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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사이다야 콜라야? 이름 없는 '음료'에 소비자 분통

캔 음료에 점자만 손봐도 잠재 고객 25만

[취재파일] 사이다야 콜라야? 이름 없는 '음료'에 소비자 분통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 중에 물이나 산소처럼 모두에게 필요한 게 있습니다. 반면에 누군가에겐 필요 없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것들도 있습니다. 캔 음료 뚜껑 쪽에 새겨놓은 점자와 관련된 얘기입니다. 한 번쯤은 그 올록볼록한 문양을 보거나 만져보신 적 있을 겁니다. 바로 시각장애인에게 필요한 점자입니다.

알고 보면 캔 음료도 종류가 정말 많습니다. 탄산, 이온, 커피, 과즙 등등…. 각 품목별로 제품은 더욱 다양하고요. 하지만 캔 뚜껑 위에 새겨진 점자는 단 한 가지입니다. <음료> 사이다도 ‘음료’, 콜라도 ‘음료’, 게토레이도 ‘음료’, 포카리스웨트도 모두 ‘음료’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과연 시각장애인들은 자신이 마시고 싶은 ‘음료’를 제대로 선택할 수 있을까요?

지금 저는 최소한 이 자리에서만큼은 사회적 약자인 시각장애인을 위해 기업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뭐 이런 맥락의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보건복지부에 공식 등록된 시각장애인 25만 명을 과연 식음료 제조사가 소비자로 바라보고 있는지 묻고 있는 겁니다. 물론 그렇지 않으니까 그 많은 업체 중에서 단 한 군데도 제품명을 점자로 써놓은 곳이 없겠죠.

업체들도 할 말은 있습니다. 음료 시장에서 덩치가 제법 큰 롯데칠성음료, LG생활건강이 인수한 한국코카콜라 그리고 덩치는 작더라도 ‘스테디셀러’ 제품을 갖고 있는 웅진식품의 말을 종합하면 ‘돈’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기존 생산라인을 조금씩 바꿔야 하고, 관리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고 합니다. 캔 뚜껑 위의 공간이 좁아 제품명을 쓸 수 없다는 다소 구차한 변명도 있었지만요. 만에 하나 생산 과정에서 점자로 사이다라고 돼 있는 캔에 커피를 담게 되는 실수가 나오면 업체 입장에서는 심각한 항의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이죠. 득보다  실이 많은 상황에서 그나마 선한 행동의 결과로 타격을 받는다면 누가 책임질 거냐는 항변도 나올 법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침마다 이메일을 열면 업체들이 보낸 보도자료가 넘쳐나거든요. ‘서울대생들이 가장 많이 마시는 음료’라며 권위에 기댄 자료가 있는가 하면, 소비자들이 기다리던 신제품을 출시했다며 엠바고(보도시점을 사전에 정함)까지 요청하면서 기자들을 유인하기도 하고요. 툭하면 ‘감사 세일’에 연말연초마다 ‘임직원 연탄배달 봉사’ 등등의 보도자료도 단골 메뉴입니다. 브랜드를 자주 회자시켜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일 텐데, 그렇게 제품을 알려서 소비까지 이어지게 하고 싶다면 방법이 없는 게 아닙니다. 바로 캔 음료 뚜껑 위에 ‘음료’라는 점자가 아니라 제품명을 점자로 새겨놓으면 어떨까요? 그 25만 명의 시각장애인들에겐 그 어떤 홍보보다 머리에, 가슴에 남을 것 같은데요. 자신들의 불편과 불만을 해소해준 기업에 그들은 그 어떤 부류보다 가장 충성스러운 소비자가 될 것입니다.

시각장애인들이 이런 얘기들을 하더군요.

“가게에 들어가서 그냥 캔 커피 아무거나 달라고 부탁해요.”

“광고를 듣고 제품 이름을 외웠지만 다 ‘음료’라고 점자로 돼 있어서…. 점원한테 부탁하기도 미안하고요. 못 먹었어요.”

“그냥 안 먹어요.”


지금 식음료 업체들은 25만 명의 잠재적 소비자를 눈 뜨고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입니다. 


▶ '콜라-사이다' 구분 안 되는 캔 음료 점자…무용지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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