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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北 외무상 일정도 '모른다'는 외교관들…이래도 되나

치열한 외교전쟁 예고한 유엔총회, 오직 관심은 VIP?

[월드리포트] 北 외무상 일정도 '모른다'는 외교관들…이래도 되나
화려한 격식이 우선하는 연례 외교행사라고 보기엔 이번 유엔총회는 우리에겐 무게감이 크다. 박근혜 대통령이 처음으로 유엔 안보리 정상회의에 참석한다는 의미도 크지만, 북한의 외교 행보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은 15년 만에 장관급을 파견해 유엔총회 기조연설에 나선다. 리수용 북한 외무상이 어떤 인물인가? 김정은 체제의 급격한 관료 세대교체 바람에도 74세의 고령에 외교 수장이 됐다. 오랫동안 스위스 대사로 있으면서 김정은 위원장의 유학 시절에 가족처럼 동행하고 뒷바라지했던 것으로 알려져 가장 가까운 인물로 꼽힌다. 군 인사들과 함께 실제 3인방으로 불리는 배경이다.

● 최근 달라진 북한외교…수비에서 공세로

유엔에서 느끼는 북한의 외교기조는 1년 전과도 사뭇 다르다. 평양에서 세워진 '절대 원칙'의 훼손을 피하기 위해 최소한의 대응과 '로우 키'로 일관하던 북한 유엔대표부가 아니다. 최근엔 3개월에 한번씩 기자회견을 자청해 출입기자들을 불러모은다. 자성남 대사의 부임 이후, 북한 외교관들은 복도에서 만나는 한국 기자들의 질문에도 곧잘 답변하곤 한다. 미국과 서방국가들이 주도한다는 이유로 유엔을 철저히 무시하는 양상을 보여왔던 북한은 이제 방향을 바꿔 최근 유엔을 통해 외교적 실익을 챙기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 7월에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유엔 안보리 의제 설정을 공식적으로 요구했는데, 북한이 먼저 안보리 회의 소집을 요청한 것은 처음이었다. 한국 유엔대표부는 겉으론 담담했지만 북한의 의외의 역공에 긴장한 모습이었다. 회의 소집권한을 가진 안보리 이사국인 중국이나 러시아가 북한의 의견에 따라 안보리 소집을 요구한다면 한미연합훈련을 의제로 안보리 회의가 열리는 초유의 사태가 현실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엔총회 직후 러시아 방문을 전격 예고한 리 외무상의 행보는 그래서 더 주목된다. 리수용 외상의 유엔총회 참석은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자위권 행사'라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의미보다는 이와 함께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3명의 석방문제, 한미연합훈련 관련 안보리 소집을 지렛대로 보다 공세적인 압박과 외교 실익을 실현하려는 목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가능하다.

● "북 외무상 도착일정 모른다" 느긋…기자들만 분주

그런데도 미국의 한국 외교관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일정에만 '올인'한다는 느낌이다. 박 대통령의 유엔 활동이 국익에 매우 중요하고 순조로운 행보가 이뤄져야 함은 물론이다. 반면 리수용 북한 외무상의 활동 또한 이번 총회에서 외교당국이 각별히 신경쓰고 돌발상황에 대처할 준비를 갖춰야한다는 점도 분명하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리 외상의 행보를 주시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 시간 21일은 일요일이지만 리 외무상이 뉴욕에 도착할 것이라는 예상으로 한국 기자들은 도착 공항과 비행기편 찾기에 분주했다. 의지할 수 있는 소스는 한국 유엔대표부였지만 "21일쯤으로 알고 있다"는 답변 외에 리 외상이 어디서 출발하는지, 몇시에 어떤 항공편으로 도착하는지는 "모르겠다"는 대답 뿐이었다. 한국 외교관들 대답 중에는 "제 소관이 아니라 잘 모르겠습니다"가 가장 많았는데, 유엔 대표부의 소관이 이것이 아니면 도대체 어디의 소관이라는 것인지 기자들은 답답하기만 했다. 결국 뉴욕 공항의 많은 터미널 가운데 비교적 가능성이 높은 베이징발과 유럽발 항공편이 도착하는 터미널에서 하루를 보냈고 성과없이 철수했다. 그리고 곧이어 평양방송의 '리수용 일행 뉴욕 도착' 확인 보도에 다시 한번 안타까워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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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하나, 리수용은 도착 직후 어디로 갔을까?

리수용 일행의 도착 광경은, 그를 북한의 어떤 인사들이 수행하고 있는지, 리 외상이 어떤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하는지, 되새겨 살펴보면서 방미의 목적과 외교기조를 짐작할 수 있는 좋은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언론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 외교당국에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런데 당일 공항에서는 리 외상의 도착 여부를 살피려는 한국 측의 움직임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궁금한 것은 외교부가 리수용 외무상의 일정을 실제로 주시하고 있는건지 하는 점이다. '리수용 외상의 정확한 일정을 파악하고 있지만 언론에는 다른 이유로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와 '리수용의 일정을 모두 신경 쓸 필요가 없어 정말 몰랐다'의 두가지 가정이 가능하다. 아마도 전자일 것이다. 아니 최소한 그랬기를 바란다. 이 경우라면 더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지 못한 기자들만 아파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후자라면 '안이함의 극치'라는 비난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지금이라도 '리 외상을 수행하는 북한 인사들이 누구인가?'라고 물으면 외교부는 답변할 수 있을까? 공항 도착 직후 리 외상이 어디로 가서 누구를 만났는지 답변할 수 있을까?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보인다.

● 정상외교 때문에 현장외교.정보전은 휴업상태? 

외교부는 가능성이 낮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지만, 이번 유엔총회에서 한국.일본을 비롯한 언론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보다 북.미 접촉의 성사여부이다. 북한에는 3명의 미국인이 억류돼있고 아무 힘을 쓰지 못하는 오바마 행정부에겐 여론의 눈총이 큰 부담이다. 케리 장관과 리수용 외상 독대까지는 아니더라도 북미 실무자들의 비공식 접촉이 없으리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외교당국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정상 외교의 성과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 성과가 반대 방향에서 퇴색할 수 있다는 위험성에 대비를 하고 있는가? 차라리 서울에서 지원 인력을 더 보내는 것은 어떤가? 리수용 북한 외무상은 현지시간 27일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하고 반기문 사무총장과도 면담을 요청했다고 한다. 만찬장에서 박 대통령과 리수용 외상은 같은 자리에 앉지 않을 것이라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국가 정상과 장관의 격을 떠나 이미 현실적으로 같은 외교 무대에서 만나는 양상이 되고 있다. 걱정이 기우에 불과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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