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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구로동 화재'서 근로자 2명 숨진 이유 알고 보니…

[취재파일] '구로동 화재'서 근로자 2명 숨진 이유 알고 보니…
얼마 전 서울 도심 한 가운데에서 대낮에 일어난 화재 사고 기억하시죠? 지난 달 26일 서울 구로동에서 허모(60) 씨와 장모(40) 씨 두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권모(46) 씨 등 9명을 다치게 했던 복합건물 화재 말입니다. 사고 이후 현장 감식부터 관련자 조사, 수사 결과 발표까지 일련의 과정이 뉴스로 보도됐습니다만, 그게 다였습니다. 사고는 일반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사상자에 대한 안타까움도 조금씩 바래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서 전국 건설 노동자의 안전 문제에 천착해온 건설노조 박종국 국장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습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구로동 화재’로 이어졌고, 여기서 보도의 단초를 얻었습니다. 요약하자면, 구로동 화재 현장에서 근로자 두 명이 숨진 장소가 바로 안전교육장이었는데 그 교육장이 화재에 너무나 취약한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졌다, 그리고 전국 모든 안전교육장이 다 그런 실정이라는 얘기였습니다.

안전교육장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리면,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공사 책임자는 주기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작업 수칙과 화재 방지 및 대피 요령 등을 교육시키도록 돼 있습니다. 다만 많은 노동자를 상대로 일일이 교육할 수 없기 때문에 공사 책임자가 임의로 시설을 만들어 단체 교육을 하고 있는데 그 임의 시설이 안전교육장입니다. 그러니까 교육은 법적 의무이지만, 안전교육장 설치는 자의적인 영역이라는 말이지요.

“당신들 안전해야 한다”고 교육하는 장소에서 근로자들이 숨진 이 역설이 제겐 너무나 황당했습니다. 사고 경위를 살펴보니, 숨진 근로자들은 화재 당시 안전교육장 안에 있었는데 순식간에 화염과 유독가스에 휩싸여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바로 안전교육장이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진 가건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천 냉동창고 화재와 국립현대미술관 화재 모두 이런 샌드위치 패널 같은 가연성 자재가 참극의 원인이 됐었죠.

화재 구로 건설현장


건설 현장에 있는 안전교육장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취재 목적을 밝히고는 도저히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현장 노동자들이 촬영해온 영상을 하나하나 살펴봤더니, 정말 하나같이 교육장은 모두 샌드위치 패널이나 우레탄폼으로 지어져 있었습니다. 제2롯데월드 건설 현장, 마곡지구 재개발 건설 현장, 서울과 성남에 걸쳐 이뤄지는 위례신도시 건설 현장, 아현동 재개발 건설 현장…. 뿐만 아니라 현장 사무실과 협력 업체 사무실, 함바집(건설 현장에 있는 식당) 등 임시로 지어진 시설은 모두 이런 가연성 자재를 쓰고 있더군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돈이었습니다. 어차피 교육장은 공사가 끝나면 철거해야 할 시설인데 굳이 돈을 더 들여서 방재가 되는 자재를 쓸 이유가 없었던 겁니다. 게다가 안전교육장 설치에 대한 법적 기준조차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사고가 나더라도 책임질 일이 없다는 생각도 한몫 작용한 것이고요.

공사 책임자들에게 굳이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실천하라”는 불편한 요구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안전교육장만이라도 이름에 걸맞게 화재에 ‘안전한’ 자재를 쓰는 것이 멀리 보면 책임자들에게도 유리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공사 현장 내 안전교육장을 촬영한 영상을 보니까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진 교육장 주변에서 용접을 하고, 쇠를 자르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방수용 기름을 담은 드럼통도 곳곳에 널려 있었습니다. ‘구로동 화재’는 용접용 불꽃이 가연성 자재에 옮겨 붙어 일어났다는 사실 알고 계시죠? 이천 냉동창고 화재의 책임은 아직도 소송 중에 있고, 일부 책임자들에게 거액의 배상금을 물리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우를 공사 책임자들이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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