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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백사장으로 밀려온 오징어 치어 떼…방사능 때문? 쓰나미 징후?

[취재파일] 백사장으로 밀려온 오징어 치어 떼…방사능 때문? 쓰나미 징후?

지난 3일 한적한 겨울 바닷가인 강원도 속초해변. 파도마저 잔잔해 조용하고 한가롭게 느껴지던 겨울 백사장에 때 아닌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산책 나온 주민과 몇몇의 관광객들이 분주히 해변을 누비며 봉지와 플라스틱 통에 뭔가를 열심히 주워 담고 있었다. 대부분 맨손이었지만 언제 어디서 구해왔을지 모를 뜰채나 족대까지 들고 와 해변을 누비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이 12월의 차가운 겨울 바닷물도 마다않고 뛰어 들어간 이유는 바로 오징어 때문이었다. 그것도 아직 한참이나 덜 자란 오징어 치어를 줍기 위해서.

오징어 치어는 몸길이가 4~5cm 정도로 아주 작았다. 2km가 넘는 백사장은 물론 주변의 갯바위 틈과 바다 속 해초에도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대부분 죽었지만 일부는 살아서 작은 지느러미를 움직이며 헤엄치고 있었다. 어림잡아 수 만 마리는 돼 보였는데 “널려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먼저 줍는 사람이 임자였다. 누구는 오징어 치어의 부드러운 맛을 보기 위해, 또 누구는 바다낚시에 쓸 미끼로 사용하기 위해 줍는다고 말했지만 모두들 자연에서 뭔가를 얻어 간다는 수렵, 채집의 즐거움에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징어 치어가 해변으로 몰려온 건 이곳에서 평생을 살아온 어르신들조차 처음 보는 일이라고 했다. 사실 강원도 동해안에는 이와 비슷한 이벤트가 가끔 벌어지곤 하는데 그 주인공은 대부분 멸치와 곤쟁이다. 둘 모두 크기가 아주 작다 보니까 바다 속에서는 집단으로 몰려다니면서 생활하는데 가을이나 겨울철 고등어나 돌고래 같은 포식자에 쫓겨서 해변 근처까지 도망 왔다가 파도에 밀려 백사장으로 밀려오곤 하는 것이다. 그런데 깊은 바다에서 살고 있는 오징어 치어가 백사장으로 밀려온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백사장 새끼 오징어

더군다나 오징어는 대표적인 난류성 어종이 아닌가? 우리가 알고 있는 오징어의 공식이름은 사실 ‘살오징어’인데 이 살오징어는 여름부터 가을까지 동해를 지나 러시아 수역까지 이동했다가 다시 가을철 남하를 시작해 겨울이면 제주와 동중국해까지 이동하는 회유성 어종이다. 그래서 요즘 같은 겨울이면 강원도에서는 아주 조금씩만, 그것도 다 자란 성어가 잡히는 게 보통인데 알에서 부화한지 1~2달 밖에 안 된 어린 오징어가 해변으로 밀려왔다니 충분히 놀랄만한 일인 것이다. 

쓰나미가 일어날 징후라느니, 일본 방사능의 여파니 하는 무책임한 말들이 많은데 전문가들은 바닷물의 용승현상 때문에 벌어진 일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용승현상은 국지적으로 강한 바람에 의해 바다의 표층수가 먼 바다로 이동할 때 그 영향이 차츰 중층과 심층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쳐 심층의 물이 표층부근으로 상승하는 현상을 말한다고 한다. 오징어는 주로 중층을 떠다니며 생활하는데 부화한지 1~2달 밖에 안 된 어린 오징어는 유영능력이 떨어져 이 상승하는 중층수를 따라 표층까지 올라온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수온이 12 ~ 13도 근처에서 살던 오징어 치어가 표층까지 올라왔을 때 수온까지 낮아지면 활동성이 크게 떨어져서 파도가 치면 백사장까지 밀려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달 하순 속초 지역의 표층 수온은 갑자기 낮아져 9~10도 근처에 머물렀다고 한다.
오징어 떼죽음 캡쳐

그렇다면 이런 용승현상은 분명 과거에도 있었을 텐데 왜 지금까지 오징어 치어가 백사장에 나타난 적은 한 번도 없는 것일까? 일리 있는 질문이다. 그래서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 박종화 과장은 용승현상에 지구 온난화의 영향도 작용한 게 아닌 가 조심스럽게 추정하고 있다. 오징어의 주 산란장은 지금까지 일본의 큐슈 남서쪽과 동중국해 부근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남해와 경북의 남쪽 바다에서도 부분적으로 산란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이런 이유 때문에 강원도 바다에서는 오징어 치어를 보는 게 힘들었다. 그런데 지구 온난화로 바닷물 수온이 올라가면서 이 산란장소가 강원도 근처까지 올라오지 않았을까 추정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지금까지의 사실만을 놓고 추정한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찾아서 연구해 봐야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유야 어째 됐든 호젓한 겨울 바다를 찾았다가 예상하지도 못한 추억 거리가 생긴다면 꽤나 가슴 설레고 즐거운 일일 것이다. 태어나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한 어린 오징어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일상의 스트레스를 벗고 재충전을 위해 바닷가를 찾은 관광객들만 생각해 본다면 이런 깜짝 소동이 종종 벌어지면 좋을 것 같다. 바닷속 깊은 곳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시무시한 재앙이 시작되는 전조만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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