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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안철수는 미생(尾生)이 될 것인가?

[취재파일] 안철수는 미생(尾生)이 될 것인가?
안철수는 미생(尾生)이 될 것인가?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가 며칠 전 짧은 트윗을 올렸다. '미생지신(尾生之信)' 네 글자에 불과하지만 품고 있는 뜻은 가볍지 않다.

안철수 미생
미생지신(尾生之信)은 춘추시대 노(魯) 나라의 젊은이 미생(尾生)에 대한 옛 이야기다. 미생과 그의 연인은 어느 날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약속한 당일 미생은 다리 아래에서 기다렸지만 연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마침 소나기가 내렸고 강물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미생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물이 허리춤을 지나 어깨까지 차오르는데도 미생은 교각을 부여잡고 버텼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미생은 결국 불어난 물에 잠겨 숨을 거뒀다.

미생지신에 대한 해석은 오래 전부터 엇갈려왔다. 전국시대의 대표적 외교관인 소진(蘇秦)은 미생을 신의와 절개의 상징으로 추켜 세웠다. 반면 장자(莊子)와 [회남자淮南子]의 저자는 융통성 없고 어리석은 믿음이라고 미생을 비판했다. 그 뒤로도 미생지신은 상황과 관점에 따라 미담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조롱거리로 전락하기도 했다.

안철수 대표의 기초선거 무공천 결정은 미생지신과 비슷한 점이 많다.  우선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는 지난 대선 직전 여 후보가 모두 약속했던 것이다. 안철수 공동대표의 결정은 약속을 우직하게 지키는것이라 칭찬받을만하다. 그러나 여당이 기초선거에서 공천하고,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만 공천하지 않는다면, 기초선거 대패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 것도 현실이다. 심지어 서울시의 25개 구청장 모두를 새누리당에 내줄 수도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현재 25곳 중 19곳의 구청장이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이다.) 물이 차오데도 교각을 부여잡고 놓지 않다가 끝내 숨진 미생과 같은 경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생지신에 대한 해석이 엇갈리는 것처럼, 안철수 대표의 결정에 대한 평가도 입장에 따라 크게 다르다. 어떤 이들은 당장 선거에서의 불리함을 무릅쓰고서라도 약속을 지키겠다는 안 공동대표의 결정을 높이 평가한다. 또 어떤 이들은 약속을 지킨다는 대의명분에만 집착하다 선거 패배를 초래한 어리석은 판단이라고 비판한다. 안철수 대표가 곧 미생이 되어버린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안철수 대표의 결정을 어떻게 평가할까? 적어도 미생에 대해  박 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명확하다. 2011년 세종시법 개정을 놓고 여당 내부에서 논란이 빚어질 때였다. 정몽준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미생지신의 고사를 들어 원안 고수를 주장하는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했다. 박 대통령이 즉각 반박했다. (안철수 대표가 트위터에 링크해 둔 영상의 내용이다)

"반대로 생각해야 되는 것 아닌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생은 진정성이 있었다는 것이고, 그 애인은 진정성이 없었다는 거죠. 미생은 비록 죽었지만 후에 귀감이 될 것이고, 그 애인은 평생을 괴로움 속에서 손가락질을 받고 살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한나라당이 국민에게 신뢰를 잃게 되는 것에 대해서는 (정몽준 대표가) 책임지셔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미생지신을 높이 평가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그러나 '안철수의 미생지신', 기초선거 무공천 결정에는 아무런 반응도 내놓지 않고 있다.

기초선거 무공천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반대 주장도 타당성이 있다. 안철수 대표 역시 한 때 무공천의 부작용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설사 그렇더라도 후보 시절 무공천을 약속했던 대통령이라면 정당공천을 할지 말지에 대해, 또는 공천 문제에 대해 청와대가 의견을 내놓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라도 공식 답변을 내놓는 것이 순리다. 정치가 다람쥐 쳇바퀴 돌듯 똑같은 공방을 주고받는 구태에서 탈피하려면, 상대방의 주장에 인정이 됐든 반박이 됐든 답변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동문서답과 비난만 주고 받는 정치가 이대로 계속된다면 안철수 대표 뿐 아니라 한국 정치 전체가 물에 빠져 죽는 미생의 꼴이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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