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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어떤 질문을 할까?

[취재파일]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어떤 질문을 할까?
지난해 10월 9일, 일본 북부 홋카이도에서도 북부 내륙에 있는 비후카(美深) 마을 근처의 마츠야마 목장. 목장에 딸린 숙소 '돈투'의 응접실에 모인 한 무리의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TV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TV에서는 노벨문학상 발표와 관련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초조한 기다림 끝에 스웨덴 한림원이 프랑스 소설가 파트리크 모디아노를 201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하는 순간, 사람들의 입에서는 작은 탄식이 새어 나왔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아쉬움은 절망으로까지는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목장 주인 야규 요시키 씨(66)가 와인잔을 들며 사람들에게 건배를 제의했기 때문입니다. "2015년에는 꼭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 날을 위해 건배!"

마츠야마 목장에 모인 사람들은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65)의 팬들이었습니다. 일부러 노벨문학상 발표에 맞춰 이 목장을 찾은 이른바 '광팬'들이었죠. 이들은 왜 하필 일본에서도 궁벽한 산골 축에 드는 이 목장에 모였을까요? 이곳이 하루키가 1982년에 발표한 첫 장편소설 '양을 둘러싼 모험(羊をめぐる冒險)'의 중요한 배경으로 '추정'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 속에서 '양 목장'은 도쿄에 사는 주인공이 친구 '쥐'의 암시적인 인도에 이끌려 이끌려 찾아가는 장소인데, 소설 후반부의 거의 모든 사건이 마무리되는 의미있는 공간입니다.

야규 씨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이 소설을 읽고 소설 속의 목장이 있는 '주니타키마을(十二瀧村)'이 자기가 나고 자란 비후카 마을 근처의 옛날 모습과 놀랄 만큼 닮아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 조사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확신'으로 발전시킨 야규 씨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자신의 발견을 공개했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신빙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 속 '양 목장'의 배경이 어디라고 구체적으로 밝힌 적은 없었지만, 소설을 쓰기 위해 '답사 여행'을 다녔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었기에 시간이 흐르면서 비후카 마을이 이 소설의 배경일 거라는 하루키 팬들의 추측은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야규 씨는 이미 이곳에 1980년부터 목장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소를 방목했는데 80년대 중반 일본 정부가 쇠고기 수입 제한을 해제하면서 경쟁력이 떨어지자 1987년에 이곳을 양 목장으로 바꿉니다. 그리고 1995년에는 목장 부지 한 쪽에 '돈투'라는 이름의 숙소를 개장합니다. 홋카이도의 대자연 속에서 목장 체험을 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거의 비슷한 시기에 야규 씨가 '양을 둘러싼 모험'을 읽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깨달음, 즉 자신의 목장이 이 소설의 배경일 것이라는 '심증'을 굳힌 뒤 이를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이곳은 하루키 팬(영미권에서는 '하루키스트'라고 합니다)들의 '성지'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 즈음부터 매년 이곳을 찾는 열혈 하루키 팬이 한 명 있었습니다. 도쿄에서 IT 관련 일을 하는 나카가와 코지(34) 씨입니다. 야규 씨의 이론에 100% 동의한 나카가와 씨는 비후카 마을 관광사무소와 함께 하루키 팬들을 위한 '투어'를 계획합니다. 2012년부터의 일입니다. 하루키 팬들은 마츠야마 목장에서 낮에는 양들과 뛰어 놀고, 밤에는 소설을 함께 읽는 '독서회'를 가졌습니다. 알음알음 이곳을 찾는 하루키 팬들이 늘어가면서 영국이나 타이완에서도 이곳을 찾아 오는 하루키 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0월에는 이들 가운데 몇몇이 아예 이곳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의 순간을 함께 하기로 했던 겁니다.

여기까지가 지난 4일 일본의 아사히신문 영문판이 소개한 '홋카이도 양 목장, 하루키스트들의 성지(holy ground)가 되다'라는 기사의 내용입니다. 당시 양 목장에 모인 하루키 팬들의 간절한 바람은 결국 아쉬운 한숨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이들을 포함해 세계의 하루키 팬들이 이번에는 작은 환호를 올릴 만한 사건이 6일에 있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오랜 인연을 맺어 온 출판사 '신쵸사(新潮社)'가 하루키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한시적인 인터넷 페이지를 열겠다고 밝힌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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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의 이름은 '무라카미씨의 장소(村上さんのところ)'로 정해졌고, 오는 15일 오후부터 운영될 예정입니다. 질문은 15일부터 1월 말까지 받고, 하루키의 답변은 3월 말까지 운영되는 홈페이지에 순차적으로 게재됩니다. 아직 질문하는 공간은 없지만 일단 홈페이지도 그럴 듯하게 만들어져 바로 공개됐습니다. (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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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가 당신의 메일에 (가능한 한) 답해드립니다. 질문, 상담 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라는 내용이 조금은 익살스럽게 보이는데다, 일러스트레이터 후지모토 마사루 씨의 소박한 그림도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 하는 페이지입니다.

하루키는 이미 90년대 말부터 이메일 등을 통해 독자와 소통하고, 이를 책으로 낸 경험이 수 차례 있습니다. 오래간만이기는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 역시 그동안 다소 소원했던 독자들을 만나기 위한 하루키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노벨문학상까지는 아니지만 하루키는 그동안 예루살렘상(2009), 카탈루냐 국제상(2011), 벨트 문학상(2014) 등 굵직굵직한 상의 수상 소감과 각종 칼럼, 기고문을 통해 역사와 사회의 어둡고 소외된 곳을 적극적으로 비추겠다는 포부를 밝혀왔기에 이번의 '질문 답변 기회'가 갖는 문화적인 의미도 결코 작지 않다고 하겠습니다. 

아무튼 그 덕분에 하루키에게 궁금했던 것을 물을 수도 있고, 각자가 안고 있는 고민을 상담할 수도 있는데다, 신쵸사의 발표에 따르면 질문이 꼭 일본어일 필요는 없다고 하니 세계의 팬들로서는 흔치 않은 기회가 생겼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팬들이 이번에는 하루키에게 어떤 질문을 할지, 또 (60대 중반을 넘어선) 하루키는 그들에게 과연 어떤 답을 던져줄지 벌써부터 관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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