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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층간소음은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취재파일] 층간소음은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속옷을 벗었으면 세탁기에 넣어야지, 너는 왜….”
“아, 엄마는 정말….”
                                                                                  -엄마와 아들로 추정되는 대화

“잘났다, 잘났어. 아예 집을 나가지!”
“당신이 해준 게 뭔데? 어디서 나가라 마라야!”
                                                                                  -부부로 추정되는 대화

몇 년 전 바닥에서 잠을 자다 들린 말소리입니다. 처음 대화는 꿈인 줄 알았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는 바닥에 한쪽 뺨을 대고 자고 있었는데, 아래층 사람들의 얘기가 귀를 타고 흘러온 것이었습니다. 뒤의 대화는 역시 누워 있다가 혹시나 하고 귀를 대봤다가 들어버린 ‘부부싸움’ 소리였고요.

층과 층 사이 콘크리트 두께가 그래도 상당할 텐데 말소리가 그렇게 또렷하게 들릴 줄은 몰랐습니다. 당황을 넘어 다소 충격적이었다고 할까요? 그 이후에도 아래층 사람들이 웃고 떠들고 다투는 소리를 제가 바닥에 누워 있는 동안은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했지만 몇 번 이사를 거친 뒤로는 차츰 기억에서 사라졌습니다.

그 ‘사건’이 문득 다시 떠오른 건 층간소음을 취재하면서부터였습니다. 환경부가 내놓은 <강화된 층간 소음 기준과 배상액>과 관련된 취재였습니다. 층간소음 때문에 괴로운 분들 정말 많다는 걸 이번 취재를 통해 알게 됐는데요, 소음을 내는 사람과 그 소음을 듣는 사람이 느끼는 시끄러움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그 어떤 소리든 ‘내가 듣고 싶지 않은 소리를 듣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건 누구나 공감하실 겁니다.

바닥에서 흘러나오는 이웃의 대화. 베개를 잘 베지 않는 저로서는 분명히 듣고 싶지 않은 ‘소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정색하고 말소리를 줄여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차라리 제가 침대를 장만하는 게 더 옳았을 테지요. 겨우 이런 소음조차 참기 힘들 때가 있는데 하물며 생활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음악 소리, 의자 끄는 소리, 믹서기와 청소기 돌리는 소리, 쿵쾅쿵쾅 뛰어다니는 소리 등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어떨까요?

제 글은 그렇다고 아이를 두고 있는 부모나 집에서 피아노를 치는 사람들을 죄인이라고 말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유치원생 어린이가 있는 집은 독채를 얻어라’,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사람들은 제발 아파트를 떠나라’ 등등 누리꾼들의 막무가내 독설에 공감하는 것도 아닙니다. 층간소음의 피해자는 듣고 싶지 않은 소리를 들어야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살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생활 소음을 이웃에게 그대로 전달할 수밖에 없는 사람까지 포함하는 개념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해자는 누구일까요? 저는 단언컨대 국가라고 생각합니다. 층간소음이 이웃 간의 활극으로 번지는 등 사회 문제가 되고 나서야 대책 마련에 들어가는 건 못나도 참 못난 일 아니겠습니까? 그린벨트나 고도 제한 문제처럼 층간소음 문제 역시 진작 엄격한 규정을 적용했더라면 우리들이 과연 앞집, 옆집, 윗집 아랫집에서 나는 듣고 싶지 않은 소리를 들으며 살았을까요? 환경부는 뒤늦게 두 가지 대책을 내놨습니다. 하나는 층간소음도의 기준을 낮추는 방식(예를 들어 원래는 10을 초과하면 층간소음에 해당하는 기준치를 7정도로 낮춘 것)이고 나머지는 배상 기준(피해 본 사람에게 1인 당 최대 80여 만 원 지급하는 것)을 마련한 것입니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국민의 기대에 한참 못 미칩니다. 층간소음의 기준치를 너무 강화한 나머지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아도 자동 측정되는 ‘배경소음’ 기준치에 근접하게 됐습니다. 이웃 간의 분쟁을 줄이려고 만든 정책이 조금만 시끄러워도 기준치를 넘었다며 분쟁을 더 조장하게 되는 건 아닌지 따져 볼 일입니다.

배상 기준도 그렇습니다. 배상을 받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 개인이 최대 70만 원의 측정비를 지불해야 합니다. 자, 3년 정도 층간소음에 시달린 사람에게 80여 만 원이 지급되는데 이걸 받기 위해서(기준에 못 미쳐 못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70만 원을 내야 한다면 도대체 누가 구제를 받으려 하겠습니까? 민원에 따른 비용을 모두 국가가 처리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측정비와 배상액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올 지경입니다.

게다가 현행 층간소음을 측정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바닥에 물건이 떨어진다든가 벽에 못을 박는다든가 할 때 즉자적으로 들리는 소리(고주파)로만 층간소음을 재왔습니다. 하지만 이 소리들은 콘크리트와 철근을 타고 사방으로 퍼지면서 진동(저주파)을 일으키는데 이게 층간소음의 최대 7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큽니다. 숭실대학교 배명진 소리공학연구소 소장은 “층간소음의 주범은 저주파”라며 “저주파를 불규칙적으로 반복해서 계속 듣게 될 경우 두통과 어지러움, 멀미 등이 나타난다”고 말할 정도로 층간소음에 있어서 저주파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환경부는 전문가 집단에 의뢰한 결과 고주파로만 측정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고요. 그렇다면 모든 주택의 경우 바닥재 성능 시험을 거칠 때 왜 고주파뿐만 아니라 저주파 등 모든 소음까지 고려해 측정하는 걸까요? 환경부가 자문해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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