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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왜 경찰은 성폭행 피해자·피의자를 한 차에 태웠을까

[취재파일] 왜 경찰은 성폭행 피해자·피의자를 한 차에 태웠을까
 지난 4일, 서울지방경찰청은 사건 초기부터 피해자를 ‘원스톱’으로 지원하겠다며 범죄피해자 지원 기관 6곳과 업무협약을 맺었습니다. 한국피해자지원협회, 국민건강보험공단, 대한법률구조공단 등 모두 6곳과 협조해 강력 사건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피해자들에게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겠다는 내용입니다. 경찰이 피의자를 붙잡는 것에 더해 피해자 보호와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건데요.

 사건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피해자의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상태를 파악해 치료와 생계비, 법률상담, 범죄현장 청소 등의 지원을 하겠다는 구체적인 방안들을 보면서, 어느 덧 벌써 한달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건과 그 사건을 취재했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취재를 하며 모두 담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뒤늦게서야 이렇게 몇 자 그 때의 기억을 풀어놓습니다.

 ● 2월 14일 새벽, 무슨 일이 있었나

 사건은 지난 달 14일 새벽으로 거슬러 갑니다. 새벽 1시쯤, 18살 김모 양은 지하철역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공원처럼 조그맣게 꾸며진, 나무와 풀숲이 우거진 공간이 있었는데 바로 그 곳에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휴가를 나온 군인 21살 이모 상병이었습니다. 이 상병은 김양을 넘어뜨리고 머리와 얼굴을 때렸습니다.

그리고 신체 부위를 만지며 성폭행을 시도했습니다. 늦은 시각이라 주변엔 사람들이 없었는데, 다행히 김양의 비명소리를 들은 주변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습니다. 경찰 2명이 현장에 도착했고 그러자 이 상병은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경찰은 주변 아파트 단지 사이로 달아난 이 상병을 쫓아갔고 결국 붙잡았습니다.  
휴가 나온 군인 1

 현장에서 끔찍한 범행이 이뤄지고 있었고, 경찰이 빠르게 출동해 피의자를 검거할 수 있었던 건 물론 칭찬할 만한 일입니다. 실제로, 피해자 김양도 경찰이 없었다면 자신은 그 자리에서 끔찍한 일을 당하고 또 죽었을지도 모른다며 경찰에게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가장 비난받고 또 강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바로 이 상병일 것이고요. (이 상병은 강간치상 혐의로 군 헌병대에 인계됐고, 군사재판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경찰이 범인을 검거하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부인하긴 어렵습니다.

 앞서 말했듯 당시 현장엔 경찰 2명이 출동했습니다. 이 상병이 현장에서 달아나자 경찰 둘은 모두 이 상병을 쫓았습니다. 직선거리로 300m 가량 떨어진 아파트 단지 안에서 이 상병을 붙잡았는데, 이 상병이 도주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얼른 순찰차에 태워 파출소로 데려가야 했습니다. 이 상병을 붙잡은 곳에서 순찰차를 가지러 다시 경찰 1명이 현장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현장에 남겨졌던 김양은 집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었습니다. 김양을 만난 경찰은, 조사를 위해 같이 파출소로 가자며 집으로 가려던 김양을 먼저 순찰차 조수석에 태웠습니다. 그리고 그 순찰차는 피의자 이 상병과 다른 경찰이 남아 있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뒷좌석에 이 상병과 다른 경찰을 태웠지요. 그렇게 조수석엔 피해자 김양, 뒷좌석엔 피의자 이 상병을 태운 순찰차는 함께 파출소로 갔습니다.

 ● 경찰은 왜 피해자·피의자를 한 차에 태웠나

 ‘성폭력범죄의 수사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규칙’을 담고 있는 경찰청 훈령 제734호에 따르면, 경찰관은 현장에서 성폭력범죄 피의자를 체포 또는 임의동행하는 경우에 즉시 피해자와 분리조치하고, 경찰관서로 동행할 때에도 분리하여 이동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날의 대처는 이 훈령을 정면으로 위반한 건데요. 경찰도 피해자와 피의자를 한 순찰차에 태웠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당시 상황이 급박해서 일어난 실수였던 것 같다’라는 건데요. 경찰은 피해자가 사라져버리면 다시 찾기가 힘든데, 피해자가 현장을 이탈하고 있던 상황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피의자 역시 도주할 우려가 있었고요. 해당 파출소에는 순찰차가 2대 있는데, 1대는 이 곳 현장에 출동했고 나머지 1대는 가정폭력으로 신고가 들어온 다른 현장에 출동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당장 물리적인 지원을 받을 수 없었던 다급한 상황에서 피해자와 피의자를 한 차에 함께 태우게 됐다는 설명입니다. 또 순찰차의 앞좌석과 뒷좌석 사이엔 칸막이가 있는데(동그란 구멍들이 여러 개 뚫려 있습니다), 그래서 피해자에게 직접적으로 가해자가 위해를 가할 수는 없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아리] 말뿐인 '
 ● 피해자를 경찰서 혹은 파출소로 바로 데리고 갔어야 하나 

 다른 범죄 피해자도 그렇겠지만, 특히 성범죄 피해자에겐 가해자를 마주 대하는 것이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그 시점이 사건이 발생한 직후라면,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감이 아마 극도로 클 때일 겁니다.

피해자 김양도 당시 차 안에서 피의자 이 상병이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하며, 당시 마음이 어땠냐는 조심스러운 질문에 더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쉽게 발생할 수 있는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경찰청 훈령에서도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은 규정을 마련했을 겁니다.

 경찰의 당시 상황에 대한 해명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인력이나 차량 부분에서 한계도 분명히 있었고, 그럼에도 피의자를 빠르게 쫓아가 놓치지 않고 검거한 부분은 기실 박수를 받아 마땅합니다. 이 원칙이 현실적으로 너무나 지키기 어려운 수준의 원칙인가. 그리고 이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의 대처가 올바르지 않았다고 비판할 수 있을까. 혼란스러웠습니다.

 취재를 하면서 여러 곳에 자문을 구했습니다. 피해자가 현장을 떠나려했고 피의자는 도주의 우려가 있었다는 상황을 설명하고, 이 상황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자 ‘그럴 수도 있는 상황’으로 봐도 될지 혹은 기사를 써서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을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도 하지 못했던 답이 돌아왔습니다. ‘피해자를 꼭 그때 파출소에 데리고 갔어야 하느냐’는 거였습니다.

그럼 피해자 보호는 어떻게?

 경찰은 당시 피해자와 피의자를 함께 차에 태우고 파출소에 도착한 뒤, 두 사람을 곧바로 분리해 피해자는 파출소 2층으로 가게 했다고 했습니다. 그 뒤엔 인적사항을 확보하고 피해 내용을 여경을 통해 간단하게 조사한 뒤에, 피해자가 현장에서 휴대전화 등 소지품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해 다시 현장에 들렀다는 겁니다.

그리고 난 뒤에 김양은 원스톱센터로 갔습니다. (※ 원스톱센터는 여성이나 아동 등 피해자에 대한 상담, 의료, 수사, 법률 지원을 한 장소에서 365일 24시간 지원하는 곳을 말합니다. 특히 성폭력 피해자에 대해 증거를 채취하는 등 응급의료 지원을 하고, 또 여경이 상주하며 조서 작성 등 수사 지원까지를 하고 있습니다. 성폭력범죄 피해자들이 병원과 경찰서를 오가며 2, 3차 피해에 노출됐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취재를 하며 만난 한 전문가는, 경찰이 피해자를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문제가 시작된다고 말했습니다. 피해자 본인이 현장에서 명확하게 의사를 피력했다면 이후에 추가 조사가 가능하도록 인적사항을 확인한 뒤에 일단 가족에게 안전하게 인계하거나 스스로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도록 돕는 조치가 가장 적절했을 거라는 분석입니다. 경찰의 인력이나 장비 면에서 한계가 있다면, 경찰은 가해자에 집중하고 피해자는 피해자 보호를 전담하는 곳에서 맡아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예컨대 경찰과 연계돼 운영되고 있는 원스톱센터나 정부 지원을 받는 민간단체에서 사건 직후 피해자를 데려가 보호하고, 사건의 사실관계 파악이 필요하다면 피의자가 간 파출소나 경찰서가 아니라 그와 철저히 분리된 다른 공간(병원 등)에서 조사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미 설립돼 있는 원스톱센터의 취지가 바로 그러합니다. 

 전문가는 훈령이 지켜지지 않은 이유로 경찰의 업무 관행을 꼽기도 했습니다. 신고가 들어온 사건에서 피해자의 신원을 확인하지 못하거나 그 소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 나중에 가해자가 범행을 부인하고서 경찰관에게 자신에 대한 체포 행위가 불법이었으며 범죄 행위에 가까웠다고 비난을 할까 항상 불안감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항상 어떤 형태로든 피해자를 현장에서 ‘확보’해 경찰서나 파출소로 데려오려는 경향이 있다는 거였습니다.
피해자 보호 전담
● ‘피해자 보호 원년의 해’ 무색하지 않도록 

 이 기사를 쓰고선 사실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습니다. 자칫 이 기사가 원하는 결론이, 당시 출동했던 경찰이 잘못 대처했으니 그 경찰만 징계하면 된다는 방식으로 결론이 맺어질까 걱정이 됐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문제가 해당 경찰의 개인적인 잘못으로만 귀결되는 것은 원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엔 그 두 경찰이 잘못했으니 그들에게 벌을 주면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엄연히 따라야 하는 훈령이 있고, 그것을 지키지 않았으니 잘못이라고 할 순 있겠지만, 애초에 왜 그 훈령이 생기게 됐을까를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분리의 원칙’을 적용하지 않았을 때 피해자들이 입을 수 있는 2차 피해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기에, 또 원칙을 적용하지 않기 쉽거나 혹은 적용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 우리 현실에 실제로 벌어지기에 훈령이 만들어졌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 훈령이 지켜지지 않은 현실을 짚어보고 개선하도록 노력해야겠죠.

 경찰은 올해를 ‘피해자 보호의 원년’으로 선언하고 시스템을 재정립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피해자 전담 경찰관’직을 신설하기도 했는데요. 각 서에 배치된 피해자 전담 경찰관들은 범죄 피해자에 대한 상담과 지원, 필요할 경우 신변 보호나 임시 숙소 지원 등의 일들을 하게 됩니다. 피해자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것을 전담할 경찰관을 경찰서에 두는 것, 비판할 뜻은 전혀 없습니다.

 지난 4일 새롭게 맺은 협약에서 보듯, 경찰이 범죄 피해자 보호를 위해 여러 가지 선제적인 조치들을 새롭게 시도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보태자면, ‘범행 현장’에서 ‘범행 직후’에도 ‘피해자 보호의 원년’이라는 캐치프레이즈에 걸맞는 초동 대응이 잘 이뤄져서 제2, 제3의 피해를 입는 피해자들이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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