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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혼탁 선거' 재향군인회…'강 건너 불구경' 보훈처

[취재파일] '혼탁 선거' 재향군인회…'강 건너 불구경' 보훈처
제대 군인들의 모임인 재향군인회가 돈 선거, 매관매직, 인사전횡 의혹으로 시끄럽습니다. 지난 4월 실시된 제35대 회장 선거에서 후보 캠프들이 투표권을 가진 대의원들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의혹, 당선자 측이 재향군인회 산하 기업 사장 인사 청탁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는 의혹, 또 당선자 측이, 선거자금을 빌려준 세력의 인사들을 규정을 어겨가며 재향군인회 요직에 앉혔다는 의혹들입니다.

35대 회장엔 조남풍 예비역 육군 대장이 당선됐습니다. 전체 380표 가운데 250표를 가져간 압도적인 승리였습니다. 재향군인회 노조는 이 표들이 돈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조 회장 캠프가 대의원들에게는 수백만 원, 시도회 회장들에게는 기천만 원을 줬다는 주장입니다. 산하 기업 사장을 원하는 자는 캠프에 수천만 원을 줬다며 관련 메모도 공개했습니다. 조 회장에게 선거자금을 빌려 준 측 사람들이 재향군인회의 돈을 만지는 요직에 앉은 사실은 보훈처 감사를 통해 대충 드러났습니다.

노조의 주장대로라면 부정 선거의 전형입니다. 조남풍 회장은 "돈을 빌려 선거를 했지만 대의원들에게 돈을 준 적은 없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객관적이고 준엄한 조사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재향군인회 직원들을 감독기관인 보훈처에 진정을 했고 보훈처는 감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보훈처도 수상합니다. 사건의 핵심인 돈 선거에는 도통 관심이 없습니다.

● 선거에 쓰인 의문의 돈…"돈은 돌고 도는 것!"

보훈처 감사 결과가 발표되기 전에 재향군인회 35대 회장 선거의 실체를 낱낱이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SBS가 입수한 지난 7일 재향군인회 직원 간담회 녹취 파일을 열어보면 대충의 민낯이 보입니다. 조남풍 회장은 직원들에게 당당히 말합니다.


 
▲ 재향군인회 직원 간담회 녹취

"돈 빌려서 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솔직하게 얘기해서 2번 해서 돈 다 썼는데 돈 빌려서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갚으면 될 거 아니에요. 그거 뭐 잘못됐습니까. 대한민국 자본주의 국가에서."

조 회장은 이번이 삼수입니다. 이전 두 번 선거에서 돈을 다 써버려서 이번엔 빌려서 선거 치렀다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돈을 좀 적절치 않은 데서 빌렸습니다. 과거 재향군인회에 큰 손해를 입힌 측에게서 돈을 빌렸습니다. 이에 대한 조 회장의 발언입니다.

"비리하고 연루된 사람 왜 돈 받았느냐? 아닙니다. 꾼 겁니다. 돈이란 돌고 도는 것이고 도둑놈이 가지고 있던 돈을 여러분들도 한 번씩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도둑놈입니까?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논리를 전개시키면 이 세상에 도둑놈 아닌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요."

비리로 생긴 돈이든 은행에서 빌린 돈이든 돈은 돈일 뿐이라는 논리입니다. 노조 측은 조 회장의 돈 선거 의혹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몰아 부칩니다.

"250표를 받아서 압도적 지지로 당선되셨다고 하시지만 돈이 바탕이 돼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셨다면 회장님 정말 부끄럽게 생각하셔야 됩니다. 제가 알고 있기로는 1인당 5백만 원에서 8백만 원, 시도회 회장들한테 1천만 원씩 2천만 원씩 돌렸고."

조남풍 회장은 돈은 조직 운영에만 썼지 시도회 회장과 대의원에게 돌린 적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조 회장의 측근인 재향군인회 감사실장이 의미심장한 발언을 합니다.

"이상훈 씨나 박세직 씨 그 다음에 박세환 씨 할 적에 여러분들 솔직히 십몇 년 동안 선거를 하면서 말이야 깨끗하게 선거했어요? 없잖습니까! 십몇 년 동안에 한 것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고 회장님 오시는데 그런 얘기를 하냐 이거야."

조 회장을 돕겠다고 한 발언인데 "예나 지금이나 재향군인회 회장 선거는 똑같이 혼탁했다"고 '자책골'을 넣어 버렸습니다. 조 회장은 마무리 발언이 시작됩니다.

"재향군인회 회장이 되기 위해서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여러분들도 대충 알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우리가 일소하기 위해서, 과거는 우리가 다 일소하고 새로운 재향군인회 문화를 창조해나가자고 몇 번 얘기했잖아."

35대까지는 더 이상 묻지 말고 4년 뒤에 올 36대 회장 선거 때부터는 잘해보자는 뜻입니다. 그런데 마무리 발언이 길어지면서 앙금이 쌓인 노조위원장을 향해 노골적으로 '뒤끝'을 내보입니다.

"당신은 뭐 잘못한 거 없어요? 있어요. 내가 알아요. 내가 여기서 얘기 안 합니다.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거 얘기하지 말자 이거야."

우리 모두 잘못이 있으니 다 같이 없는 일로 덮고 가자는 뜻입니다. 법이 엄연한데 그럴 수는 없지요. 잘못한 일 있으면 벌 받아야 합니다.

● 미적지근한 보훈처

재향군인회 감독 기관인 보훈처가 나서서 사태의 진상을 파악해야 합니다. 지난달 11일 재향군인회 직원들이 이번 사태를 조사해달라고 보훈처에 진정서도 넣었습니다. 보훈처는 진정을 받고 지난주까지 감사를 마쳤습니다. 일의 순서에 따라 결과를 발표해야 하는데 차일피일 미루고 있습니다. 왜 미룰까요?

취재 결과, 보훈처 감사는 '돈 선거'에는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사건의 핵심을 비껴간 감사를 한 것입니다. 보훈처 대변인은 "재향군인회 진정서엔 돈 선거 내용이 없었기 때문에 들여다보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진정서에는 돈 선거가 없었지만 노조 측이 보훈처에 구두로 "돈 선거를 꼭 짚어서 검찰 고발이라도 해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보훈처는 돈 선거 의혹을 조사해야 마땅합니다. 감독기관인 보훈처의 입장과 조남풍 회장의 발언 분위기가 어쩐지 비슷합니다.

산하 기업 10개, 전국 곳곳 노른자위 부동산, 군부대 이전 사업 개발권 등 이권 많은 재향군인회의 회장 선거입니다. 선거 캠프들이 돈을 썼고 돈을 대준 측이 재향군인회에 대거 입성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구구절절 설명 안 해도, 누가 봐도 의심스러운 선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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