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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매그넘 사진의 비밀展 : "사진, 잘 찍고 싶으세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보도사진 작가 그룹 '매그넘 포토스' 소속 작가들의 사진전이 최근 개막했습니다. 매그넘의 사진들이 국내에 소개된 건 이전에도 몇 차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참여 작가 9명이 한국을 주제로 작업한 사진들을 모은 기획전이라는 점에서 조금 새롭습니다.

매그넘의 사진들은 말 그대로 '보도사진'입니다. 작가 9명이 곳곳을 누비며 찍은 한국인의 일상, 한국인의 삶의 기록들을 모았습니다. '스트레이트 사진'의 전형답게 상당수는 흑백이고 멋진 조명이나 의도된 연출 같은 것은 전혀 없습니다. 최대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들을 담은 담백한 사진들입니다.

너무나 담백해서, 보고 있자면 가끔 "이게 뭐야?" 싶은 때도 있습니다. "구도도 특별할 것 없고, 소재도 뻔하고, 이런 사진은 나도 찍겠네!" 영 대수롭잖아 보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너무 평범해서 실수로 작품들 사이에 섞인 건 아닐까 의심이 드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래 두 사진들처럼 말입니다.
▲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 가평 유명산 자연휴양림

회화나 조각, 설치 같은 일반 '미술' 전시와 달리 사진전을 취재 가면 카메라를 메고 있는 관람객을 자주 만납니다. 취미로든 직업으로든 직접 사진을 찍는 이들일 겁니다. 그만큼 사진은 '예술'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장르입니다.

멀리 갈 것 없습니다. 누구나 들고 다니는 휴대전화에도 DSLR 부럽지 않은 고해상도의 렌즈가 달려있는 세상입니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 사진깨나 찍는다는 사람들도 참 많습니다. 매그넘의 '거장'들이 찍었다는 사진을 보면서 비슷한 사진이 한두 장쯤은 내 전화기 앨범 속에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꽤 여럿 있을 겁니다.

주최 측은 아마 관객들의 이런 마음을 꿰뚫어 본 것 같습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관람객을 유혹하기 충분해 보이는 '매그넘'이라는 이름 뒤에 굳이 '비밀'이라는 단어를 붙인 걸 보면 말입니다. '매그넘 사진의 비밀'이라는 제목에 맞춰 전시장 내부엔 작품들과 함께 작가들의 작업 과정을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이 함께 전시돼 있습니다. 아예 작은방 하나를 따로 만들어서 작가들의 인터뷰 동영상을 종일 틀어 놓기도 했습니다. '나에게 사진이란?'을 주제로 작가들이 자신의 철학과 작업 방식 등을 이야기하는 영상입니다.

실제로 전시장에선 작품들 못지않게 이 '자료'들이 인기입니다. 주최 측의 얘기로는, 인터뷰 영상을 보면서 자막을 일일이 받아 적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나도 매그넘 작가들처럼 좋은 사진을 찍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겠죠.

영상 속에서 9명의 작가는 각자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경험과 자신의 철학을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듣다 보면 표현은 다르지만 결국 모두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 핵심은 전시장에 붙어있는 아래 문구로 요약됩니다.
대상이 되는 사람과 현실에 대해 찍는 이가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얼마나 많은 애정을 담아서 셔터를 누르느냐에 따라 아주 평범한 장면도 많은 이야기가 담긴 좋은 사진이 된다는 뜻입니다. 한편으로는 식상하고 뻔한 얘기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전시장을 돌며 사진들을 보다 보면 그 뻔한 얘기가 정말 가슴에 와 닿습니다. 앞서 봤던 아래 두 사진도 새롭게 보입니다.
두 사진 모두 테크닉만 놓고 보자면, 구도도 배경도 주제도 어느 것 하나 특별할 게 없습니다. 찍는 이가 별생각 없이 셔터를 눌렀다면 그저 흔해빠진 스냅사진에 그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한국이라는 나라, 한국인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 저 평범한 장면들을 일부러 '선택'했습니다. 작가는 대체 저 사람들을 통해 어떤 현실을 발견했던 걸까 생각하면서 천천히 같은 사진을 다시 보다보면, 자... 처음과 달리 뭔가 좀 애틋한 느낌이 들지 않으시나요?

늦은 밤 택시를 타고 귀가 중인 것으로 보이는 승객의 불콰한 얼굴 속에 술 몇 잔으로 쉬이 달래지지 않는 묵은 피로가 엿보입니다. 바쁜 도시를 벗어나 텐트를 치고 누워 있는 여성의 얼굴 속에서는 여유보다 오히려 어떤 절박함이 느껴집니다. 여유를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여유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듯한, 여유를 찾아다니느라 지쳐서 더 피곤한 모습 말입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럼 이 사진은 어떠신지요? 이번 전시의 포스터에 소개된 사진입니다.
처음 저 포스터를 보고 군인들을 찍은 사진인 줄 알았습니다. 실루엣으로 처리된 뒷모습이 언뜻 보기에 완전무장한 군인들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전시장에서 자세히 보니 군인이 아니라 가방을 멘 학생들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발견한 순간 저도 모르게 "아!" 탄식이 나왔습니다. 대한민국 학생들의 삶이 전쟁터에 나선 군인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입니다.

작가 역시 그 학생들의 뒷모습에서 꼭 '군인'을 봤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작가가 본 건 늙은 아버지였을 수도 있고, 경기에 진 뒤 고개를 숙이고 운동장을 빠져 나가는 선수였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군인이나 아버지, 선수 같은 이름이 아니라 그 뒷모습에서 발견한 느낌입니다. 제 눈엔 무거운 군장을 짊어지고 해를 마주보며 선 군인으로 보였던 그림자에 담긴 피로와 공포, 그리고 쓸쓸함 말입니다.

누구의 뒷모습으로 봤든, 작가 역시 아마 그 비슷한 느낌들을 학생들의 뒷모습에서 봤던 듯합니다. 많은 사진들 가운데 하필이면 그 사진을 포스터에 넣을 대표사진으로 정한 누군가도  자신의 눈에 비친 누군가의 뒷모습에서 비슷한 느낌들을 발견했던 것일 테고요. 구도나 배경, 기술 같은 것들만 놓고는 딱히 특별하달 게 없는 저 사진이 시간을 들여서 오래오래 들여다보며 서 있도록 발목을 잡는 건 바로 그 이유 때문일 겁니다. 그게 바로 '매그넘 사진의 비밀'일 테고요. 그리고 그 비밀이야말로, 결코 화려하지 않지만 늘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보도사진'만의 매력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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