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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씨' 말랐다던 양파, 곳곳에 산더미…사재기(?)

지난 달 23일 제보 사진 한 장을 받았습니다. 경기도 안양의 한 교량 아래 수북이 쌓여 있는 양파 더미였습니다. 당시는 양파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던 때였습니다. 시중에 ‘양파 품귀’가 계속돼 농식품부가 ‘경계’ 경보를 발령한 때이기도 했습니다. 현장에 가봐야 했습니다. 도착하니 입이 벌어졌습니다. 양파 한 망씩 차곡차곡 쌓인 게 제 어깨 높이까지 올라왔습니다. 양이 도저히 가늠 안 돼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6~7백 망 정도 된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누가 이곳에 그 많은 양파를 가져다놨을까요? 무작정 기다렸습니다. 또 무작정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봤습니다. 하루 종일 뻗치다 보니 퍼즐이 하나하나 맞춰졌습니다. 양파 더미는 5~6일 전부터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 양파를 가득 실은 차량이 자전거 도로를 침범해 들어왔다는 것, 쌓아둔 정도만큼 되는 양파를 옆에다 다시 쌓으려다 제지를 받고 돌아갔다는 것까지 취재가 됐습니다. 남은 퍼즐 조각은 ‘누구’와 ‘왜’였습니다.

몇 가지 추론을 해봤습니다. 양파 가격은 지난 5월부터 꾸준히 오르고 있습니다. 양파 유통 구조를 보면 봄철 전국 양파 농가에서 한 번 수확한 양으로 1년 소비가 이뤄집니다. 지금처럼 양파가 부족하면 양파를 쥐고 있는 사람들이 권력이 됩니다. 그들이 양파를 시중에 쉽게 내놓을 리 없습니다.

갖고 있으면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15kg짜리 양파 한 망을 예로 들겠습니다. 5월에 도매가격으로 10,965원이었습니다. 6월에 14,940원이었습니다. 7월 들어선 18,315원으로 수십 %씩 가격이 뛰고 있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도매가격이지, 최종 소비자들은 시장에서 25,000원 이상 주고 사고 있습니다. 양파 더미 주인의 정체가 누구인지 알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관할 경찰서에 문의했습니다. 수상한 양파 더미의 주인이 누구인지 밝혀달라고 말이죠. 우리나라 경찰, 대단했습니다. 사흘 만에 주인을 찾아내 조사를 마쳤다고 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인근 전통시장의 도매상이랍니다. 양파 놔둘 곳이 없어서 교량 아래에 쌓아뒀답니다.

창고에 가보니 진짜로 양파가 한가득 쌓여 있었답니다. 사재기 혐의에 대해서도 조사를 했답니다. 하지만 물건을 싸게 산 뒤 값을 얹어 되파는 게 일반적인 ‘상도(商道)’라 혐의 적용이 어렵다는 설명이었습니다. 허가 없이 하천 근처에 물건을 적재한 부분은 잘못이라서 ‘하천법 위반’ 혐의만 적용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나마 이번 양파 더미가 발견된 건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양파 등 농작물을 취급하는 대형마트 3사의 바이어들은 하나 같이 입을 모아 얘기합니다. 지금처럼 농작물 품귀 현상이 일어나면 도매쪽으로 '큰 손', 작은 손' 할 것 없이 개인 저장고에 가득 쌓아두고 있다고 말이지요. 꼭꼭 숨겨놓기 때문에 그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할 수 없을 정도랍니다.

양파 품귀 현상이 심각해지자 정부가 9일 마침내 기존 ‘경보’ 단계에서 ‘심각’ 단계로 격상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달 말 대책 회의 자료를 보면 정부는 이미 ‘심각’해진 이유를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큰 손', '작은 손'들 시중에 양파를 풀지 않고 있는 게 양파 품귀를 가속화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대책도 내놨습니다. 양파를 수입해 시중에 풀겠다고 말이죠. 양파를 쥐고 있는 도매상들에게 ‘양파 가격 떨어질테니 더는 양파 갖고 장난치지 말라’는 시그널을 보낸 겁니다.

서울대 김완배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이 시그널에 대해 낙관적이지 못합니다. “양파 수입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습니다. 온갖 종류의 통관 절차를 거쳐 시중에 유통될 때까지 한 두 달이 걸릴 텐데 그때쯤이면 도매상들이 이윤을 남길 대로 남기고 철수할 게 뻔합니다. 그들이 바보입니까.”

결국 양파 수입 때문에 세금 축나고, 그렇다고 힘들게 농사 지어 일찌감치 양파를 넘겨버린 농가가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올라갈 대로 올라간 양파 가격에 한숨 쉬고 돌아서는 주부들의 심정은 또 어떻겠습니까.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 ‘사재기’가 아니라면 아닌 것이겠지요. 하지만 ‘이윤 추구’라는 인간의 욕망을 잘 다스려 가면서 시장을 원활하게 돌아가게 만드는 게 지금 우리 정부가 추구해야 할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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