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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김순이 할머니'의 힘겨운 겨울나기 ③

[눈사람] '김순이 할머니'의 힘겨운 겨울나기 ③
# '크리스마스 이브' 새벽 (2014년 12월 24일)  

새벽 3시. 무주의 기온은 영하 2도였습니다. 우리는 결례를 무릅쓰고 그 새벽에 할머니 집을 다시 찾았습니다.

주무시는 할머니를 깨워선 안 될 텐데...라고 생각하면서 대문을 열었는데.. 할머니방 불은 켜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방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주방에서 세수를 하고 있었습니다. 밤에 잠깐 잠이 든 뒤에 깊이 못 주무시고 잠이 깨 버리신 겁니다.

"할머니 안 주무셨어요?"

"예, 일찍 일어나요. 초저녁에 조금 자고 2-3시에 깨면 영 잠이 안 와요. 그러면 텔레비전 틀어 놓고 계속 있는 거야."

"안 추우세요?"

"춥지..."


집 안엔 싸늘한 냉기가 돌았습니다. 투명 플라스틱으로 덧댄 바람막이 문 안쪽 온도는 영상 4도였습니다.

할머니가 추운 냉골에서 주무시지 못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왔던 저희로서는 뜻밖의 상황에 맞닥뜨린 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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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자꾸 저희가 추울까봐 전기 보일러를 트시려고 하셨습니다. 방 밖에 있을 테니 저희 걱정은 하지 마시라고 만류했는데도 할머니는 계속 밖에 추우니 문 닫고 들어오라며 손짓하셨습니다.

할머니에게 저희는 손님이었던 겁니다. 할머니는 결국 전기 보일러를 트셨습니다.

"할머니 저희 때문에 기름 보일러 트실 필요 없으세요. 전기요금 많이 나가잖아요?"

"그런 말 말어. 틀어 놓으면 어때. 맨날 트는 것도 아닌데.."

"기름값 때문에 그렇죠"

"기름값은 무슨... 없으면 말고 그렇지 뭐...기름 다 들어가도 좋고.... 너무나 좋아서 잠을 맛있게 잤구만..."

 
할머니는 쉴 새 없이 말을 계속하셨습니다. 처음 보는 저희에게 이런저런 일상사들을 모두 다 얘기하시는 거였습니다. 그동안 얘기를 함께 나눌 말벗이 없어 얼마나 적적하셨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머니는 잠이 안 오면 이 생각 저 생각이 다 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날씨가 추워지면 자신보다 더 힘들게 사는 할머니가 있다면서 그 할머니 걱정을 하셨습니다.

"남들이 옷 주는 거 있으면 고맙게 받아서 나보다 더 힘든 사람, 더 늙은 할머니 도와요."

"할머니~ 이건 누가 준 건데 입으셔... 그러면 그 할머니가 고맙네, 고마워 그려요."

"그 할머니가 이불이 없어. 이불이 없어서 치마를 덮고 자, 옛날 치마를. 그 할머니 불쌍해서.  이 이불 5천원이에요. 교회에서 이걸 팔더라구. 두 개 사다가 그 할머니 하나 갖다 줬어. 내복도 두 개 갖다 주고..."


할머니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제 자신이 작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모습에 "아  예...예..." 라는 말 외에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여, 할머니와 대화를 나눈 것 같습니다. 새벽 5시쯤 할머니가 조금이라도 더 쉬시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작별인사를 드렸습니다. 할머니는 어두운 데 뭘 가냐며, 좀 더 쉬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추우니까 방 안에 계시라고 해도 어떻게 그러냐며... 굳이 대문 밖까지 배웅해 준 할머니 손을 저희는 말없이 꼬옥 잡았습니다.
눈사람 취파_640

"할머니 다시 찾아 올게요... 그 때까지 건강하셔야 해요..."

새벽 바람은 차가웠지만 마음 만은 부자가 된 듯한, 가슴 속 뜨거운 무언가를 다시 찾은 듯한 크리스마스 이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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