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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눈물과 훈계로 갈린 '국제시장' 관람기

[취재파일] 눈물과 훈계로 갈린 '국제시장' 관람기
커다란 체구의 남성은 영화가 끝나고도 한동안 손수건을 다시 집어넣지 못했다. 촉촉해진 눈가를 지그시 눌러가며 눈물샘을 말렸다. 울었느냐는 누군가의 물음에 코가 붉어진 그는 짧게 대답했다. "마이 울었어."

같은 시각, 10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또 다른 영화관에선 한 남성이 지인들과 함박웃음을 지으며 극장에 자리를 잡았다. 영화가 시작하자 그는 이내 안경을 벗고는 손등으로 눈물을 조용히 훔쳤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도록 그는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영화 '국제시장'을 보고 나온 여야 정치인들의 풍경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그리고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이다.

국제시장에 눈물을 쏙 뺀 두 사람은 모두 무뚝뚝하다는 부산 사나이들이다. 지금도 김무성 대표는 부산 영도구, 문재인 의원은 부산 사상구가 지역구다. 영화를 보는 동안 고향 생각에 잠겼으리라. 여기에 김무성 대표는 아들 고윤 씨가 피란민을 돕는 단역으로 출연했고, 문재인 의원은 아버지가 영화처럼 흥남부두에서 피난을 온 터라 영화가 더 각별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이들이 눈물을 흘린 지점은 조금씩 다를지도 모르겠다. 남북 분단과 전쟁의 굴곡진 역사, 지금도 변하지 않은 분단의 현실, 아버지 세대의 노고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까지 정확히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이들은 공개적으로 영화를 관람한 건 영화를 통해 국민들과 우리 역사와 현실의 아픔을 공감하고자 했다는 점일 거다.
취파

영화를 보고 나온 김무성 대표의 말이다.

"우리나라 역사가 질곡의, 굴곡의 역사가 많은데 그 고비고비마다 우리 국민들이 이렇게 개개인의 고생을 많이 하고 비극이 많았는데.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그 과정 과정  아픔을 같이 나누다 보니까 눈물이 나올 수밖에…."
취파

문재인 의원의 말이다.

"저희 집도 흥남에서 그렇게 피난살이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특히 마음에 와 닿았어요. 가장 눈물이 났던 장면은 이산가족 상봉할 때에요. 저희 집도 그때 어머니가 며칠 동안 TV만 보시면서 다른 가족 만나는 것만 봐도 눈물 나고 했던 기억이… 영화 보면서 생생히 기억이 났습니다."

영화 '명량'이 나왔을 때도, '변호인'과 '카트'가 나왔을 때도, 여야 정치인들은 영화를 공개적으로 관람하고, 평을 공유했다. 이런 풍경을 보는 이들의 해석은 둘째로 치더라도, 이들은 최소한 현실정치의 투박하고 거친 언어가 아닌, 영화의 문법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던 것 같다. 영화의 리얼리티와 예술성의 조합, 그에 더해지는 함의. 이를 공유하고자 했던 두 부산 사나이의 눈물은, 나름대로 통(通)했다.

이 영화가 정치적으로 떠들썩해지기 시작한 건 다른 한 여성에게서 시작됐다. 그녀의 관람법은 사뭇 달랐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이다.
박근혜 연합

"최근에 돌풍을 일으키는 영화에도 보니까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들리니까 국기배례를 하더라. 그렇게 해야 이 나라라는 소중한 우리의 공동체가 건전하게 어떤 역경 속에서도 발전해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애국가에도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이런 가사가 있지 않으냐. 즐거우나 괴로우나 나라 사랑해야 한다."

발언 내용의 문제가 아니다. 영화의 문법을 배제하고 이야기하니 소통이 아니라 훈계가 됐다. 관람객들과 영화를 공유하려는 게 아니라, 일차적인 통치 수단으로 활용하려 드니 그 자리에 공감은 사라지고 강요만 남았다. 심지어 당시 시대에 대한 풍자마저 곡해하는 우를 범했다. 그나마 영화를 보지 않고 말했다는 해명이 사실이었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정치나 현실 사회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자주 등장하며 이른바 '스크린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의 풍경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영화라는 미디어 그 자체가 강렬한 메시지가 되기도 하니 이들의 공개적인 영화관람 행보는 계속되리라. 하지만 정치인들도 염두에 뒀으면 한다. 영화라는 작품의 문법을 무시하는 순간, 관객들의 마음을 사기는커녕 자칫 찬물만 끼얹게 된다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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