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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이드 포토] 사진 6천 장에 담은 86세 나가사키 피폭자의 '평화 호소'



"귀가하는 산길에서 움직이질 못하는 사람들이 '물 좀 마시게 해 달라'며 나를 잡고 애원했습니다. 빨리 집에 가려는 마음에 손을 뿌리쳤더니 그 사람 피부가 벗겨져 내렸어요. 그런데도 아프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신경이 마비된 것이었죠."

일본 나가사키 원폭 피해의 산 증인인 후카호리 요시토시(86) 옹은 27일(현지시간) 오후 나가사키 시내 원폭자료관에서 일본 포린프레스센터(FPCJ) 주최 취재 투어에 참가한 외신 기자들에게 1945년 8월 9일의 '지옥도'를 소개했습니다.

태평양 전쟁에 마침표를 찍은 미국의 2번째 원자폭탄이 나가사키 상공에서 폭발했을 당시 16살 학생이었던 그는 '학도보국대'의 일원으로 일터에 있었습니다.

그는 "귀가하는 길에 전날까지 내가 봤던 나가사키 역사를 포함해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기에 저기 먼 곳까지 시야에 들어왔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전차를 타고 출근했을 때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듯했다"며 "다니던 교회까지 탄 것을 보고 마치 세상이 끝난 것만 같았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맞이한 '죽음'같은 밤.

그는 "어디선가 우는 소리가 들리기에 '개 울음소리'인가 싶어 어머니에게 물어보니 '조선인들이 오쓰야(시신 곁에서 밤을 새우는 것)를 하는 소리'라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오쓰야를 조용하게 하지만 조선인들은 소리가 크면 클수록 더 애도의 뜻을 표하는 것이라고 어머니는 말했다"고도 전했습니다.

강제징용 등 형태로 나가사키의 군수공장에서 일하다 날벼락을 맞은 조선인들의 허망한 죽음도 그는 이처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나가사키 평화추진협회 사진자료조사부 회장인 후카호리 옹이 15만 명 가까운 사상자(1945년 12월 집계로 7만3천884명 사망·7만4천909명 부상)를 낸 원폭 투하 후 나가사키 상황을 사진을 보여줘가며 설명하자 당시의 참상은 '초현실'에서 '현실'로 변했습니다.

후카호리 옹은 병원 사무직 직원으로 일하면서 1978년부터 다른 원폭 생존자 5명과 함께 원폭 투하 전후의 사진을 수집했습니다.

사진을 모으는데 그치지 않고 찍은 위치와 찍힌 장소, 시기 등을 캡션으로 붙여 데이터베이스화했습니다.

전쟁의 참상과 평화의 소중함을 후대에 알리는데 사진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한 그는 이제까지 모은 사진이 약 6천 장에 달하고 고증을 거쳐 캡션을 붙인 것이 그 중 3천∼4천 장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원점'은 원폭 투하때 잃은 누나(당시 18세)에 대한 기억이었습니다.

"살아 남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사진에 모든 것을 걸기로 했습니다. 피폭자가 고령화해 앞으로 10년만 더 지나면 아무도 남지 않겠지만, 사진은 남겠죠"

그는 사진 수집에 의기투합했던 5명이 모두 세상을 떠나 자신의 책임이 더 무거워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후카호리 옹은 전후 7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아베 정권이 추진중인 집단 자위권 법안과 평화헌법 개정 모색, 원전 재가동 등을 차분한 어조로 조목조목 비판했습니다.

그는 "전쟁이 없었다면 원폭은 없었다"고 전제한 뒤 "대화를 해서 서로 신뢰하는 관계가 되면 싸움은 해도 서로 죽이진 않는다"며 "세계의 각국과 사이좋게 지내고 친구를 많이 만들면 자연스럽게 잘못된 전쟁까지 가지 않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의 안전'을 위해 억지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로 집단 자위권 행사 용인 등을 추진하는 아베 정권의 접근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는 한편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었습니다.

또 아베 총리가 교전권을 부정한 헌법 9조 개정을 호시탐탐 노리는데 대해 "일본이 70년 전 세계에 약속한 것이 헌법이고, 그 70년간 일본은 도쿠가와 이에야스(1543∼1616) 시대 이래 가장 오랫동안 평화롭게 살았다"며 "그 헌법과 (헌법에 담긴) 생각을 바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단언했습니다.

원전 재가동 정책에 대해서도 그는 "세계는 원자력 발전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 확실하지만 최소한 지진도 화산도 많은 일본은 안 하는 것이 좋다"며 "핵은 인간과 공존할 수 없다고 나는 말해왔다"고 강조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일본 사회에 전쟁의 피해를 강조하고 가해 사실은 언급하지 않으려는 풍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개인도 국가도 자기의 치부는 숨기고 자기 상황에 비춰 좋은 이야기만 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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