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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병영 문화가 아니라, 제도가 문제

[취재파일] 병영 문화가 아니라, 제도가 문제
이런 나라가 있습니다. 권력자와 관련된 사람에 대한 잘못이 드러나면 수사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영장을 청구하거나 기소를 하려면 피의자와 관련된 권력자의 결재를 받아야 합니다. 검찰이 기소해서 재판이 시작되면 주심 재판관은 권력자 마음대로 임명합니다. 심지어 법조인이 아니라도 재판관으로 임명할 수 있습니다. 재판 결과가 나와도 판결문이야 어떻든 권력자 마음대로 형량을 정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이 모든 과정은 법률로 보장돼 있습니다. 이런 나라에서 권력자와 관련된 잘못을 적발하고 바로 잡을 수 있을까요? 옛날 옛적 어딘가에 존재했던 독재정권 이야기냐고요? 아닙니다. 지금 우리 나라 군대 이야기입니다.

● '지휘관 마음대로' 군 사법구조…군사법원법 분석

군대의 사법구조를 규정하고 있는 법률은 군사법원법입니다.  군사법원법에는 군사법원 뿐 아니라 군검찰부의 설치 근거와 운영 규정이 명시돼 있습니다. 먼저 7조를 보시죠.

제7조(군사법원 관할관) ① 군사법원에 관할관을 둔다.
② 고등군사법원의 관할관은 국방부장관으로 한다.
③ 보통군사법원의 관할관은 그 설치되는 부대와 지역의 사령관, 장 또는 책임지휘관으로 한다. 다만,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의 관할관은 고등군사법원의 관할관이 겸임한다. [전문개정 2009.12.29.]


육군의 경우 사단급 이상(공군은 전투비행단급 이상) 부대에 보통군사법원이 설치되는데, 그'관할관'은 해당 부대 지휘관 즉 사단장이 맡는다는 내용입니다. 항소심 법원인 고등군사법원의 관할관은 국방부 장관입니다. 그렇다면 '관할관'이란 무엇이고, 어떤 권한이 있을까요?

관할관은 우선 주심판사를 마음대로 임명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법조인이 아니어도 관계 없습니다. 군사법원법 24조와 26조를 보시죠.

제24조(심판관의 임명과 자격) ① 심판관은 다음 각 호의 자격을 갖춘 장교 중에서 관할관이 임명한다.
1. 법에 관한 소양이 있는 사람
2. 재판관으로서의 인격과 학식이 충분한 사람
② 관할관의 부하가 아닌 장교를 심판관으로 할 때에는 해당 군 참모총장이 임명한다.

26조(보통군사법원의 재판관) ① 보통군사법원에서는 군판사 2명과 심판관 1명을 재판관으로 한다. 다만, 약식절차에서는 군판사 1명을 재판관으로 한다.
② 관할관은 군판사인 재판관 중 1명을 주심군판사로 지정한다.


관할관인 지휘관이 부하 중 아무나 골라 '심판관'이라는 직위를 줘서 재판관으로 임명할 수 있고, 심판관과 군 판사 2명 중에 주심군판사로 지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중요 사건의 경우 자신이 직접 임명한 '심판관'을 주심으로 지정하는 게 대부분입니다.

이 뿐이 아닙니다. 지휘관은 재판에 넘어가기도 전에 수사에도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습니다. 군검찰부는 군사법원의 편제에 대응해 고등군사법원의 관할에 대해서는 고등검찰부가, 그리고 보통군사법원(사단급)의 관할에 대해서는 보통검찰부가 설치됩니다. 역시 지휘관이 관할관이 됩니다. 군사법원법 40조입니다.

제40조(군검찰부가 설치되어 있는 부대의 장의 검찰사무 지휘·감독) 군검찰부가 설치되어 있는 부대의 장은 소관 군검찰사무를 관장하고 소속 검찰관을 지휘·감독한다.

일반 검찰에 비유하자면 검사장 또는 검찰총장의 권한을 지휘관이 행사하는 셈입니다. 이 규정에 근거해 군 검찰은 구속/체포/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거나, 범죄 혐의자에 대해 공소를 제기(기소)할 때 지휘관은 검찰관으로부터 결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수사와 기소에 대한 결재권까지 지휘관이 장악하고 있는 셈입니다.

압권은 군사법원의 판결이 끝난 후 벌어지는 일입니다. 군사법원의 관할관으로서 지휘관은 판결에 대한 '확인권'을 가집니다. 확인권이 무엇이냐면, 판결이 제대로 이뤄졌나 확인한 후, 지휘관이 형량이 너무 무겁다고 판단하면 재량에 따라 감경해 줄 수 있는 권한입니다. 간단히 말해 형량도 지휘관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겁니다.

제379조(판결에 대한 관할관의 확인조치) ① 관할관은 무죄, 면소, 공소기각, 형의 면제, 형의 선고유예 또는 형의 집행유예의 판결을 제외한 판결을 확인하여야 하며, 「형법」 제51조 각 호의 사항을 참작하여 형이 과중하다고 인정할 만한 사유가 있을 때에는 형을 감경할 수 있다.



● 가혹행위해도 실형선고율 1.8%…간부 실형선고는 0건

수사도, 기소도, 재판도, 심지어 형의 선고까지 지휘관이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길이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습니다. 글을 시작하면서 언급했던 불합리한 사법구조가 우리 군 사법제도에 그대로 들어가 있는 셈입니다. 이런 제도 아래에서 만약 지휘관과 관련된, 지휘관이 책임을 져야 하는 범죄가 벌어진다면, 제대로 수사가 진행되거나 처벌할 수 있을까요? 군 지휘관이 올바른 양심을 가지고 제도를 운용하면 된다고요? 통계를 살펴보면 지휘관들의 양심만 믿고 맡겨두기에는 상황이 너무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홍일표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0년부터 2013년 까지 군에서 발생한 폭행 및 가혹행위 중 형사처벌을 받은 건수는 2815건입니다. 이 중에 실형을 선고받은 건수는 51건으로, 실형 선고율이 1.8%에 불과합니다. 가해자가 군 간부(부사관급 이상)인 경우에는 실형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부대 내에서 폭행이나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지휘관은 지휘책임을 져야 합니다. 징계를 받을 수 있고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책임을 져야 하는 지휘관이 가혹행위 여부를 판정해야 할 수사과 재판 과정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구조, 이 구조를 유지하는 한 폭행 가혹행위에 대한 엄정한 처벌이 내려질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 문화가 아니라 제도가 문제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죠. 재판과 수사를 모두 권력자 뜻대로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나라가 있습니다. 이 나라에서 권력자들과 관련된 부패와 부정이 근절될 수 있을까요? 공직사회 문화를 바꾸면 비리가 사라질까요?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권력과의 관계만 튼실하면 처벌받지 않으니 이 나라에서 부정부패를 근절하긴 어려울 겁니다. 권력자들이 사법제도를 좌지우지하는 독재국가에서 실제로 대규모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는 이유입니다. 군내 가혹행위도 마찬가지입니다. 잘못을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 구조가 그대로 있는한 병영 문화를 바꾼다고 가혹행위가 사라지진 않습니다. 군에서 내놓은 병영문화혁신대책에 따라 가혹행위 신고자를 포상하고, GOP 부대 면회 횟수를 늘린다고 해도 효과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모든 적폐 해소의 출발점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엄정한 처벌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문제는 병영문화가 아니라 사법제도입니다.

최근 군 가혹행위 사건이 봇물터지듯 드러나면서 새정치연합 이상민 의원(국회 법상위원장)이 군 사법구조 개혁안을 제출했습니다., 새누리당 정책위의장 주호영 의원도 군 사법 구조를 손 볼 필요가 있다고 공개발언하면서 법안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모처럼 여야가 공감대를 이룬 상황인만큼, 앞으로 국회가 군 사법구조 개혁을 이뤄낼 수 있을지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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