 지도자들
몽골의 젊은 총리

몽골의 엘벡도르지 대통령은 52살이다. 치메드 사이한빌렉 총리는 46살, 잔다후 엥흐볼드 국회의장은 49살이다. 황교안 총리는 59살이지만 한국에서는 젊은 총리로 평가된다. 이들을 차례로 만난 황 총리는 "몽골인의 자신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몽골은 민주공화국이다.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뽑는다. 엘벡도르지 대통령은 재선이다. 황 총리는 "몽골 지도자들의 젊음은 개혁과 혁신으로 연결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2011년 17.5%나 됐던 몽골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6.9%로 곤두박질했다.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이 문제였다.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투자환경을 배타적으로 만든 것이다. 이 바람에 국내총생산(GDP)의 20.7%를 차지하며 성장을 이끌던 광물자원 개발분야에 외국인 투자가 급감했다.

● 황 총리, "힘들 때 더 도와줘야..."

하지만 지난 5월 구리 3천7백만 톤과 금 1천250톤이 매장된 오유톨고이 광산 2단계 개발 협상이 타결됐다. 이 광산의 구리 매장량은 세계 최대다. 몽골 전체 수출의 2~30% 정도를 차지하는 광산이다. 현재는 추가 개발비 문제로 외국 자본과 협상하는 단계다.

황 총리는 "이런 구리광산 개발 사업이 타결되고 개혁과 혁신에 성공하면 몽골의 성장률은 20%를 넘어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조한 것은 "다른 나라가 어려울 때 도와줘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중국을 예로 들었다. "중국이 몇 년 전만해도 바라는 것이 많았다. 물론 안 한 것은 아니지만 그때 더 충실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충분하지는 않았다"라고 황 총리는 아쉬워했다. 원조에도 때가 있다는 얘기다.  
울란바토르 거리
지난해까지 한국이 몽골에 지원한 것은 2.93억 달러 정도다. 우리 돈으로 3천억 원 정도다. 무상 지원이 2.27억불이고, 유상이 0.66억불이다. 유상지원은 EDCF, 즉 대외경제협력기금이다. 차관((借款)이라고도 한다. 당초 2011년부터 올해까지 3억불을 지원하기로 했었다. 이게 아직까지 0.66억불만 지원된 것이다. 황 총리의 방문으로 3억불 지원 가능 기간을 3년 더 연장했다.

몽골은 당초 시외버스 구매사업, 임대주택 사업, 국립실내체육관 건립을 요구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시외버스 구매사업만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다시 몽골 정부는 학교 현대화 사업 등 7개 사업을 추가로 제안했다. 앞으로 기재부에서 사업 타당성을 조사한 뒤 지원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황 총리는 이런 지원에 대해 "몽골 지도자들이 여러차례 고맙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 삼성물산 못 받은 돈 4천4백만 달러 해결

우리가 얻은 것도 많다. 삼성물산이 철도공사를 하다 4천4백만 달러 정도의 공사 대금을 받지 못했다. 중간에 한 사기꾼의 거액 횡령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삼성물산 현지 법인장까지 구속됐다. 이 문제를 몽골 정부가 해결해 주기로 했다. 몽골 정부가 돈을 대신 주겠다고는 확실히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우리 기업 진출에 장애요인인 지방정부의 횡포도 막아주기로 했고, 부산과 울란바토르 사이의 신규 항로도 내년 3월부터 취항하기로 했다. 교통카드 시스템 구축에도 참여하기로 했다. 세일즈 외교의 성과들이다.

몽골에서는 라오스처럼 북한 문제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외교부는 "북-몽 관계는 두 나라 모두 경제가 어렵고, 서로에 대한 기대 수준이 낮아서 더 가까워지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2013년 10월 몽골의 엘벡도르지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다. 김일성 대학에서 연설도 했다. "어떠한 독재도 영원할 수는 없다. 사람의 자유로운 삶을 위한 열망은 힘이다"라고 말했다. 엘벡도르지 대통령과 김정은과의 면담은 불발됐다. 북한 고난의 행군 시절 몽골은 주요한 탈북 루트 중 하나였다. 외교부는 "지금은 몽골 내에 탈북자가 한명도 없다"고 강조했다.   

몽골은 다른 외국과는 많이 다르다. 말과 차림새만 다르지 외모나 성격은 너무 비슷하다. 황 총리는 "형제의 나라"라고 말했다. 인종적. 문화적 뿌리를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3천 달러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몽골인들에게서 기죽은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몽골인들은 무엇보다 한국을 좋아한다. 역사적으로 몽골은 한국을 무지개의 나라란 의미의 '솔롱고스'로 불렀다. 지금도 그렇게 부른다. 동경의 대상이란 얘기다. 반면 중국에 대해서는 우리가 일본을 싫어하는 만큼 싫어한다. 택시 기사나 호텔 안내원들은 한국어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 한국학, 한국어를 공부하는 젊은이들이 매년 4천2백 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먼 나라도 아니다.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거리가 2400km다. 인천공항에서 울란바토르까지가 2300km라고 한다. 한. 몽 수교 25주년을 맞아 이뤄진 황 총리의 몽골 방문이 두 나라를 더 가깝게 만드는 계기가 됐길 바란다.     

▶ [취재파일] 동남아 최빈국 라오스에 '乙'일 수밖에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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