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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얇은 후드 티' 13살 현주를 만나다

[눈사람] '얇은 후드 티' 13살 현주를 만나다
현주를 처음 만난 건 바람이 많이 불던 12월 중순이었습니다. 크고 선한 눈에, 수줍게 웃는 모습이 예쁜 소녀였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두터운 외투를 입고 있었지만 현주는 '얇은 후드 티' 차림이었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집 근처 지역아동센터에서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는 현주는 점심은 학교에서, 저녁은 아동센터에서 먹습니다.

아동센터 원장은 작년에 아이들에게 겨울 옷을 사 줬는데도 무슨 이유인지 현주는 잘 입고 다니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옷이 현주가 가지고 있는 거의 유일한 외투인데도 말입니다.

저녁을 먹고 해가 지면 현주는 집으로 갑니다. 아동센터 근처 작은 지하 방에서 현주는 할머니와 살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온기를 느끼기도 전인 3살 때부터 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멀리 떨어져 사는 엄마와는 아주 가끔 전화를 주고 받는데 며칠 전에 통화를 했다고 합니다.

엄마랑 무슨 얘기 나눴냐고 물었지만 한 참 할머니 눈치를 보던 현주는, 작은 소리로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냥 잘 지내냐고...."

옆에서 듣고 계시던 할머니는, "얘가 이래요 답답하게.. 속마음은 모르겠지만 겉으로는 내색을 안 해. 그냥 오로지 나 죽을 때까지 같이 살아야 한다고 인식을 해서 그런지 이말 저말 하진 않아요.. 우리 둘이만 있으니까 습관이 된 건지, 보고 싶어도 참는 건지..."
취파

현주는 할머니가 말을 하는 내내 방바닥을 바라보며 입을 삐죽거리고 있었습니다.

현주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보고 싶지 않아요?" 그러자 현주는 또 한 참동안 아무 말도 않다가 작은 목소리로 "보고 싶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답답하셨는지.. "얘가 말이 별로 없어요.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해야 하는데 그냥 꾹 참는 거야.  조금 알랑거리고 없는 말도 하는 성격이 아니라 무뚝뚝하다고 할까요. 속이 깊긴 한데 그런 표현을 안 해요... 하수구가 막혀 딴 데로 터져나가면 망가지니까 자꾸 말을 하라고 해도 조심을 하더라구. 가만히 있는 게 좋은 게 아니라고 제가 얘기를 했어요"

'할머니 맘 아프고 신경 쓰실까봐 엄마 얘기는 하지 않는 건데...' 현주는 자기 맘도 몰라주는 할머니가 야속하다는 듯 큰 눈을 꿈뻑이면서, 방바닥만 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잠깐 방을 나간 사이 현주에게 물었습니다. "현주는 왜 할머니한테 이런저런 얘기 안 하는 거에요?"

"좀 그래요. 말을 하기가 조금 그래서..." 또 한참 만에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할머니와 현주가 사는 집엔 냉기가 느껴졌습니다.

"좀 추워요. 외풍이 세요. 날씨 따뜻한 날은 좀 괜찮은데 추운 날은 더 하고.. 새벽되면 바람이 많이 부니까 그게 좀 그렇지 뭐..."
 
할머니는 보일러가 있지만 맘 놓고 쓸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벌이가 따로 없기 때문입니다.

"겨울에는 10만 원이 넘는데 돌겠더라고요. 아낄 대로 아껴야죠. 거지도 찬 물로 하고 물 좀 덜 쓰고 가스도 밤에 잘 때하고 아침에 하고 아끼고.... 추울 때 두어 시간 틀어놓고, 한참 껐다가 또 추우면 틀어놓고 그랬어요."
 
작년에 말썽이었던 세탁기는 올 겨울에도 말썽입니다. 집이 좁아 바깥에 세탁기를 놨는데 추운 날씨 탓에 호스가 얼어붙어 버린 겁니다.
 
"작년에 많이 얼어서 고쳤어요. 첫 주에 얼었어요. 물이 호스에 거꾸로 쏟아져서 온 천지에 물이 물바다가 됐더라고요. 세탁기 앞에.."
 
현주처럼 조손 가정이나 한 부모 가정, 그리고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사회복지시설이 지역아동센터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지역 아동센터가 오래된 건물에 들어서 있어 열효율이 떨어지는데다 정부 지원이 부족해 난방을 제대로 못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실내에서도 두꺼운 점퍼를 입고 있었고 실내화도 신어야 했습니다.

정부에서 지역 아동센터에 한 달 평균 3~400만 원을 지원하고 있었지만 복지사 인건비와 교육활동비(프로그램비)를 빼고 나면 난방비는 늘 뒷전으로 밀릴 수 밖에 없다는 게 아동센터 원장들의 공통된 의견이었습니다.

"예외상황이 늘 생기게 돼요. 현주처럼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 들어가는 애들은 방학때 중학교 문제집 사줘서 공부시켜야 하거든요. 그러면 예상치 못한 돈이 들어가는 거에요. 애들 문제집 값이 요즘은 또 엄청 비싸요. 그러면 아무래도 난방비나 공과금에 쓸 돈으로 문제집을 사줄 수 밖에 없다는 얘기죠. 아무래도 난방비 같은 거는 우리가 뒤로 밀릴 수밖에 없어요. 아무래도 더 아끼게 되고.. 애들한테 솔직히 굉장히 미안해요. 측은하고.."

이 아동센터 원장님은 건물 월세를 내기 위해 아침마다 신문배달을 하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취파
 
실제로 전국 지역아동센터 4000곳 중 80%는 지은 지 10년 넘은 건물에 들어서 있었고,  5곳 중 1곳은 전기료나 가스비를 연체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아동센터의 경우, 부모들이 생계를 위해 늦게까지 일하는 가정이 많기 때문에 아이들 대부분이 집보다 아동센터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습니다.
 
한참 자라는 아이들이 맘 놓고 따뜻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해 줘야 하는데도 아동센터는 예산부족으로 난방을 제대로 못 해 아이들이 추위에 떨며 힘겹게 겨울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저소득층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계절, 바로 지금 이 겨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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