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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장타와 삼진의 시대, 그리고 김현수의 '특별한 재능'

[취재파일] 장타와 삼진의 시대, 그리고 김현수의 '특별한 재능'
일반적으로 장타의 대가는 삼진이다. 풀스윙으로 장타를 노리는 타자는 당연히 삼진도 많이 당한다. 장타와 홈런이 다득점(과 승리)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상식이 확산되면서, 리그 전체의 삼진 숫자도 꾸준히 증가했다. 올 시즌 국내 프로야구의 삼진 비율은 18.7%. 2002년의 17.7%를 넘어선 역대 최고기록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김현수는 대단히 특이한 타자다. 장타력과 삼진을 피하는 콘택트 능력을 겸비했다.

김현수의 올 시즌 삼진 비율은 9.9%. 200타석을 넘긴 타자 중 삼진 비율 10%가 안 되는 6명 중 한 명이다. 이 6명 중 장타율이 0.5를 넘는 타자는 김현수 한 명 뿐이다.
통산 기록을 봐도 김현수는 별종이다. 김현수의 통산 순장타율(ISO : 장타율-타율)은 0.167. 그런데 삼진 비율은 10.5% 밖에 안 된다. 통산 순장타율 0.160 이상의 타자 중 4번째로 낮은 수치다. 김현수보다 낮은 타자 3명은 모두 93년 이전에 데뷔한 대선배들이다.

<4천 타석 이상>
 
이름 삼진 비율 순장타율
이종범 9.0% 0.161
이만수 9.7% 0.223
양준혁 10.3% 0.213
김현수 10.5% 0.167
한대화 11.4% 0.171

그러니까 김현수는 한국 야구에서 오래 전에 멸종될 뻔했던 ‘교타자의 성향을 지닌 장타자’인 것이다.
김현수는 홈런타자의 무덤인 잠실구장에서 프로 생활 전체를 보냈다. 그 불리함을 이겨내고 높은 장타율을 기록할 수 있었던 비결은 높은 인플레이 타율(BABIP : Batting Average on Ball In Play)이다. 김현수의 통산 인플레이 타율은 0.332. 현역 선수 중 5위이며, 강정호보다 2리 높다.
 
<현역 선수 인플레이 타율 순위. 3천 타석 이상>
 
이름 BABIP
손아섭 0.374
김태균 0.358
박용택 0.339
이병규 0.335
김현수 0.332
김경언 0.330
강정호 0.330
김주찬 0.328
이용규 0.328

야구 연구계에서는 타자의 인플레이 타율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를 ‘타구의 경향’과 ‘운’이라고 본다. 오랜 시간 동안 인플레이 타율이 높다면, 그 타자는 인플레이 타율을 높이기에 유리한 타구 경향 즉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양산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위 표에 등장한 타자들은 현역 최고의 라인드라이브 타자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김현수는 ‘강정호 수준’의 라인드라이브 성향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잠실구장은 담장까지 거리가 멀어 넘기기 힘들지만, 좌우중간의 공간도 가장 넓다. 김현수는 ‘역대급’의 라인드라이브 제조 능력으로 잠실구장의 좌우중간을 뚫어 2-3루타를 만들었고 장타율을 높게 유지한 것이다.

물론 김현수가 ‘강정호 수준의 타자’라는 말은 아니다. 2013-2014년 잠실-목동을 제외한 나머지 구장의 성적을 보면 강정호가 김현수보다 훨씬 낫다. 압도적인 장타력 때문이다.
 
<2013-2014 잠실-목동 제외 나머지 구장 성적>
 
  타석 타율 장타율 출루율 OPS
강정호 403 0.321 0.597  0.415  1.012
김현수 407 0.303  0.476  0.376 0.852
 

‘강정호보다 못 친다’가 ‘메이저리그에서 통하지 않는다’와 동의어는 아니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300타석 이상 들어선 좌익수 요원은 38명. 이 중 강정호보다 OPS가 높은 타자는 9명뿐이다. 즉 메이저리그 좌익수의 76%는 강정호보다 못 친다.

메이저리그에서는 급증하는 삼진이 심각한 골칫거리가 됐다. 2009년에 사상 최초로 삼진 비율 18%, 2012년에 19%, 지난해 20%를 차례로 돌파했다. 늘어나는 삼진은 최근 메이저리그의 극단적 투고타저 현상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그래서 몇몇 팀들은 공격력 강화를 위해, 2000년대 중반까지의 타고투저 시대와는 다른 성향의 타자들을 찾기 시작했다. 삼진을 안 당하고 콘택트 능력을 갖춘 타자들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가을잔치의 터줏대감인 샌프란시스코와 세인트루이스는 거의 해마다 리그 바닥권의 삼진 비율을 찍는다.

지난해 AL 우승팀 캔자스시티 타선은 2년 연속 삼진 비율 최하위를 기록 중이다. 올 시즌 삼진 비율이 두 번째로 낮은 팀은 '머니볼' 시절 이른바 '뻥야구'의 대명사였던 오클랜드다. ‘성공한 전략은 모방된다’는 건 야구계 불변의 진리다. 

메이저리그가 김현수를 주목한다면, 이런 시대적 배경과 김현수의 독특한 성향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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