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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KF-X에 필요한 건 "이봐, 해봤어?" 정주영 정신?

[취재파일] KF-X에 필요한 건 "이봐, 해봤어?" 정주영 정신?
어제(4일) 한 일간지에 “한국형 전투기 KF-X 개발에 도전 정신이 필요하다”는 청와대 안보 특보 임종인 고려대 교수의 기고문이 실렸습니다. 마침 올해가 정주영 회장 탄생 100주년이고 하니 정 회장이 자주 던졌던 질문을 곱씹어 보자는 글입니다. 해보지도 않고 불가능하다고 우려부터 하는 사람들에게 정 회장이 던진 질문은 “이봐, 해봤어?”입니다.

KF-X 사업을 바라보는 청와대, 국방부, 방위사업청의 뜻과 같습니다. 해본 적은 없지만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4대 핵심기술이 구현된 KF-X를 2025년까지 개발하겠다는 것입니다. 해보지도 않았는데 안된다고 지레 겁 먹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백번 옳지만 KF-X 사업의 현실은 정주영 시대와는 판이합니다.

못 준다는 미국에게 여러 차례 굴욕적으로 핵심기술 이전을 사정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방위사업청은 그런데도 미국이 줄 것이라고 국민들을 안심시키곤 했습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기술 구걸’까지는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KF-X의 4대 핵심기술, 특히 에이사(AESA) 레이더의 개발과 체계 통합은 선진국들도 기한을 정해 그 기한 내에 뚝딱 이뤄낸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KF-X는 반드시 띄워야 한다는 전제 하에 현실에 맞는 계획에 따라 알뜰살뜰 예산을 투입해야 합니다. 여론이 두려워 무조건 할 수 있다며 돈을 쏟아 붓다가는 KF-X도 망치고 돈도 시간도 버립니다.

냉정하게 2025년까지 개발할 수 있는 KF-X 시제기의 사양을 도출해서 목표를 수정하고 개발 계획을 새로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일거에 완벽한 전투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진화적 개발'을 고민해 봐야 합니다. 최신예 전투기의 핵심기술은 정신력으로 개발하는 물건이 아닙니다.
● 에이사 레이더 개발 및 체계통합…미국은 19년, 유럽은 22년

유럽의 대표적인 전투기인 유로파이터 타이푼에 장착되고 있는 에이사 레이더(CAPTOR-E)는 1993년 개발을 시작해서 14년 만인 2007년에야 유로파이터 타이푼에 시제품이 장착됐습니다. 이후 6년간 시험비행을 거치면서 임무컴퓨터에 맞도록 업그레이드가 진행됐습니다. 마지막 체계통합을 거쳐 올해 말쯤 유로파이터 타이푼에 에이사 레이더가 최종 장착될 예정입니다. 에이사 레이더 하드웨어 개발, 시험비행, 초도 비행을 합쳐 22년입니다. 개발 비용은 총 3조원대로 알려졌습니다.

미국의 노스럽 그루먼은 F-35에 장착할 에이사 레이더의 모듈 개발에 2년, 시제품 개발에 8년, 시험비행에 7년, 초도 비행에 2년을 쏟아 부었습니다. 19년 만에 에이사 레이더를 완성한 것입니다.

미국과 유럽은 최고의 전투기와 에이사 레이더의 기반이 되는 기계식 레이더를 자유자재로 개발하는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에이사 하드웨어 개발과 체계통합을 끝내는데 19년, 22년씩 걸렸습니다.
● 10년 안에 끝내겠다는 우리의 현실은?

우리의 현실은 초보적인 항공기용 에이사 시제품을 만든 정도입니다. KF-X용 에이사 레이더는 TR(Transmitter-Receiver Module) 모듈이 1,000개 정도 장착돼야 하고 크기도 작아야 합니다. 현재 국내 개발한 에이사 레이더는 모듈 500개에 크기도 전투기 노즈(nose)에 비해 큽니다.

완전한 하드웨어를 개발하는데 몇 년이 필요하고, 완벽한 하드웨어를 갖고 있더라도 항공기에 탑재해 시험비행과 초도비행을 하면서 체계통합의 핵심인 소스코드를 뽑아내야 합니다. 각각 몇 년씩 걸리는 작업입니다. 시험비행, 초도비행 때 레이더를 장착해야하는 플랫폼 즉 기체도 없습니다. 시험비행용 항공기는 외국에서 돈 주고 빌린다지만 초도비행은 KF-X로 해야 합니다. 미국,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는 레이더와 기체를 동시에 개발해서 딱 붙이겠다는 생각입니다. 그것도 기간은 절반, 돈은 5분의 1만 들여서…

KF-X 기술이전 파문이 일기 시작한 9월 말 방위사업청은 “2025년 개발을 장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청와대가 KF-X 사업을 들여다 보면서 압박을 시작하고 여론이 거칠어지자 은근슬쩍 “2025년까지 개발할 수 있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대통령과 국회에는 몇 년전 만들었던 보고서의 문구 몇 개 고쳐서는 4가지 핵심기술을 기한 내 개발할 수 있다는 분홍빛 청사진을 보고했습니다.

정주영의 현실에서 정주영 정신으로 하겠다는 것이라면 그나마 다행입니다만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할 수는 있지만 2025년까지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어려우니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하는데 요지부동입니다.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 말처럼 국방부, 방위사업청은 책임질 일이 두려워 궤도 수정 못하니까 총리 같은 윗선에서 교통정리를 해야 하는데 이제는 청와대부터 방위사업청까지 모두 한 배를 탄 듯합니다. 제 2의 한강의 ‘기적’을 기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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