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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통신사 진흙탕 싸움에 무력화 된 단통법

[취재파일] 통신사 진흙탕 싸움에 무력화 된 단통법
이른바 '아이폰6 대란'은 지난 해 11월 1일에 일어난 일입니다. 70만원짜리 아이폰6가 순식간에 공짜폰이 됐습니다. 두달 반 뒤인 1월 16일. 아이폰6 뿐만 아니라 갤럭시 노트4, 갤럭시 S5 같은 최신 스마트폰과 중저가 모델도  보조금 과열 현상을 보였습니다.

네티즌들은 '대란' 수준은 아니지만 '중란' 정도는 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정부가 정한 상한선을 훌쩍 넘는 보조금이 지급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 '대란'입니다. 그런데 이 '대란이 누구 책임이냐?'는 질문에 대한 통신사들의 답변이 두달만에 180도 바뀐 점이 흥미롭습니다.

먼저 아이폰6 대란때 상황부터 한번 보겠습니다.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은 휴대전화 유통구조를 투명하게 개선한다는 목적의 법입니다. 지난 해 10월 1일부터 시행됐습니다. 그러나 법 시행 한 달만인 지난 해 11월 1일 아이폰 6 대란이 일어났습니다. 국회에서는 잇따라 개정안이 발의됐고 단통법은 존폐 위기에 처했습니다. 아이폰6 대란 발생 나흘만인 지난해 11월 5일. 통신3사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일제히 '입장문'을 내놨습니다.
통신사 휴대전화 보
SKT
"일부 판매점 등에서 발생한 편법영업으로 많은 이용자들께 불편과 혼란을 끼쳐 죄송"
"정부 조사에 적극 협력해 향후 동일 사례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

KT
"일부 유통점이 경쟁 대응과정에서 시장 혼탁에 동조하게 된 점은 심히 유감"
"재발방지를 위해 불법영업에 관련된 유통점에 대해 강력한 조치를 즉각 취하겠음"

LGU+
"일부 휴대폰 유통점에서 본사의 뜻과 지침에 상반되게 시장을 혼탁케 해 깊은 유감"

'죄송', '유감'이란 표현을 쓰긴 했지만 '사과문'이 아닌 '입장문'이었습니다. 즉 통신사 본사의 잘못이 아니고 '일부 유통점'의 잘못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이었습니다. 통신사들이 이렇게 주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휴대전화 판매 장려금' 즉 리베이트 구조에서 비롯됩니다. 공시한 보조금 이상을 통신사가 소비자에게 지급하는 것은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단통법 위반입니다. 대신 통신사들은 '가입자 한명을 가입시키면 휴대전화 1대당 얼마'라는 식으로 판매점에 리베이트를 줍니다. 그리고 다른 통신사 가입자를 뺏아 올 수록, 또 비싼 요금제에 가입시킬 수록 이 리베이트 금액이 높아집니다.

 예를 들어 출고가가 100만원인 휴대전화가 있습니다. 소비자가 받을 수 있는 공시보조금이 30만원이라고 해보겠습니다. 판매점이 단통법을 지킨다면, 이 소비자는 100-30=70 , 70만원을 주고 가입하게 됩니다. 그런데 판매점이 특정 통신사에 소비자를 가입시킬 경우 해당 통신사로부터 받는 판매장려금이 20만원 있습니다. A,B 판매점 2곳이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A 판매점은 자신이 받는 장려금 20만원을 다 갖고, 소비자에게는 70만원에 팝니다. B 판매점은 장려금 20만원 중에 10만원만 갖고, 나머지 10만원은 소비자에게 돌려줍니다. 즉 소비자는 100-30-10=60, 60만원에 살 수 있습니다. 그럼 손님들이 어떤 가게에 많이 갈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분명합니다. B판매점에 손님이 몰립니다. 

그런데 '공시 보조금' 이상을 못 주게 한 단통법 하에서는 B판매점은 불법 판매점, A 판매점은 합법 판매점이 됩니다. 그리고 형식상 통신사는 장려금 20만원을 직접 소비자한테 준게 아니라 판매점에 준 것일 뿐입니다. 결국 <단통법을 어긴 건 통신사가 아니라 판매점>이란 주장이 성립가능하게 됩니다.

 이 장려금이, 앞서 예로 든 20만원 수준이 아니라 50만원, 60만원까지 급증하는 때, 바로 '보조금 대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판매점이 60만원 장려금 가운데 자신은 20만원만 갖고 40만원은 소비자에게 준다고 해봅시다. 원래 출고가는 100만원 이지만 공시보조금 30만원에, 40만원이 더 지원됩니다. 즉 70만원에 사야했던 전화기가 100-30-40=30, 30만원이면 살수 있게 되는 겁니다.

즉 판매점 자신이 받는 장려금을 좀 줄이더라도 소비자에게 많이 돌려주는 겁니다. 그러면 다른 판매점보다 그만큼 손님을 더 많이 끌어모을 수 있게 되니까 이익이 커지는 겁니다. 이런 구조 때문에 지난해 11월 아이폰 6 대란이 일어나자 통신3사는 일제히 일선 판매점에 책임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1월 16일 보조금 과열 때는 상황이 180도 달라졌습니다. '일부 판매점의 일탈행위'가 아닌 '통신사 본사의 리베이트 정책'이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는 점을 통신사 스스로 인정한 겁니다. 어떻게 이렇게 입장이 달라졌을까요? 1월 20일 KT가 먼저 포문을 열었습니다. KT는 <통신대란 주범 ‘일벌백계’로 시장 정상화 해야>라는 입장자료를 냈습니다.

KT
"SK텔레콤이 1월 16일 주요 단말기에 45만원 이상의 고액 리베이트를 지급하며 시장 과열과 혼란을 주도했음. SK텔레콤은 19일까지 불법 영업을 강행하며 통신시장을 과열시켰고, 그 결과 5,391명의 타사 가입자를 빼앗아 이번 과열의 주도 사업자임을 스스로 입증했음"

그러자 이틀 뒤인 1월 22일 SKT가 반박에 나섰습니다. <KT, 방통위의 시장 조사 시점에 과도한 리베이트 살포>라는 입장자료를 냈습니다.

SKT
"KT가 방통위의 조사 방침이 발표된 21일(수)에는 오히려 자사 유통망에 대해 과도한 리베이트를 살포하며 가입자 뺏기 본격화에 나선 것으로 확인" "KT는 자사의 대리점 및 판매점 등 전체 유통망에 최대 55만원에 달하는 리베이트를 살포했으며, 이후 이들은 공식 판매망이 아닌 밴드 등 SNS, 폐쇄몰 등을 위주로 음성적인 페이백을 활용하며 현재까지도 가입자 유치를 지속하고 있음" "KT의 과도한 리베이트 살포 역시 규제기관의 엄정한 조사 및 결과에 따른 강력한 처벌을 요구함"

재미있는 것은 SKT든 KT든 경쟁 통신사를 공격하면서, '보조금 과열의 근본 원인은 본사의 리베이트 정책이므로 처벌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대목입니다. 두달 반 전 아이폰6 대란때 '일부 판매점이 본사 지침을 어기고 일탈행위를 했다'고 발뺌했던 것과 비교하면 입장이 완전히 달라진 셈입니다. 

어쨌든 <모든 소비자들이 차별 없이 같은 가격에 휴대전화를 살 수 있게 한다>는 단통법의 법 정신은 무력화 됐습니다. 통신사들이 판매점에 뿌린 40-50만원대의 리베이트가 소수의 소비자들에게 지급됐기 때문입니다. 결국 '다수는 비싸게 사고 소수는 싸게 사는 구조'라는 근본적인 문제점이 달라지지 않은 겁니다.

 더 중요한 건 언제든지 똑같은 보조금 과열 현상이 재발할 수 있다는 겁니다. 아니 밴드나 카톡방 같은 폐쇄형 SNS에서는 공시 보조금 외에 추가 보조금을 더 지급하는 판매방식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수의 소비자는 통신사 홈페이지에 공시된 보조금  상한선 30만원 이내에서 지원을 받아 휴대전화를 구입합니다.

 그러나 판매점들이 운영하는 카톡방이나 밴드에 가입한 소수의 소비자들은 공시보조금 30만원에 더해 '페이백'이라 부르는 현금 추가 지원금 30만원을 더 할인받아 구입하는 일이 지금도 일어나는 현실입니다. 
통신사 휴대전화 보
통신사들은 타사 가입자를 뺏아오기 위해 판매점에 주는 리베이트, 즉 판매장려금을 하루에도 여러번 바꿉니다. 즉 경쟁 통신사가 얼마나 리베이트를 올리거나 내리는지를 지켜보면서 맞대응을 하는 겁니다. 다른 통신사가 갑자기 리베이트를 50-60만원 수준으로 급격하게 올려 가입자를 뺏기는게 보이면 당장 방어나 공격에 나섭니다. 즉 본인들도 리베이트를 같은 수준으로 올려 방어하거가 더 높은 수준으로 올려 다시 가입자 뺏기에 나서는 겁니다.

 제가 판매점 입장이라고 생각해보겠습니다. 평소에는 가입자 한명을 유치할 때 통신사에서 받는 리베이트가 10만원인데 오늘 저녁에 갑자기 50만원으로 올라갔습니다. 옆에 다른 판매점은 이 리베이트 중 20만원만 자신이 갖고 나머지 30만원은 소비자에게 돌려주는 방식으로 손님들을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단통법에 어긋나는 판매방식인 건 알지만 지켜보고만 있을 수 있을까요? 법을 지키자면 리베이트 50만원을 제가 다 갖고 소비자한테는 공시보조금만 적용해 팔아야하는데 그렇게 팔자니 비싸다고 손님이 오질 않습니다.

 하지만 통신사에서 받는 리베이트 50만원 중 10만원이라도 소비자에게 지급하게 되면 '불법 판매점'의 오명을 뒤집어 써야합니다. 폰파라치나 단속도 무섭고 걸릴 경우 처벌 수위도 높아 위험이 너무나 큽니다. 결국 소수의 한정된 소비자에게 몰래몰래 팔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그래서 카톡방이나 밴드 같은 폐쇄형 인터넷 커뮤니티가 요즘 판매의 수단으로 많이 활용되는 겁니다. 통신사는 판매점에 주는 리베이트를 통해 시장을 좌지우지 하며 언제든지 판도를 흔들 수 있습니다. 판매점은 리베이트 일부를 소비자에게 줘야만 남들보다 싸게 팔 수 있어 손님을 끌어모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단통법을 어기게 됩니다. 따라서 휴대전화 시장은 마치 마약거래를 하듯 점점 더 은밀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단통법은 계속 무력화 될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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