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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빙상 '평창 프로젝트' 출발부터 삐걱

[취재파일] 빙상 '평창 프로젝트' 출발부터 삐걱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야심차게 준비한 이른바 '평창 프로젝트'가 시작도 하기 전에 삐걱거리고 있습니다. 오늘(7일)부터 9일까지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전국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이 열리는데 11년만에 부활된 페어 스케이팅에 출전해야 할 브라질 선수의 행방이 묘연하기 때문입니다. '평창 프로젝트'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피겨 전 종목에 한국 선수를 참가시키는 것입니다. 피겨는 크게 남녀 싱글, 페어스케이팅, 아이스댄스 4부문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 가운데 페어와 아이스댄스는 불모지로 불릴만큼 오랫동안 명맥이 끊어졌습니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백방으로 뛰어다닌 끝에 '개최국 자동 출전권'을 부활시켰습니다. 개최국 선수들, 즉 한국선수들은 일정한 기술점수만 얻으면 평창 동계올림픽에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선수였습니다. 특히 페어의 경우 한국 여자선수 재목은 많은데 함께 짝을 이룰 남자 선수들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빙상연맹은 부득이하게 추후 한국 귀화를 전제로 외국 남자 선수를 물색하기로 했습니다. 지난해 9월 미국 플로리다에서 트라이아웃(공개 선발)을 통해 2팀을 구성했습니다. 

여자 싱글 국가대표 출신인 최휘와 브라질 남자 싱글 유망주인 루이스 마넬라가 짝을 이뤘고, 16살 새내기 정유진과 이탈리아 페어선수 출신인 루카 디마테가 한 팀을 이루게 됐습니다. 두 팀은 지난해 11월초부터 2개월간 미국 마이애미에서 잉고 슈토이어 코치의 지도 아래 훈련했습니다. 독일의 슈토이어 코치는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피겨 페어에서 동메달을 딴 비교적 유명한 지도자입니다.     

두 팀 선수들의 공식 대회 데뷔전은 오늘 개막한 종합선수권대회로 오래전부터 확정됐습니다. 페어스케이팅 2팀이 출전하는 날은 1월 8일, 즉 내일니다. 정유진-디마테 조는 벌써 입국해 1주일 가량 훈련을 쌓고 있습니다. 최휘 선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최휘와 짝을 이룬 브라질의 루이스 마넬라가 아직 입국하지 않고 있습니다. 당초 6일까지 귀국하기로 했다는 것이 최휘측의 말이지만 약속했던 어제까지 마넬라는 인천공항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최휘 선수 어머니는 오늘 오전 저에게 "마넬라가 발목 부상으로 비행기를 탈 수 없었다는 연락을 뒤늦게 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습니다. 일주일 동안 아무 연락이 없던 그가 대회 직전에 불쑥 문자메시지로 통보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넬라가 왜 한국에 오지 않는지는 빙상연맹은 말할 것도 없고 슈토이어 코치도 제가 직접 물어봤을 때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루이스 마넬라의 페이스북을 보면 이미 입국했어야 할 지난 1일에 미모의 아가씨와 다정한 포즈를 취한 사진을 올렸습니다. 발목이 아파 공식 대회 데뷔전을 치를 수 없는 선수의 표정치고는 너무 밝아보였습니다. 빙상연맹은 오늘 오전 긴급 회의를 열고 '마넬라 행방불명'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습니다. 선발 자체를 아예 무효로 하고 제명할 것인지, 아니면 진상을 조사한 뒤 경고할 것인지 결정할 계획입니다.
취파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빙상연맹의 선수 관리입니다. 마넬라와 직접 연락하는 사람은 사실상 그의 파트너인 최휘 한 사람뿐입니다. 그리고 마넬라를 인천공항에서 픽업하려고 했던 사람도 최휘 선수 어머니입니다. 저는 지난  5일 태릉실내빙상장에서 페어스케이팅팀을 취재했는데 훈련이 끝나고 독일인 슈토이어 코치와 루카 디마테 선수를 숙소인 올림픽 파크텔까지 이동시킨 사람은 다름아닌 정유진 선수의 어머니입니다. 선수 어머니가 직접 승용차를 몰고 외국인 코치와 외국인 선수의 이동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한국 선수 2명은 지난해 11월 미국 플로리다에서 훈련하면서 왕복 항공비, 숙식비, 슈토이어 코치 레슨비 등을 모두 개인적으로 부담하느라 벌써 수천만원을 썼다고 합니다. 빙상연맹이 제대로 지원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정식 국가대표가 아니어서 그런 것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피겨 전 종목에 한국 선수를 출전시키려는 '평창 프로젝트'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원대한 계획에 비해 디테일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선수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체계적으로 선수를 관리해야 '제2의 루이스 마넬라' 사태를 막을 수 있습니다. 마넬라가 한국 빙상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이런 한심한 행동을 했는지 빙상연맹은 심각하게 생각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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