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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식당 배기후드에 붙은 '기름때'가 불씨?

[취재파일] 식당 배기후드에 붙은 '기름때'가 불씨?
"서울 파이낸스센터 빌딩 식당에서 불이 났다고?"

도심 한복판, 그것도 30층 고층빌딩에서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소방 상황실로 전화를 걸었다.
자칫 대형화재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불이 큰가요? 인피(인명피해)가 있나요?" 재촉하듯 소방대원에게 물었다.

소방대원은 예상보다 침착하게 답했다.

"아, 일단 식당에서 식사하던 손님들을 모두 대피시켜 부상자는 없는 것 같습니다."

"휴..."

점심 시간 사람들이 몰리는 식당에서 불이 났는데, 다친 사람이 없다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급하게 안도의 한 숨을 내쉬고, 되물었다.

"그런데, 그 큰 빌딩 식당에서 화재는 왜 난 겁니까?"

"아... 배기후드에 붙은 기름때 때문에요."

들려오는 대답에 나도 모르게 헛기침이 나왔다. 기름때? 고작 기름때 때문에 도심 고층 빌딩에 화재가 났다고? 그 많은 사람들이 대피소동까지 벌였는데, 겨우 기름때 때문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 배기후드 기름때가 불러온 화재가 또 있을까?

생각보다 많은 식당 화재들이 기름때 때문에 발생하고 있었다. 지난달 부산 고깃집 화재, 강남역 인근 식당 화재, 속초 생선구잇집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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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런 배기후드 기름때 화재는 불이 나도 재빨리 끄기 어렵다는 거다. 배기후드에서 난 불이 안쪽 배기통로를 타고 올라가 건물 전체로 순식간에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기름때 화재들은 상층까지 불이 번져 올라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화재가 또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주변 식당들을 점검해보기로 했다.

소방대원들과 서로 결연한 의지를 갖고 식당에 들어선 순간, 식당들은 하나같이 주방을 보여주길 꺼렸다. '상호는 안 나갑니다', '얼굴 내고 인터뷰 안 합니다', '기름때는 닦아드립니다', 달래가며 들어간 주방.

식당 주인들의 심정에 이해가 갔다. 연기와 냄새를 빨아들이는 배기후드에는 시커먼 기름때가 끼어있다 못해 아주 찌들어 있었다. 기름때가 화기에 녹아 대롱대롱 매달려 있기도 했고, 배기후드가 아닌 벽에도 기름때가 붙어 있기도 했다.


"왜 기름때를 닦지 않으세요?" 식당 직원에게 물었다. 취재가 아니라, 순수하게 개인적으로 궁금해 튀어나온 질문이었다.

"이게, 기름때를 닦은 거에요. 근데, 닦아도 닦아도, 기름때가 흘러 나와서 소용이 없어요."

예상 밖의 대답이었다. 물론 제대로 청소를 했다면 이렇게 심각하진 않았겠지만, 닦아도 나온다니! 배기후드에 기름샘이라도 있는 건가? 이유가 뭘까 고민하며 주방을 이곳저곳 들여다보니, 답이 숨어 있었다. 바로 배기후드 안쪽의 배기통로였다.

배기통로를 들여다봤다. 상황은 심각했다. 시커먼 기름때가 덩어리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요리할 때 나오는 기름 유증기와 먼지가 섞여 배기후드를 통과해, 배기통로 안에 한 겹 한 겹 쌓여가고 있었던 거다. 그러니, 주방의 뜨거운 화기가 올라오면 배기통로 안에 있던 기름때 덩어리가 녹아서 배기후드 쪽으로 줄줄 흘러나왔던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배기후드를 닦는 게 전부는 아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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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은 의외로 간단했다. 바로 '필터'였다. 배기통로 입구에 필터를 설치해 기름때를 거르는 거다. 배기통로 안을 청소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기름을 많이 사용하는 주방에선 '그리스 필터'를 설치해주면 기름때를 거르는 효과가 더 크다.

주방용 소화자동장치를 설치하는 것도 화재 피해를 줄이는 방법이다. 소화기로 불을 끄기 어려운 배기 통로 내부에 자동으로 소화액을 뿌려 불을 끄는 장치다. 식당에 이 장치를 설치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에선 아직 낮잠을 자고 있는 상황이다.

안타깝게도 내가 찾아간 식당 업주들은 대부분 자동소화장치는 물론, 필터에 대해 잘 몰랐고, 설치한 곳은 더 드물었다. 특히, 백화점이나 큰 빌딩보다 영세한 식당은 더 그랬다. 화재가 이런 식당에서 빈발하는 이유일 것이다.

슬프게도 얼마 후면, 이런 화재는 또 어디선가 날 것이다. 그때는 지금보다 조금은 덜 놀랍지만, 조금은 더 안타깝게 "아, 그 주방 기름때 때문에요?"하고 소방대원에게 물을 것이다. 부디 식당들의 작은 관심으로 그런 일이 더는 없길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불씨 되는 '기름때'…식당 주방 화재 위험 (2014.03.27 8시 뉴스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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