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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내가 해 봐서 안다'는데…

서울대 경영대 A 교수 성희롱 사건을 취재하며

[취재파일] '내가 해 봐서 안다'는데…
 취재를 하다보면 간신히 연결된 제보자, 억울한 사건의 피해자, 또는 갑작스런 사고를 당해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은 유족들 등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대화의 끈을 이어가려고 애써야 할(또 진심으로 이어가고 싶은) 때가 많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그 끈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절로 들곤 하는데요. 그러다 무엇인가에서 어긋나, 전화를 걸어도 그들이 전화를 받지 않아 신호음만이 계속 들릴 때면 “이 한 사람에게 ‘기자’는 어떤 존재로 남았을까”하는 생각에 미안함과 씁쓸함이 동시에 남습니다.

 개인적으로, 그 어느 때라도 제 스스로 전화를 걸기 전이나 메일을 다 쓰고 ‘전송’ 버튼을 누르기 전 항상 확인하는 게 있습니다. ‘당신을 잘 이해하고 있다’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조심을 한다고 했지만 이번 서울대 경영대 A 교수의 성희롱?성추행 사건을 취재하면서도 이 말은 그렇게 몇 번 제 입 밖으로 불쑥불쑥 나왔습니다. 내가 비슷한 걸 해 봐서(혹은 겪어 봐서) 안다, 너의 입장을 이해한다, 나는 네 마음이 어떨지 알고 있다…. 얼마나 폭력적인 말일까요. ‘내’가 ‘네’가 결코 아니고, ‘네’가 될 수도 없는데 말입니다. 사실 이 다짐을 처음 했던 때는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입니다. 이번 취재를 통해 그때를 다시 한번, 많이 떠올리게 됐습니다. (그 때에 대한 설명은 아래에 짧은 글로 대신하려 합니다.)

 시작은 막막했습니다. 서울대 학내 인터넷 커뮤니티에 떠도는 말들은 많았습니다. 서울대 수학과 강석진 교수의 성추행 의혹이 불거진 뒤, 학내 커뮤니티엔 ‘이 교수도 그렇다, 저 교수도 그렇다’는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경영대 A 교수에 대한 의혹 제기는 그 숫자나 구체적인 내용 면에서 다른 이야기들을 압도하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과 댓글만으로는 기사화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학내 커뮤니티를 주시하고 있던 많은 기자들이 그 사안을 보도하기 위해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저 역시 처음엔 주변 지인들을 통해 A 교수가 한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목격하거나 직접 겪은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서울대 교수 성희롱

 생각보다 놀랐던 건, 질문을 던졌을 때 A 교수에 대해 전혀 들어본 게 없다거나 모른다고 답한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는 겁니다. “A 교수가 ‘그런’ 사람이라더라”는 소문은 이미 파다했고, 자신에게 직접 성희롱을 하진 않았지만 불쾌할 만한 발언을 하는 것을 직접 목격한 사람도 꽤 있었습니다.

 오래 알고 지냈던 친구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 ‘A 교수에 대해 알고 있냐’는 질문을 했을 때, 친구는 혹시 ‘그 일’ 때문에 그러냐며 자신이 보고 겪었던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런 일이 내 주위 무척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이제껏 학생들이 공식적인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으며 또 할 수 없었던 현실에 화가 났고, 그런데도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나는 그 일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사실에 죄스러웠습니다.   

 실체는 분명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었는지, 또 어떤 말들이 오갔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지인, 지인의 지인, 지인의 지인의 지인을 통해 소개를 받기도 했고, 번호를 알아내 무작정 전화를 했고, 또 서울대를 돌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조심스럽게 취재하고 있는 내용을 이야기하고 혹시 이야기를 들어본 게 있거나 본인이 겪은 것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뜬금없이 걸려온 기자의 전화와 건네진 질문들에 많이 당황했을 텐데도,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 준 학생들이 용기 있다 생각했고 또 고마웠습니다.

 길었던 과정 속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 중 하나는 바로 접촉한 피해자를 설득하는 일이었습니다. 자신이 피해를 입은 것은 맞지만 기사화하길 원치 않는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또 기사화해 문제 제기를 하고 싶지만 그럴 경우 자신이 특정될 것을 걱정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피해자인 것만 말할 수 있을 뿐 더 이상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고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너무나 화가 나는 일이었던 만큼 사례들을 모두 모아 자세하게 기사를 썼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고 그래서도 안됐습니다.

 그러다 며칠 동안 한 사람을 설득하게 됐습니다. 당시 그가 나였더라면, 너무나 억울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제라도 보도가 되길 원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전화와 문자, 메일로 대화를 나눴고, 제가 어떤 마음으로 이 사건을 대하고 있는지 진솔하게 전하려 노력했습니다.

 주고받은 전화와 문자, 메일에는 ‘함께 분노했고 함께 해결하고 싶다’, ‘어려운 점이 많으시리라 생각한다’, ‘(사례가 특정되었을 때를) 우려하시리라 생각되는데 그 부분에 대해선 미리 상의를 드리고 싶다’는 내용들이 담겼습니다.

 거짓은 아니었습니다. A 교수에게 피해를 입었던 사례들을 전해들으며 정말 분노했고, A 교수에 대한 처벌과 함께 이런 문제들이 대학 내에서 재발하지 않게끔 돕고 싶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주변에서 알 수 있는 상황이라면 자신의 이야기가 뉴스에서 보도되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도록 피해 사례를 유형화(SBS 취재진은 다수의 피해자가 겪은 공통의 피해 패턴을 묶어 사례를 몇 가지로 유형화했습니다. 그렇게 취합된 공통적인 패턴만을 보도한다면, 피해자가 단 한 사람으로 특정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한다면, 그리고 최대한 개인이 특정될 수 있는 정보를 기사에 담지 않는다면 보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서울대 성희롱 공동
 결론부터 말하자면, 계속된 설득에도 그는 자신의 사례를 기사화하길 원치 않았습니다. 제가 그만큼 신뢰를 주지 못했기 때문이겠지요. 이 사례를 구체적으로 보도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앞서 제가 언급했던, ‘당신을 정말 잘 이해한다’, ‘내가 해 봐서 아는데…’ 때문에 반성했던 그 때가 떠올랐습니다.

 제가 아무리 그의 입장이 되어 ‘당시의 억울했던 마음을 풀었으면 좋겠다’, ‘그때 정말 힘드셨을 것 같다’, ‘이제 이 사례를 보도해 곪아 있는 문제를 해결하자’는 말을 건네더라도, 저는 절대 그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피해자들이 전혀 당당하지 못할 이유는 없지만, 그렇다고 왜 당당하게 나서지 않느냐고 그를 비난하는 순간 우리는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인정하는 건 아닐까요.

  당시 그가 겪어야 했던 불편함과 불쾌감을 포함한 모든 감정, 그가 이 문제를 해결했던 방식, 그리고 나아가 이것이 보도됨으로써 그가 입을 수 있는 피해 모두 제가 머리로는 안다고 말하더라도 마음으로 전부 이해했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뒤늦게서야, 다시 한 번 들었습니다.

 ‘내가 해 봐서 아는데’라는 말은 사실 지난 2011년 한 때 유행처럼 번졌던 말입니다. 도저히 그 사정을 알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 그 말을 하는 모습을 볼 때면 왠지 모를 화가 났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그 왠지 모를 화를 불러일으키는 사람은 아니었을까, 하는 반성을 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그 2011년 당시 학내 자치언론 기자로 일하면서 제가 썼던 글의 일부를 짧게 덧붙이려 합니다. 이 글과 같은 제목의 글입니다. 어쩌면 그때와 지금 이렇게 길게 풀어 놓은 글이 어느 능력 미달 기자의 소회로 읽힐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때와 이번 취재에서 느낀 이 마음을 한동안 잊고 싶지 않습니다.

 
 
< '내가 해 봐서 안다'는데... >

 무료하던 겨울방학의 끝자락에 한 영화를 보게 됐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정신이상자'로 설정돼 있었다. 인질을 붙잡고 있던 주인공과 맞닥뜨린 경찰은 "네가 왜 그러는지, 얼마나 힘든지 다 안다. 이제 그만해"라고 외쳤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주인공은 나지막하게, 담담하게, 하지만 울부짖으며 대답했다. "니들이 더 나빠. 다 알면서 어디 있었어. 내가 미쳐갈 동안 어디 있었어." 영화를 보며 문득, 지난 학기에 했던 취재가 떠올랐다.

 지난 학기 마지막 호, 마지막 기사를 위한 마지막 취재였다. 신대방역 2번 출구 근처에 있는 노점상들이 출구 리모델링 공사 때문에 내몰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노점상 분들을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고, 취재를 끝냈다. 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했다고, 또 공감했다고 생각했다.

 수첩과 카메라를 챙겨 넣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역 안으로 들어섰다. 저 멀리 앞에서 한 노숙자가 길을 가던 한 여자의 옷자락을 붙잡고 돈을 달라는 몸짓을 해 보였다. 여자는 깜짝 놀라 그를 흘겨보며 손을 뿌리쳤다. 무의식적으로 나 또한 그 노숙자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멀찌감치 길을 둘러 지하철 개찰구로 향했다.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뒤이어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 동안 나는 참으로 가식적이고 이중적이었고, 수도 없이 '거짓'을 이야기했다. 그 날 집으로 가는 내내 나는 내가 말했던 '이해'와 '공감'이 얼마나 얄팍한 것이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사회적 약자들을 생각한다', '그들의 아픔을 이해한다', '그들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충분히 알았다', '그들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이러이러한 대안을 제시한다'... 이 모든 말들이 진정이었다면 내가 그 노숙자를 흘긋흘긋 바라보며 멀리 거리를 두고 걸어갔을까.

 '타인에 대한 완벽한 이해와 공감. 어쩌면 그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그리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나는 모른다. 내가 그들이 되지 않는 한 모를 것이다. 내가 '바로' 그들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영원히 모를 것이다.

 이렇게 부끄러운 옛 경험을 꺼내 놓는 것은, “너희들의 아픔을 모두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다”, “우리가 다 안다”며 인터뷰이에게 접근하고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언론이 되지 않기를 바라서다. 이번 호에는 용산참사 이후 여전히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유가족들, 살 집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대학생들, 차가운 바닥에서 잠을 청하는 서울역 노숙자들의 모습이 담겼다. 누군가처럼 함부로 그들의 사정을 다 안다고 말하지 않겠다. 그저 작은 위로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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