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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전직 불량교사의 고백…"저도 영화 많이 틀어줬습니다"

[취재파일] 전직 불량교사의 고백…"저도 영화 많이 틀어줬습니다"
고백합니다. 저도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영화 많이 틀어줬습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끝나고 학생들에게 '휴식을 선물한다'는 나름의 이유로 그랬습니다. 사실은 '아, 나도 수업 안하고 한시간 그냥 넘기겠구나', '학생들 영화 볼 동안 나는 밀린 잡무를 해야겠다' 같은 스스로에 대한 핑계를 '학생들의 휴식'으로 포장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다가 '불량교사'는 학생들에게 이런 얘기를 들었지요.

"선생님, 다른 과목 시간에도 영화 많이 봤는데, 영화 말고 다른 거 해요!"

스스로를 불량교사라고 생각한 이 교사가 바로 저입니다. 기자가 되기 전 저는 일선 고등학교에서 2년간 교편을 잡았습니다. 2005년이니까 벌써 10년 전 일이네요.  제가 가르친 제자들이 88,89,90년생들입니다. 군대에 갔다 와서 대학교에 복학했거나, 직장인이 되어 있겠지요?

이번에 "자거나 노는 교실…서류엔 정상수업 (▶ 해당 기사 바로가기)" 취재를 하면서 한 고등학생에게 똑같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기말고사 끝나고 나서 방학 전까지 2주 정도 매일 매일 학교에서 영화를 봤다는 겁니다. "하루에 세 편씩 보다 보니 질려서 이제는 잠만 잔다"고 하더군요. 갑자기 10년 전이 생각났습니다. 학교는 아직도 달라진게 없구나…

사실 중고등학교에서 시험 끝나고 방학 전까지 별다른 수업 없이 학생들이 놀고 있다는 건 많이들 아실 겁니다. 형식적인 단축수업도 많이 있을 겁니다. 그래도 기자인데, 단순히 학생들이 교실에서 놀고 있는 장면만 촬영해서 "여전히 놀고 있습니다"라고는 쓸 수 없었습니다. 교육당국이 이런 학교 현장을 잘 파악하고 있는지, 이런 현상을 개선할 의지는 있는지 구조적으로 문제를 접근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17개 시도교육청에서 제출한 '수능 이후 고등학교 3학년 수업 운영 현황' 자료를 분석해보니, 대부분 단축수업 없이 정상수업했다고 일선 학교들이 보고한 겁니다. 지방의 학교들은 이미 방학한 곳이 많아, 오늘(12월31일) 중고등학교 대부분이 방학에 들어가는 서울 지역을 기사에 인용했습니다.

고3의 경우 지난 11월 수능 시험이 끝나고 방학 전까지 2~3주 기간 동안 하루에 평균 6.5교시의 정상수업을 했다는 겁니다. 정상수업을 했다면 보통 오후에 하교할텐데, 아시겠지만 고3 학생들은 수능 시험이 끝난 뒤에는 오전에 잠깐 학교에 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고3 수업 현황을 이렇게 파악하고 있으니, 교육당국이 방학에 들어가지 않은 고1과 고2, 중학교의 상황은 제대로 파악하고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현행 초중등교육법은 수업일수와 관련해 주5일 전면 실시의 경우 매 학년 190일 이상 기준에서 학교장이 정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 170일(34주)+20일(4주, 학교장 재량수업일)로 운영되는데요. 한학기로 보면 약 19주로 편성돼 있는 겁니다.

그런데 서울시교육청이 발행한 '취약시기 학사운영 정상화 방안' 자료를 보면 한 학년 교육과정 운영에 필요한 최소 수업일수를 연간 34주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한 학기 17주 정도 되는건데요. 그렇다면 교육당국이나 학교현장은 추가적인 2주에 대해 어떤 교육을 할 것인지, 학생들에게 필요한 교육은 무엇일지, 어떤 교육 콘텐츠가 필요한지 면밀히 검토했는지 궁금합니다. 한국 학교교육이 단순히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입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보니, 교과목 수업 말고 시험 준비 말고는 더 가르칠 게 없는 걸까요?
엎드려 자는 학생

수업시수를 맞추기 위해 형식적으로 학교에 왔다갔다 하기 보다는, 차라리 기말고사 끝나면 바로 방학을 하는 건 어떨까요? 우리나라 대학교도 그렇고 외국 중고등학교 대부분이 기말고사가 끝나면 바로 방학에 들어갑니다. 서울시교육청 자료에도 " 현행 기말고사 성적처리 및 확인 기간 등 불필요한 등교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기말고사 후 겨울방학 조기 실시"를 주요 추진 방안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 방안이 당장 실현되기는 어려울 겁니다. 단순히 방학을 일찍 하면 되는 게 아니라, 고입과 대입, 수능시험 등 입시와 관련된 큰 일정과도 유기적인 관련이 있으며, 무엇보다 관행적으로 편성돼 있는 학사 운영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초중등교육법 등 관련법도 바뀌어야 하고요. 
 

보도가 나간 뒤 항의 이메일을 여러 통 받았습니다. "네가 학교를 아냐?", "시험 끝나고 좀 논다는데 해마다 논다고 기사 나오니까 괜히 독서해라 뭐해라 귀찮기만 하다"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전자는 아마도 학교 관련 어른들, 후자는 학생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단순히 2~3주 동안 놀지 말고 어떻게든 수업을 하라는 차원으로 기사가 보여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그렇게 무의미하게 보낸 2~3주, 수업시간에 누가 하나 사라져도 모를 그 시간들이, 국/영/수/과학/사회로 표기된 수업 시간에 교과목과 관련 없는 영화를 봤을 그 시간들이, 학생 개개인의 생활기록부에는 '정상 출석'으로 기록될 것이고, 그 기록들은 학생들이 살아온 궤적 중 하나가 될 겁니다. 학생들에게 현실 따로 서류 따로인 기성세대의 못난 모습을 가르치는 교육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저야 교사 시절에 언론사 입사 공부를 했던 불량교사였지만, 지금 이 시간도 학교 현장의 많은 선생님들께서는 학생들을 위해 더 좋은 공부, 더 나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계십니다. 그런 노력에 더해 교육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당국이, 아무리 짧은 기간이라도 학생들이 의미 있는 활동을 하기 위해 즐겁게 학교에 등교할 수 있는 정책을 고민해봤으면 합니다. 한때 학교에 몸 담았던 사람의 진심어린 고민이 조금이나마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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