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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고궁보월(古宮步月)展 : 그림으로 만나는 숨겨진 궁(宮) 이야기

[취재파일] 고궁보월(古宮步月)展 : 그림으로 만나는 숨겨진 궁(宮) 이야기
- 창덕궁 부용지 설경 -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더위에 가뭄까지 겹쳐서 참 걱정입니다. 잠시나마 더위를 식혀줄 시원한 그림 한 점 소개합니다.

언뜻 보면 한지에 먹으로 그린 그림 같습니다. 실제는 캔버스에 유화물감으로 그린 그림입니다. 동양화를 전공하고 서양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석원 작가의 신작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18년 전, 1797년 12월 어느 밤에도 창덕궁 부용지는 눈에 덮여 있었나 봅니다. 한없이 고즈넉하고 아름답게만 보이는 저 궁궐 안에서 당시 왕이었던 정조는 편지를 썼습니다.

"겨울 들어 연말까지 73일 동안 스물일곱 번 큰 눈이 내렸다. 세밑 전에 큰 눈을 얻었으니 내년에는 큰 풍년이 점쳐져 속으로 기뻤다. 매서운 추위가 아교도 꺾을 정도인데 한결같이 편안한가? 한 해가 곧 넘어가려 하니 그대가 보고 싶은 마음이 평상시보다 곱절이나 더하다." - 1797년 12월, 정조가 광주목사 서형수에게 보낸 편지

정조는 조선의 최고 전성기를 이끌었던 덕망 있는 군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여러 드라마에도 자주 소개되는 왕입니다. 짧은 몇 문장에도 신하를 사랑하는 마음이 절절히 느껴지는 저 편지를 보면 능력과 지혜만 뛰어난 게 아니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도 정말 깊었던 듯싶습니다. 그 마음은 이어지는 편지에 더 잘 드러납니다.

"여기서는 나날이 마음과 마음이 초가집에 누더기를 입은 백성들에게 향한다. 그들을 품고 보호하는 방법이 그릇되어 유랑하는 자들이 길에 이어졌다고 남쪽에서 전해오는 소식에 귀가 소란스럽기 그지없다. 세전에 벌써 이 지경이니 세후에는 어떨지 알만하다. 한밤중에 책상을 앞에 두고 자주 일어나 서성이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가난에 시달리는 백성들 걱정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는 정조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합니다.

조선의 최고 전성기를 이끌었던 왕이긴 하지만, 군주로서 정조의 삶이 평탄하기만 했던 건 아닙니다. 어린 시절엔 권력을 둘러싼 왕과 신하, 노론과 소론 사이 치열한 투쟁 과정에서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잃었습니다. 이 때문에 정조는 왕이 된 후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몬 노론 세력을 쳐내면서 외가를 사실상 몰락시켰습니다. 젊은 신하들을 모아 규장각을 세우고 개혁을 도모했지만, 노쇠한 기득권 세력들의 반대에 막혀 상당수는 절반의 성공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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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덕궁 부용정의 말 -

그림 왼편으로 창덕궁 부용정 앞에 노새들이 한 떼 모여 있습니다. 반대편에선 흰말 한 마리가 슬픈 눈으로 노새 떼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파란만장했던 정조의 삶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노새는 암말과 수탕나귀 사이에 태어난 잡종입니다. 종간 잡종이기 때문에 번식력이 없습니다. 작가는 정조를 도와 변혁을 이루려 애썼지만 결국 뜻한 바를 다 이루지 못하고 좌절한 규장각의 젊은 학자들을 노새로 표현했습니다. 흰말은 평생 안타까운 마음으로 아들을 지켜보며 살았던 혜경궁 홍씨입니다.

이 정도는 평소 드라마만 열심히 챙겨 본 이들도 언뜻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얘기입니다. 하지만, 역사에 별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에겐 다소 생소하게 들릴 이야기들도 그림 속에 많이 숨어 있습니다. 경복궁 향원정을 그린 아래 두 그림이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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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 향원정 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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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 향원정 호랑이 -

향원정은 1873년 당시 22세였던 고종이  한 살 연상이었던 명성황후를 위해 지은 정자입니다. 경복궁의 별궁인 건청궁에 연못을 파고 정자를 올렸습니다. 향원정에 담긴 고종의 마음을 상상해 보면 고종은 명성황후를 꽤 사랑했던 듯합니다.

흥선대원군과의 첨예한 대립, 비극적인 죽음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각인된 명성황후의 이미지는 지나칠 정도로 강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실제 명성황후는 여성으로서 꽤 매력적인 분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네 차례나 조선을 답사했던 영국의 여성 지리학자 비숍이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이라는 책에서 묘사한 명성황후의 모습입니다.

"왕비(명성황후)는 마흔 살을 넘긴 듯했고 퍽 우아한 자태의 늘씬한 여성이었다. 피부는 너무도 투명하여 꼭 진줏빛 가루를 뿌린 듯했다. 눈은 차갑고 날카로우며 예지가 빛나는 표정이었다. 대화의 내용에 흥미를 갖게 되면 그녀의 얼굴은 눈부신 지성미로 빛났다. 나는 왕비의 우아하고 고상한 태도에 감명받았다."

작가는 달빛에 물든 향원정 앞을 지키고 있는 호랑이와 사자를 통해 고종의 마음을 담아냈습니다. 격동하는 역사와 거센 외세의 압박 속에서 명성황후를 지키려 애썼던 애틋하고 절절한 마음입니다. 역사와 정치, 외교 같은 거추장스런 천막들을 걷어내고 들여다 본, 아내를 향한 한 남편의 간절한 마음입니다.

사실, 궁이라는 곳은 참 독특한 장소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화려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그 속엔 수많은 암투와 비극과 눈물이 담겨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 가운데 하나가 창덕궁 낙선재입니다.

낙선재는 헌종이 총애하던 순화궁 경빈 김씨를 맞으면서 사랑의 징표로 지어서 하사한 건물입니다. 그런데 후에 상중인 왕비와 후궁들의 거처가 됐습니다. 영친왕의 부인 이방자 여사와 고종황제의 딸 덕혜옹주 등 조선 왕실의 마지막 여인들이 한 많은 생을 마감한 곳이기도 합니다.

작가는 낙선재 앞에 흐드러지게 핀 매화 가지 뒤로 닭과 병아리를 가득 그려 넣었습니다. 매일 꼬박꼬박 알을 낳는 닭은 다산의 상징입니다. 낙선재에서 외로운 삶을 마감한 수많은 궁중 여인들에게 바친 작가의 위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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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덕궁 낙선재의 닭과 병아리 -

작품들은 모두 가나아트센터에서 진행 중인 사석원 작가의 개인전 '고궁보월(古宮步月)'에 소개된 작품들입니다. 전시 제목은 옛 궁에서 달그림자를 밟는다는 뜻입니다. 작가의 설명을 들으며 전시장을 돌면서 역사에 대한 작가의 해박한 지식과 놀라운 상상력에 감탄했습니다. 끝으로, 전시 도록에 남긴 작가의 후기 가운데 한 구절을 옮깁니다.

"살아 오면서 나는 수없이 많은 날들을 달빛 아래서 서성거렸습니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의 또 아버지의 또 아버지의 아버지도 달빛에 취한 채 그러셨겠지요. 그 밤에 적지 않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졌을 거라고 짐작됩니다. 그분들이 살았던 시대의 주군인 조선의 왕들은 백성들이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고뇌나 또는 희열에 들떠서 달의 그림자를 밟았을 것입니다."

기사에 인용된 글들도 모두 전시 도록에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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