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당시 중증 환자의 생사를 가른 주요 요인 중 하나는 각 병원의 중환자실 치료시스템 차이라는 의료계 내부 분석이 나왔습니다.
대한중환자의학회에 따르면 지난달 29일부터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 중인 '제12차 세계중환자의학회 학술대회'에서는 이런 내용의 분석결과가 발표됐습니다.
이 보고서를 보면 A병원의 경우 메르스에 감염돼 중환자실에서 치료받은 29명 가운데 4명이 사망해 사망률이 13.7%에 머물렀지만, A병원에서 다른 병원으로 옮겨진 환자 46명 중에는 모두 16명이 중환자실 치료도중 숨져 사망률이 34.7%에 달했습니다.
이들 중환자 75명을 다시 유형별로 나눠보면 34명은 당시 다른 질환으로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가 메르스에 감염됐으며, 나머지 41명은 보호자로 병원을 찾은 경우였습니다.
환자와 보호자 감염자를 따로 놓고 보면 사망률 차이는 더욱 컸습니다.
A병원의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던 환자 감염자는 24명 중 4명이 숨져 16.6%의 사망률을 보였지만 타병원은 10명 중 6명이 사망해 60%의 사망률을 기록했습니다.
보호자 감염자도 A병원은 5명 모두가 생존했지만, 다른 병원은 비교 대상 36명 중 6명(16.7%)이 숨졌습니다.
의료진은 이런 사망률 차이를 두고 각 병원의 중환자 치료시스템과 중환자의학과 전문의 상주 여부가 크게 작용했다고 설명했습니다.
A병원의 중환자의학과 교수는 "현재 유명 대형병원 중에서도 진료 수준에 가장 큰 격차를 보이는 부분이 중환자 치료 능력이라는 데는 중환자의학을 전문으로 하는 의료진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없다"면서 "중환자 치료 노하우와 다학제 진료시스템, 의료진의 급성기 중환자 관리 등이 복합적으로 치료 경과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의료진은 "메르스 환자가 급증할 당시 어느 병원의 중환자실로 옮겨졌느냐에 따라 치료 경과가 달라졌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분석결과"라며 "이를 두고 여러 반론과 논란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의료계에 존재하는 엄연한 현실"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대한중환자의학회도 메르스 당시의 중환자 전체를 분석해봐야겠지만 이런 분석이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고윤석 세계중환자의학회 조직위원장(서울아산병원 교수)은 "신종플루 당시 국내 중환자실 사망률은 33%로 미국(7%)보다 크게 높은 것은 물론 멕시코(39.6%), 아르헨티나(46%)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을 정도로 열악했다"면서 "이후 국내 현실이 크게 개선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도 병원별 중환자실 진료의 질적 차이가 사망률 차이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가능하다"고 평가했습니다.
학회는 국내 전체 의료비의 약 25%를 중환자실 입원 환자들이 사용하고 있지만, 이들의 퇴원 1개월 내 사망률은 약 23.2%에 이른다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도 제시했습니다.
이렇게 높은 중환자실 사망률은 국내 중환자실이 그만큼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학회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중환자의학 전문의사 부족 현상과 부실한 중환자 관련 의료법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국내 성인중환자실의 경우 44개 상급종합병원을 제외하고는 의료법에 '전담의사를 둘 수 있다'고 규정돼 있을 뿐 중환자실 전담의사가 강제사항이 아닙니다.
그나마 상급종합병원도 전담의사의 자격이 전문의로 규정돼 있지 않아 중환자실에 순환 근무하는 전공의나 인턴이 전담의사로 일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와 달리 미국과 유럽, 일본에서는 중환자실 전담의사를 전문의로 규정하고, 해당 전문의가 중환자실에 상주하는 것을 의료법에 필수 조항으로 정하고 있다는 게 학회의 설명입니다.
고 조직위원장은 "의료법에서 전공의와 인턴을 중환자 전담의사로 규정함으로써 중환자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면서 "중환자의학 전문지식을 가진 전문의가 성인 중환자실을 전담하도록 시행규칙을 하루빨리 개정하고, 의료수가도 이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