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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안철수 대표의 길었던 하루

- 7시간 동안 혼자 무슨 생각을 했을까?

[취재파일] 안철수 대표의 길었던 하루
■ 운명의 하루…안철수 "좀 먼저 알아 뭐하겠어요?"

4월 10일 아침 8시 37분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대표가 국회에 출근했다. 기초공천 무공천 방침에 대한 당원투표와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받기 20분쯤 전이었다. 출근길에 기자들이 따라 붙었다.

기자: 당원투표와 여론조사 결과는 보고 받으셨죠?
안철수: 아직 안 받았어요. 모릅니다

기자: (두 조사 결과에 대한) 합산은 이미 시작했는데, 안 궁금하세요?
안철수: 좀 먼저 알아 뭐하겠어요? 어차피 당원과 국민의 뜻에 따른다고 했으니까.

기자: 시나리오는 (무공천 유지 또는 무공천 방침 철회로) 2개 준비하셨어요?
안철수: 안했습니다.

안 대표는 곧바로 당 대표 회의실 옆 대기실로 들어갔다. 잠시 뒤 김한길 대표가 도착했다. 다른 최고위원들도 모여들었다. 오전 9시 5분쯤 당원투표 및 여론조사 관리위원장인 이석현 의원이 도착했다. 이 의원은 곧바로 최고위원회에 비공개 보고를 시작했다. 10여 분 뒤 방을 나온 이석현 의원은 바로 옆 대표 회의실에 모여있는 기자 수십명 앞에서 결과를 발표했다.

'공천해야 한다' 53.4% '공천하지 말아야 한다' 46.6%.

무공천 방침이 철회되고 기초선거 공천이 새로 당론으로 확정됐다.

안철수 공천


■ 안철수 "그것이 국민과 당원의 뜻이라면 따르겠다"…사무실로 직행

이석현 의원의 발표 직후 안철수 대표는 회의실을 나섰다. 영상촬영기자와 사진기자 십수명을 포함해 족히 50명은 되는 기자들이 안 의원의 입장을 물어봤다.

안철수: 대표는 위임된 권한에 불과합니다. 그것이 국민과 당원의 뜻이라면 따르겠습니다.

짧게 한 마디한 안 대표는 1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김한길 대표가 따라 들어갔다. 두 사람은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들어 가려는 의원들이 몇 있었지만 두 사람은 "나가 있어보라"며 둘 만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1시간쯤 뒤 김한길 대표는 외부 일정이 있다며 자리를 떴다. 안철수 대표는 평소와 달리 소속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도 불참했다. 점심은 도시락을 시켜서 방에서 혼자 먹었다. 화장실도 가지 않았다.  오후에는 바로 옆 방에 있던 김한길 대표와도 만나지 않고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냈다.
안철수 김한길

■  7시간 칩거…이어진 발표, "지방 선거 앞장서서 치르겠다"

예상 못한 안 대표의 칩거에 많은 사람들이 당황했다. 대표직 사퇴를 고민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관계자는 "안 대표측에서 오전에 기자회견을 하려고 했는데 김한길 대표가 만류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갑자기 사퇴한다고 나올지 몰라서..." 김한길 대표 측의 한 관계자도 "안 대표가 (사퇴를 포함해서) 깊이 고민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칩거가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안 대표가 대표직을 던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 힘을 더해갔다.

칩거에 들어간지 6시간 넘게 흐른 오후 3시 30분 쯤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실은 오후 4시에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의 입장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공지했다. 안철수 대표의 사퇴 발표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도 이어졌다.

칩거 7시간 째인 오후 4시, 안철수 대표는 김한길 대표와 함께 기자들이 모여 있는 당 대표 회의실에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굳은 표정으로 발표문을 읽은 안 대표는 '공약을 못 지킨 것 사과한다' '당원의 명령은 지방선거에 승리하라는 것'이라며 지방 선거 승리에 앞장서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안 대표는 기자들의 질의 응답을 받지 않고 자리를 떴다.

■ 안철수 대표는 7시간 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렇다면 안철수 대표는 혼자 있던 7시간 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오늘 국회에 나온 안철수 대표에게 물었다.

기자: 어제 뭐하셨어요? 7시간 동안 혼자...
안철수 : 생각 정리하고 회견문 계속 썼습니다

기자: 전화 많이 하셨나? 친한 분들이나...
안철수: 아니요. 그렇지는 않았어요. 회견문 쓰고, 생각 정리했습니다

안철수 대표가 4시에 발표한 회견문을 상당부분 직접 작성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안 대표의 한 측근도 "회견문 초안을 누군가 올렸는데, 안 대표가 대폭 손본 것 같다. 거의 문장도 다 바뀌고 구성도 완전히 바뀌었더라. 뭐 사과하고 선거에 앞장서겠다는 핵심 내용이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라고 말했다.

감정을 정리할 시간도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 대표는 기초선거 무공천 방침의 강행 여부를 당원투표와 여론조사로 결정하는 방안을 확정하기 전까지 김한길 대표 측의 많은 참모들에게 조언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참모들은 자체 조사 결과 당원투표와 여론조사를 해도 '공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될 것이라고 보고했다고 한다. 안 대표가 당원투표와 여론조사 실시 하루 전  "국민과 당원을 믿는다"고 말했던 것도 이런 보고를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안 대표로선 자신의 예상과 다른 조사 결과가 충격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 기초 공천 논란이 "어제 내린 눈"이 되기 위해선…

오늘 아침, 안철수 대표는 기초 공천 논란이 "어제 내린 눈"이라며 더 이상 고민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간간이 웃음도 지었다. 문재인 의원, 정세균 상임고문, 정동영 상임고문, 김두관 전 장관과 손을 맞잡고 '무지개 선대위' 구성도 발표했다. 적어도 겉으로는 완전히 회복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번 논란 이후 정치인으로서 안철수  대표의 가치가 얼마나 상처를 입었는지 지금 당장은 알 수 없다. 안철수 대표가 전면에 나서 치르는 6.4 지방선거의 결과가 나온 뒤에야, 안철수 대표가 얼마나 상처를 입었는지, 또는 상처 없이 여전히 건재한지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의 지지율 뿐 아니라, 자신이 지원하는 후보의 당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정치인이라는 것을 입증해야, 더 큰 정치로의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선거의 여왕' 박근혜 대통령이 그랬듯이 말이다. 

안철수 대표에게는 50여일의 시간이 남아 있다. 50여일 뒤면, 기초선거 무공천 방침 철회가 '어제 내린 눈'인지, 모든 것을 파묻어 버린 폭설이었는지 드러날 것이다. 안철수 대표에 대해 쓰다보면 항상 하는 말이지만, 결국 모든 것은 지방선거 결과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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