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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품질 검사 거치지 않은 방화복 무더기 공급…누구의 잘못인가?

[취재파일] 품질 검사 거치지 않은 방화복 무더기 공급…누구의 잘못인가?
화재 현장에서 치솟는 불길의 온도는 300℃를 넘기기도 합니다. 그 열기 속으로 뛰어들어가 사람들을 구하고 불을 제압하는 사람들이 소방관들입니다. 그런데 품질검사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특수방화복 수천벌이 이들에게 보급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 400˚C 버티는 특수방화복…안전검사는 의무 

소방관들이 화재 현장에서 착용하는 특수방화복은 겉감에 내열성과 난연성이 뛰어난 특수 섬유를 겉감에 써서 소방관들을 열기로부터 보호합니다. 한국소방산업기술원, 즉 KFI의 기준에 따르면 특수방화복은 400˚C의 고온에도 형태가 변형 되거나 수축하지 않는 내열성, 불이 옮겨붙지 않고 잔염도 2초 이내 꺼지는 난염성 등 다양한 기준을 충족해야 합니다. 이 정도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소방관들의 생명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방관들에게 지급되는 특수방화복은 모두 KFI의 제품 인정검사를 의무적으로 통과하도록 돼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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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검사를 절차에 맞게 통과하지 않는 방화복이 일선 소방서에 보급된겁니다. 

● 문제는 어떻게 세상에 드러났나?…제보 없었으면 아무도 몰랐을 비밀

소방관들은 각 지자체 소방본부에 소속돼 있기 때문에, 각 지자체별로 예산에 맞춰 필요한 방화복을 조달청을 통해 구매 의뢰합니다. 조달청은 KFI의 검사를 통과한 업체의 제품 가운데서 적절한 업체를 선정해 방화복을 구입합니다. 

문제는 조달청에 접수된 한 제보로부터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방화복을 납품하는 업체 가운데 두 곳에서 제대로 된 인정검사를 받지 않은 방화복을 납품하고 있다는 제보였습니다. 

제보를 받은 조달청이 실태 확인에 나섰습니다. 확인 결과, 2013년부터 2년 동안 두 업체가 납품한 특수방화복의 수량은 모두 1만 9천 3백여 벌. 그런데 KFI가 인정검사를 통과시킨 제품은 1만 4천여 벌에 불과했습니다. 5천 3백벌은 어떤 검사 절차도 받지 않은 채 납품됐다는 얘기입니다. 조달청은 안전처에 이 사태를 알렸고, 안전처는 그제서야 진상파악에 나섰습니다. 

문제는 검사 절차를 통과한 방화복과 그렇지 않은 방화복을 구별하기 힘들다는 겁니다. 모든 방화복에 KFI의 합격 표시가 찍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선 소방서의 소방관들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검사를 받지 않은 방화복은 5천3백벌이지만, 1만 9천 3백벌과 섞여 보급됐기 때문에, 새로 보급된 특수방화복은 모두 안전이 의심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국민안전처는 이 1만 9천 3백벌에 대해서 사용 보류를 지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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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안전처는 방화복 부족 문제를 막기 위해 국고보조금 190억 원을 들여 방화복 3만1,119벌을 조기구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 돈은 이미 노후한 방화복을 교체하기위해 지난해 책정된 돈이었습니다. 지난해 8월, 전국 소방관들이 보유한 방화복의 절반인 43.5%인 3만 1,119벌이 내구연한이 지났다는 지적이 나온 뒤였습니다. 

● 누구의 잘못인가?…업체 2곳 검찰 고발, 수사 나서

업체가 검사비를 아끼려고 서류를 위조한건지, 도장을 위조한건지, 내막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국민안전처는 문제가 된 두 업체를 각 지방검찰청에 사기혐의로 고발해 수사를 의뢰한 상태입니다.
 
해당 업체는 각 지자체별 보급 과정에서 납품기일을 맞추다보니 검사를 받지 않았을 뿐, 재질에는 이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재질이나 성능에 문제가 있었다면, 이미 화재 현장에서 많은 소방관들이 목숨을 잃었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실제로 누구도 피해를 입지 않았으니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면 괜찮은 일일까요? 

●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문제…소방관은 '지방직'

안전처의 담당자에게 어떻게 인증된 수량과 보급된 수량이 5천벌씩 차이가 나는데도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는지 묻자, "소방장비 같은 게 각 지자체 사정에 따라서 다르다 보니까 관리 감독도 그렇게 허술하게 된 게 아닌가...현황 파악도 잘 안돼요, 각 지자체 직원들이 이리 저리 옮겨다니니까."라며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각 지자체의 소방본부가 개별적으로 예산을 책정해 물품구매에 나서다 보니 통합적인 품질 검수 및 검인정 관리가 이뤄지지 못했던 겁니다. 

"(물품 주문을) 소방방재청이 받은 게 아니고, 각 시·도 소방본부에서 조달청에 요청한 거에요. 우리가 한 게 아니에요. 시·도 소방본부는 지방직이죠, 국가직이 아니에요. 물품 구매는 우리가 해서 하는 게 아니고, 각 시도 예산으로 해서 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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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렇다보니, 문제가 드러나 검찰 고발이 이뤄진 게 벌써 열흘이 넘었지만 안전처는 아직 이런 무인증 방화복이 어디에, 어떻게, 얼마나 보급됐는지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안전처에 소방장비 담당직원은 2명뿐이었습니다. 주말도 반납하고 부랴부랴 전국에 보급된 방화복의 인정검사 서류와 일련번호를 대조해가며 진상파악을 하고 있는 그들에게, 이 난맥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소방관들이 각 지자체 소속 지방직이고, 지자체 재정형편에 따라 소방인력부터 시설이나 장비의 수준까지 편차가 심각하다는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된 문제입니다. 이런 허점이 개선되지 않는 한, 허술한 장비 관리 문제는 언제든 다시 제기될 수 있습니다. 

● 그럼 누구를 탓해야 하는가? 

소방관들이 만약 오늘 밤 불을 끄러 출동했다가 부실한 방화복으로 인해 화상을 입거나 순직하게 된다면 그건 소방관들의 부주의 때문입니다. 

검사는 받지 않았지만, 하자가 없는 제품을 납품했다고 주장하는 방화복 업체의 잘못이 아닙니다. KFI 인증 도장이 찍혀 있으니, 제대로 검사 받은 방화복인지 확인할 이유가 없었던 조달청이나 소방본부의 잘못이 아닙니다. 각 지자체가 방화복의 구매를 책임져야 하니  안전처의 잘못이라 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려고 무리하면서 괜히 목숨을 건, 소방관의 잘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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