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도전하는 당신이 진짜 '슈퍼맨'

[취재파일] 도전하는 당신이 진짜 '슈퍼맨'
    취재대상을 만나기 전, 기존에 났던 기사를 종합해 읽어보고, 예전에 했던 방송 인터뷰는 회사 서버에 저장된 원본을 다시 들어봅니다. 이동우(44세)씨를 만나러 가기 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동안 그저 ‘눈에 문제가 생겼다’는 기사와 ‘결국 실명했다’는 기사, 얼마 뒤 ‘책을 냈다’는 기사와 서점에서 본 책,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했다는 기사 제목 정도를 봤을 뿐, 자세히 알진 못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를 읽고, 영상을 보며 ‘어쩜, 사람이 이렇게 바른 생각만 할 수 있지, 말도 너무 잘 하시고. 좀 비뚤어진 면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연극은 내 마음의 고향”

     그리고 대학로의 한 연습실에서 5일 저녁 이동우씨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동영상 뉴스는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2279867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씨는 8일 개막하는 연극 ‘내 마음의 슈퍼맨’의 막바지 연습중이었습니다. 연극 ‘내 마음의 슈퍼맨’은 시골 작은 마을에서 ‘내 마음의 슈퍼’를 운영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한 때는 잘 나가던 배우였지만 사고로 시력을 잃은 이 남자에게, 어느 날 열 살 소녀가 ‘자신이 딸’이라며 찾아오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슈퍼’를 운영하는 남자와 ‘슈퍼맨’의 중의적인 제목입니다.
     이동우씨는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시각장애인입니다. 1993년 SBS 공채 개그맨으로 연예 생활을 시작해 ‘틴틴 파이브’로 활동하다 점점 시력이 떨어졌고 2004년 ‘망막색소 변성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010년 실명 판정을 받게 됩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연극 무대에 서는 건 말만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상대 배우와 대사를 주고 받고, 무대 위에서 미리 짜여진 동선에 맞춰 움직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동우씨는 매니저가 녹음해준 대본을 들으며 대사를 외웠습니다. 무대 위에선 시각장애인용 지팡이를 사용합니다. 이 쉽지 않은 도전을 하게 된 이유는 뭘까요?

     <이동우>: “언젠간 이런 연극을 무대에 한 번 올려보고 싶다는 구상을 제가 했어요. 3년 전입니다. 굉장히 많이 생각했고, 굉장히 예쁜 꿈을 꿨어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연습하고, 곧 공연이 올라가는 게 아직도 꿈 같습니다. 연극으로 시작한 모든 사람들은 고향이 어디냐 그러면 연극무대를 다 이야기하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연극을 시작했으니 사실 집 같고, 고향 같고 엄마 품 같고 그렇죠.”
 물론 어려움은 그도 인정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휘둘리진 않습니다.

<이동우>: “쉬운 게 사실은 없어요. 저뿐 아니라 저희 동료 배우들도 다 비장애인이고 저보다 훨씬 더 자유롭지만 나름의 어려움은 다 있거든요. 사람들이 제게 ‘어려운 거 없냐, 안타깝다’고 얘기할 때마다 전 이렇게 말해요.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는다’고. ‘이건 문제예요, 힘들어요’라고 입 밖으로 말을 내는 순간 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돼 버려요. 생각해보면 제가 몸이 지금보다 훨씬 더 건강하고 눈이 좋았을 때도 나름의 어려움은 다 있었습니다. 지금 제 어려움은 어떻게 보면 더 구체화된 거고, 딱 하나로 집중된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이것만 해결하면 되는 거거든요. 오히려 그때보다 자유로운 부분도 있어요.”

“하고 싶은 일, 왜 주저하나요”

이동우
    ‘하고 싶던 일을 하는 것’에 이동우씨는 망설이지 않습니다.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에 게스트로 출연했던 재즈음악가 웅산 씨의 제안으로 1년 6개월 정도를 준비해, 지난 해 재즈 음반을 내고 콘서트도 열었습니다. 또 지난 해 가을엔 철인 3종 경기도 완주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연극 도전까지, 이동우씨는 ‘슈퍼맨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동우>: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구상해서 늘어놓은 것들은 아닙니다. 각자 따로 진행됐던 일인데, 결과를 놓고 보니까 시기가 연이어서 이렇게 나오게 됐더라고요. 이걸 하나로 묶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나중에 하게 된 거죠. 다 좀 달라 보이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나눔’이에요. 철인3종 경기는 저 혼자 도전해서 완주의 기쁨을 혼자 만끽하는 작업 같지만, 저 혼자 가능했겠습니까. 제가 하루에 8시간을 뛰었다면, 저와 똑같이 옆에서 8시간을 뛰어준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용기, 도전, 희망 이런 것들을 나눴기 때문에 제가 가능했던 거죠.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예전에 음반을 내면 ‘사람들이 이걸 사면 난 그 돈으로 집도 사고 차도 살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참 어린 생각이었죠. 그건 나누는 행위가 아니었죠. 음악은 듣는 사람과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함께 나누는 작업이거든요. 연극도 마찬가지죠. “


“도전은 결과가 아니라 시작”

<이동우>:
“저는 이제 도전과 희망을 결과나 성과에 두지 않거든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관객이 올까, 앨범은 얼마나 팔릴까, 철인3종 완주는 할까 이렇게 생각들을 하죠. 그런데 저는 그건 도전이 아니라고 봐요. 도전은 결과가 아니라 시작이거든요. 시작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제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은) 5년 전부터 다이어트 하겠다고 하지만 못하잖아요, 통기타가 한창 유행일 때 나도 기타 좀 쳐봐야지 했는데 못 치잖아요, 그렇게 나이 50,60,70까지 가잖아요. 그거 뭐라고 못하고 삽니까? 못한 이유는 딱 하납니다. ‘될 수 있을까’라는 거죠. ‘만약 안 되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겠어’라는 거죠. 결과, 성과에 우리가 너무 지쳐있어요. 그러니까 조그만 것도 시작을 못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는 거 재미없지 않습니까?”
     마음이 뜨끔했습니다. ‘그거 뭐라고 못하고 삽니까?’ 라는 말이 제 마음을 쿵 쳤습니다. ‘할 수 없을 거야, 해서 뭣 해’라고 스스로 선을 긋고 포기해 버린 수많은 일들이 생각났습니다

  *이동우에게 ‘시각장애’란..

슈퍼맨
     그런데 궁금했습니다. 처음 인터뷰를 하러 오기 전에 가졌던 것과 같은 의문이었습니다. 흔히 쓰는 표현 ‘장애를 극복했다’는 말이 당사자는 불편하지 않을까, 그라고 어떻게 긍정적일 수만 있을까…

<이동우>: “저도 사실 비장애인이었을 때 가끔 언론매체를 통해 장애를 극복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볼 때가 있죠. 그 분들이 ‘내 장애는 더 이상 장애가 아니고 신이 주신 선물이다. 축복이다’ 란 말씀들을 하셨던 게 기억이 나요. 그 때는 정말 막연했습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몰랐습니다. 저 사람은 누가 봐도 불편한 사람이고 굉장히 많은 걸 잃은 사람인데 도대체 뭐가 선물이라는 걸까? 그런데 이제는 제가 그 사람이 돼 버린 거죠. 이제 이해가 가요. 뭐가 과연 선물인지. 이제는 제가 100% 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 있게 요즘 이야기하죠. 제 장애는 이제 장애가 아니라, 큰 선물이라고요. 세상엔 힘든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그런 사람들을 보기 시작한 것도 사실은 눈을 잃고 나서부터입니다. 세상을 보다 넓게,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이해할 수 있게 된 거죠. 이게 얼마나 큰 선물인가요.”
     “찌꺼기처럼 남아 있는 슬픔은 분명히 있습니다. 사실 주변 사람들한테 그런 얘기를 잘 안합니다. 필요 없는 거고, 그 찌꺼기는 제가 또 알아서 치워야 되는 거고. 물리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불편함들, 순간 엄습하는 고통들이 분명 있죠. 그런데 사실 99%를 받아들이고 나머지 1~2%의 찌꺼기는 연연하지 않아도 됩니다. 제 몸에 묻어 있어도 되고, 제 가슴 속에 좀 남아 있어도 됩니다. 그것까지 말끔히 치우고 싶은 건 과욕이라고 봐요. 왜냐면, 그 정도의 고민과 아픔은 누구나 다 있는 거니까. 그래서 괜찮습니다. 그래서 전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아요. 저도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르고 많이 슬퍼지죠. 그런데 그냥 털어버려요. 왜냐하면 할 게 너무 많아요. 아파하고 욕하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당신은 슈퍼맨?

‘슈퍼맨 프로젝트’, 그리고 이번 연극 ‘내 마음의 슈퍼맨’… 영화 속 슈퍼맨은 하늘을 날아다니고 악당을 물리칩니다. 이동우씨는 어떤 의미로 자신의 도전에 ‘슈퍼맨’이라는 이름을 붙인 걸까요.
<이동우>: “ “망설임 없이 도전하는 사람,
결과나 성과 두려워하지 않고 먼저 움직이는 사람,
마음이 시키는 대로, 가슴이 시키는 대로 반응할 줄 아는 사람,
계산부터 하고 움직이지 않고 움직이고 보는 사람,
제가 생각하는 슈퍼맨입니다.”

....짧은 방송 뉴스에 다 담지 못한 인터뷰를 이동우씨의 말 그대로 따옴표 안에 담았습니다.
마음 속에 오래 남는 인터뷰이들이 있습니다. 이동우씨도 그럴 것 같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