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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국 공예가 세계 무대에서 성공하려면?

[취재파일] 한국 공예가 세계 무대에서 성공하려면?
지난주, 세계 최고 디자인 경연장인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맞아 이탈리아 밀라노에 다녀왔습니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해마다 4월 초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를 중심으로 밀라노 시내 전역에서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전시관을 운영하는 디자인 축제 기간입니다. 1961년 시작됐는데, 해마다 전 세계에서 3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권위 있는 행사입니다.

이번 방문은 디자인 위크 기간에 맞춰 함께 열린 한국 공예전을 취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한국공예의 법고창신'이라는 이름으로 2013년 시작해 올해로 3회째를 맞은 전시입니다.

'법고창신'은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입니다. 옛것에 토대를 두되 그것을 변화시킬 줄 알고 새것을 만들어가되 근본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로, 특히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예술 창작의 중요한 방법론이 돼 왔습니다.
[취재파일] 김영아
[취재파일] 김영아
[취재파일] 김영아
이번 전시는 '수수 덤덤 은은'이라는 주제로 진행됐는데 금속공예, 도자공예, 지공예, 섬유공예, 죽공예, 칠공예 등 6개 분야 장인 23명의 작품 192점이 전시됐습니다. 전통 도자 기법을 응용해 평면에 흙물을 수십 번 칠한 뒤 가마에 구워서 만든 '도자회화', 전통 장인과 디자이너가 함께 만든 현대적인 놋그릇 등 하나같이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겸한 작품들이었습니다.

개막을 하루 앞두고 언론 공개회에서 미리 작품을 둘러본 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취재진끼리 잠시 작품 얘기를 했습니다. 어느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들었는지 편하게 얘기를 나눴는데, 인상적이었던 작품들이 대부분 일치했습니다. 물망에 오른 작품들의 공통점은 전시 작품들 가운데 현대적인 기법을 상대적으로 많이 가미한 작품들이었습니다. "역시 보는 눈은 다들 비슷하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뜻밖의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공식 개막일을 맞아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어느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드는지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꼽는 리스트가 전날 한국 기자들끼리 꼽았던 리스트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네 사람을 인터뷰했는데 네 사람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같은 작품들을 지목하더군요.

취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그 얘기를 꺼냈더니 함께 취재했던 다른 언론사 선배가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본인이 인터뷰한 사람들도 모두 제가 만난 이들과 같은 작품들을 인상적인 작품으로 꼽더라는 겁니다. 한편으로는 신기하고 그러면서 참 뜻밖이었습니다.

이유가 뭘까? 다시 우리끼리 토론을 벌였습니다. 정답은 누구도 알 수 없겠죠. 하지만 한참 얘기를 나눈 끝에 정답을 추론해 볼 만한 몇 가지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첫째, 외국인들이 꼽은 인상적인 작품들은 모두 전시 작품들 가운데 디자인에서나 기법에서나 가장 전통적인 작품들이었습니다. 둘째, 그중에서도 가장 관심이 집중됐던 작품은 작가가 직접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설명한 작품이었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바탕으로 저희 기자들끼리 내린 결론을 이렇습니다. "법고창신의 핵심은 '신(新)'이 아니라 '고(古)'에 있는 것이구나."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작품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역시 홍보구나."

첫 번째 결론은 간단합니다. 그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이야기대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뜻입니다. 한국 전통 공예가 세계 무대에서 힘을 가지려면 서양의 현대적인 디자인을 얼마나 잘 흉내 내느냐가 아니라 우리만의 독창적인 디자인을 얼마나 잘 계승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거죠. 이건 어디까지나 작가들 본인의 몫입니다.

하지만 작가들만 노력해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행사에 맞춰 로마의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문화부 관계자가 전시장을 찾았습니다. 함께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안타까움을 토로하더군요. 한국의 수십 개 언론사 가운데 이탈리아에 특파원을 둔 언론사가 단 한 곳도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SBS도 이탈리아엔 따로 특파원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 언론을 통틀어 이탈리아에 특파원을 둔 곳이 한 곳도 없다는 사실은 저도 처음 알았습니다. 반면 가까운 일본은 물론 우리보다 훨씬 폐쇄적인 중국도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주요 언론은 모두 이탈리아에 특파원을 두고 있다고 했습니다.

과거 로마제국 시대의 영광과는 비교할 바가 못되지만, 이탈리아는 여러 면에서 여전히 꽤 영향력 있는 나라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력한 종교 가운데 하나인 가톨릭의 교황청이 있는 나라입니다. 또, 세계적인 패션과 디자인의 중심지입니다. 해마다 수많은 한국 관광객이 찾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이런 나라에 한국 언론의 특파원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은 스스로에게 꽤 중요한 질문을 던지게 했습니다. 바로, 우리가 얼마나 세계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느냐 하는 질문입니다.

사실, 이른바 살만한 나라들 가운데 한국만큼 국제 뉴스 보도 비중이 낮은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방송이든 신문이든 엽기적인 사건사고나 선정적인 화제성 기사가 아니면 국제뉴스는 늘 찬밥입니다. 이상하게도 우리 국민들이 남의 나라 일에 별 관심이 없는 탓입니다.

문제는, 남들에 대해 더 잘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 만큼 스스로를 남들에게 소개하는 데도 너무 무심하다는 점입니다. 언론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말로는 글로벌 시대를 외치면서 참 폐쇄적입니다. 이러니 서양 사람들이 기모노는 알지만 한복은 모르고, 도자기는 모두 중국이나 일본 제품인 줄 아는 게 이상할 리 없는 일이지요. 결국 우리 문화와 공예를 알리는 일은 작가들만의 몫이 아니라 작가와 언론, 정부, 국민들까지 우리 모두의 몫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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