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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기본 못한 검찰이 음모론을 키웠다

변사 사건도 처리 못하는 검찰…자격있나?

[취재파일] 기본 못한 검찰이 음모론을 키웠다
외환위기가 터진 1997년 말이었습니다. 검찰에 갓 들어온 A검사는 매일 매일 송년회에 참석해 선배들이 주는 술을 받아 마시느라 알딸딸한 상태였습니다. 유독 그날 따라 경찰에서 변사 지휘를 요청하는 사건들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지만 차근 차근 서류를 검토했습니다. 석연찮은 보고서가 하나 눈에 띄었습니다. 담당 경찰관을 불러 물어봤지만 우물쭈물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직접 가서 봅시다"
"영감님, 그냥 집에서 자연사한 겁니다. 그냥 쉬시죠."
"아, 보자니까 그러네요."

경찰관이 검사를 극구 만류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시신은 이미 검사 지휘도 없이 벽제화장터까지 도착한 상태였습니다. A검사는 화를 내며 지휘도 없이 시신을 화장터에 보낸 이유를 관할 경찰서장에게 따졌습니다. 그리고 즉시 부검하라고 지휘했습니다.

사인이 드러났습니다. 병원에서 뇌수술을 받아 당분간 인공 호흡보조장치 없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환자를 집으로 옮긴 뒤 호흡장치를 떼어내 5분 만에 숨지게 한 것이었습니다. 사망자 부인의 요구로 의사들이 집으로 환자를 옮긴 뒤 인공 호흡보조장치를 제거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A검사는 의사와 사망자의 부인을 살인죄로 기소했습니다. 법원은 사망자의 부인에게 살인죄를 의사에게는 살인 방조죄를 인정했습니다. 국내에서 안락사 논쟁의 시발점이 된 유명한 1997년 보라매 병원 사건입니다.

비슷한 시기 또 다른 검사 B가 있었습니다. 경험은 많지 않았지만 꼼꼼한 일처리로 정평이 난 검사였습니다. 어느 날 아기가 병원에서 사망했다는 변사 보고서가 들어왔습니다. 장이 꼬여서 사망했다는 겁니다. 피해자 가족이 이미 합의를 봤으니 부검 없이 빨리 변사 지휘를 해달라는 의견도 전달됐습니다. 그런데 병원이 너무 빨리 합의를 해준 게 좀 수상했습니다.

"가 봅시다."

B검사는 병원에 가서 아이의 시신을 직접 검시했습니다. 이상한 점이 발견됐습니다. 숨진 아이의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었던 겁니다. 장이 꼬이면 체내 온도가 상승하기 마련입니다. 입술이 파랗게 질리는 경우가 발생하기 어렵습니다. B검사는 현장 검시를 자주 나가 봤기 때문에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장이 꼬여 사망한 사건으로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가족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부검을 지휘했습니다.

아이의 사망 원인은 '알콜 중독'으로 밝혀졌습니다. '아직 걷지도 못하는 꼬마가 무슨 알콜 중독?' 수사해보니 담당 의사들의 잘못이었습니다. 아이의 장이 꼬였으면 장에 식염수를 넣어줘야 하는데 실수로 알콜을 부은 겁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가 알콜 중독으로 숨진 사건이었습니다. B검사는 당연히 과실치사 혐의로 의사들을 기소했습니다.

유병언 추정 변사체
두 검사의 무용담을 소개한 건 유병언 씨 변사 사건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유병언 씨의 은신처에서 2km 가량 떨어진 곳에서 변사체가 발견됐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은 경찰의 실수를 지적합니다. 경찰의 잘못,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더 큰 잘못을 한 건 이 변사 사건을 지휘한 검사입니다. 우리 형사소송법상 변사 사건의 검시권과 지휘권한은 모두 검사에게 부여돼 있습니다. 경찰은 초동 보고 책임이 있을 뿐이고 변사체를 검시해 범죄 연관성을 조사하는 책임은 온전히 검사에게 있는 것입니다.

형사소송법
제222조(변사자의 검시) ① 변사자 또는 변사의 의심있는 사체가 있는 때에는 그 소재지를 관할하는 지방검찰청 검사가 검시하여야 한다

검찰사건사무규칙
제11조(검시) ②검시는 검사가 직접 행함을 원칙으로 하고, 필요한 경우 사법경찰관에게 검시를 명할 수 있으며, 검사는 지체 없이 사체에 대한 처리를 지휘하여야 한다.


한 검찰 출신 법조인은 "과거에는 검사가 현장 검시를 한 달에 몇 건이나 나가나 상부에서 통계를 작성했다. 건수를 집계해서 경쟁을 붙이니 초임 검사들이 서로 검시를 나가려고 했다. 물론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교통사고 같은 건 안 나갔지만 그래도 사건이 아무리 많아도 현장 직접 검시 비율이 15%는 됐던 것 같다"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검사의 철저한 검시와 변사 지휘를 중시하던 기본이 어느 순간 무너지면서 죽은 유병언은 40일 동안이나 돌아다니는 황당한 일이 발생한 셈입니다.

우리의 변사 지휘 체계에 근본적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국내 법의학자의 태두로 불리는 문국진 고려대 의대 법의학 명예교수는 2014년 7월 24일자 [조선일보] 칼럼에서 "(사실상) 검시 실무는 의사가 수행하고 있다"며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처럼 법의관(Medical Examiner)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현장에서 경찰과 함께 검시 업무를 처음부터 끝까지 수행하는 전문적 법의학자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온 나라가 주목하는 중요한 범죄 혐의자가 은신했던 곳 인근의 변사체에 대해서도 이렇게 허술하게 처리한다면 차라리 변사에 대한 권한 자체를 검찰이 포기하는 것도 방법일 것입니다.

기본도 못 갖춘 검찰의 업무 처리 때문에 빚어진 불행한 사태 가운데 하나는 음모론의 전국가적인 창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몇 달동안 돌아다니던 유병언 씨가 갑자기 변사체로 발견된 것이 상식적이지 않다며 여러 가지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국가 권력과 수사 기관에 대한 신뢰는 무너졌습니다. 결국 변사체 검시와 지휘라는 기본적 업무를 소홀히한 검찰의 책임이 매우 큽니다. 기본을 못한 검찰이 음모론을 키운 셈입니다.

문국진 교수는 [조선일보] 칼럼에서 변사체 검시는 국민의 죽음에 대한 국가적 감시다.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하기 위한 엄중한 사법 행위이기도 하다. 정확하고 공정한 사인 규명으로 국민 권리를 보호하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데 검시 목적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국민의 죽음을 제대로 감시하지도 못하는 검찰이라면 국민이 부여한 막강한 검찰권을 감당할만한 자격도 능력도 없습니다. 이번 사건의 진상이 철저히 규명되고 책임 질 사람이 명확하게 책임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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