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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어느 날 노인들이 사라졌다

[취재파일] 어느 날 노인들이 사라졌다
파란색 외투를 입은 그 노인의 이야기를 들은 건 지난 7월이었습니다. 치매를 앓고 있던 노인이 실종 열흘 만에 집 근처 천변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고 했습니다. 취재를 해보니 수사가 소홀하게 이뤄진 것 같진 않았습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은 동네를 샅샅이 뒤져 노인이 지나갔을 법한 길목에 있는 모든 CCTV를 뒤졌습니다. 경찰들에게 주어진 단서는 하나였습니다. 노인이 요즘 들어 부쩍 “고향에 가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다는 겁니다.

아파트 계단을 따라 내려와 노점상들을 지나 골목으로 들어서는 노인. 길이 몇 갈래로 나뉘는 지점에서 노인은 잠시 주춤하더니 곧 왼쪽 길로 들어섭니다. 다시 한 번 골목이 꺾이는 지점, 정면에는 시청에서 설치한 관제 카메라가 있었지만 하필 노인이 집을 나온 시간에 녹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두고 그 시간에 거리를 지나간 버스와 택시의 블랙박스 영상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 노인의 흔적을 발견하긴 어려웠습니다.

노인에게 치매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건 1년 전이었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다쳐 뇌수술을 받은 후부터 종종 기억을 잘 하지 못하고, 장소를 잘 분간하지 못했습니다. 장성한 자식들을 출가시키고 아내 혼자서 노인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는 하루였습니다. 오후 네 시 반쯤, 집 청소를 하던 아내가 잠시 지켜보지 못한 사이, 노인이 집을 나섰습니다. 열흘에 걸쳐 수색이 이뤄졌지만 노인은 끝내 집에서 1.5km 정도 떨어진 천변 수풀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애태우던 가족들은 부검도 하지 못하고 장례를 치렀습니다.

발견 지점에서 5m 정도 떨어진 곳에는 평소 저녁이면 사람들이 붐비는 산책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금 절뚝거리며 걷긴 해도, 겉으로는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이 노인을 이상하게 여긴 사람은 없었습니다.


“기차 레일이 끊어지는데도 그걸 모르고 화물차가 계속 달려온다고 생각해보세요. 어떻게 되겠습니까? 레일이 끊어진 지점에 기차와 화물이 계속 쌓이겠죠? 난장판이 되겠죠? 어르신 머릿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입니다.”
 
                                                - 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 중에서.
‘끊어진 레일’을 달리는 노인들은 해가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경찰청 통계에 의하면 치매환자 실종 건수는 최근 4년간 8% 증가해 지난 2011년 7,604건에서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8천건을 넘었습니다. 4년간 총 3만 건이 넘습니다. 최근에는 노인 인구 1천 명당 7.9명의 새로운 치매 환자가 발생한다는 연구도 발표됐습니다. 12분에 1명씩 치매가 발병하는 셈입니다.

치매 환자들이 실종됐을 때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귀가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환자들은 차도와 인도를 구분하지도 못할 뿐더러 ‘위험한 곳’을 인지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달래를 캔다고, 고향으로 간다고 집을 떠난 노인들은 길을 잃고 떠돌기 십상입니다. 돌부리에 넘어져 다치거나 그대로 주저앉아 저체온증에 걸릴 위험도 큽니다. 지난 21일 강원도 요양원에서 실종된 한 노인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몇 킬로미터나 떨어진 시내로도 수색망을 넓혔지만 닷새 만에 고작 100m 정도 떨어진 저수지에서 물가에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이처럼 실종 지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도 수색이 어려운 건, 치매라는 질환이 겉으로 보기에 보통 사람들과 크게 다른 증상을 노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멀쩡한 노인을 일일이 붙잡고 상태를 확인하지 않는 한, 치매 환자 여부를 겉으로 보고 판단하는 것은 사실상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실, 실종을 예방하거나 실종됐을 때 요구조자를 신속하게 찾을 수 있는 방안은 지금도 있습니다. 경찰청은 이미 지난 2012년부터 아동, 지체 장애인, 치매 노인 등을 위한 지문사전등록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미리 신원을 등록해 실종됐을 때 빨리 보호자를 찾을 수 있게 하는 제도입니다.

이용 방법도 간단합니다. 인터넷이나(www.safe182.go.kr) 가까운 파출소에서 등록할 수 있습니다. 또 서울 등 지자체에서는 통신사와 공조해 치매 노인이 미리 설정한 반경을 넘어 가게 되면 보호자에게 자동 알림 메시지가 오는 배회감지기나 알리미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보통 한 달 만 원 이하, 기초수급자의 경우 무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행된 지 3년이 지난 지문사전등록제의 실제 이용률은 치매 노인의 경우 불과 4%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지난 2월 부산에서 실종돼 서울까지 올라온 한 치매 환자의 경우 1월에 미리 가족들이 등록을 해둔 덕에, 발견된 지 1시간도 되지 않아 신원을 확인하고 가족들에게 연락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나 단체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혹여 다른 센터라도 어르신들을 보내는 것 자체를 ‘버렸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주변 시선을 많이 두려워하셔서 일찍 지치시는 분들이 많아요.” 서울 중구 신당동 데이케어센터 박창남 센터장의 말입니다. 위와 같은 제도들이 잘 이용되지 않는 데엔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도 있지만, 뭣보다 가족들이 ‘주변 시선을 꺼리는’ 까닭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제가 취재를 위해 찾은 센터에서 민요를 배우고 있던 치매 노인 십여 명은 어느 누구 하나 ‘버려졌다’는 인상을 주지 않았습니다. 외려 더 건강해 보였습니다.
지위 고하, 재산, 환경 등 어떤 표면적인 변수들에 상관없이 누구나 앓을 수 있는 치매는 개인이나 가족들에만 오롯이 그 짐을 떠맡기기엔 너무 큰 고통입니다. 치매 환자 가족들은  하루가 다르게 다른 사람이 되는 가족을 지켜보며 “기억을 저당 잡혀 살아가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직원 수 백 명을 이끌던 회사 중역이었던 아버지가, 평소 온화하기 그지없던 어르신이 갑자기 다른 사람이 돼 전에 없던 행동을 하는 것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어려운 일입니다.

한 사람의 무너진 내면과 세계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지탱하라는 것은 과도한 주문입니다. 고통이 수치가 아닌 것처럼 질병 역시 수치가 아닙니다. ‘각자도생’의 고통은 결국 사회의 고통이기도 합니다. 길 잃은 노인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한 발자국, 한 걸음 더 나와 손을 뻗을 수 있는, 그리고 그 손을 잡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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