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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호랑이, 코뿔소, 개코원숭이 탈출…다음은?

안전불감증, 땜질실 개보수 관행 문제..관람객은 "알아서 조심"?

[취재파일] 호랑이, 코뿔소, 개코원숭이 탈출…다음은?
호랑이가 탈출하더니, 이번에는 흰코뿔소가 탈출했답니다. 개코 원숭이까지 탈출했답니다. 해외 토픽? 아닙니다. 아시겠지만 서울대공원 동물원 한 곳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아이와 함께 동물원 나들이 계획 세우신 분들, 불안하시죠? 일정을 취소해야 할까 고민하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흰코뿔소

여기서는 흰코뿔소 사고 위주로 서울 동물원의 동물 관리 실태를 지적해보려 합니다.

지난해 8월 5일이었습니다. 저녁 8시 40분쯤, 사육사들이 '쿵쿵' 육중한 물체가 벽을 들이받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70살먹은 할아버지 흰코뿔소 코돌이(35)가 내부 우리에서 빠져나와 맞은편 창고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었던 겁니다.

사육사들은 나뭇가지와 소방호스로 물을 쏘아 코돌이를 움직이려 했지만, 흥분한 코돌이는 창고 안에서 난동만 부릴 뿐이었죠. 고령의 코돌이는 결국 2시간 반만에 심장마비로 숨졌습니다.

코돌이는 우리에서 어떻게 빠져나왔을까요? 간단합니다. 수동잠금장치가 안 잠겨있었던 겁니다. 그냥 '닫혀있기만 한 문'을 밀고 나온 겁니다. 너무 단순한 이유라 어이가 없는데, 동물원 설명을 들어보면 더 황당해집니다."사육사가 먹이를 주고 나오다 잠그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평소에는 철저하게 잘 잠급니다. 그날만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호랑이

정말 '그날만' 그랬을까요? 호랑이 탈출 사고 때도, 비슷하게 이런 수동 잠금장치를 소홀하게 다뤘다가 사육사가 중태에 빠졌습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다 결국 인명 피해로 이어진 겁니다. 지난 달 10일에는 개코 원숭이마저 방사장 담을 넘었습니다. 서울대공원 동물원 관계자조차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라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누가 봐도 문제, 당사자들도 문제를 인정할 밖에 없는 상황인 겁니다.

안일한 인식에 더해서, 시설이 노후한 것도 잇단 사고에 한 몫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서울 동물원, 내년이면 벌써 문을 연지 30주년을 맞습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대대적인 개보수 작업은 단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상시점검'이라는 말로 포장하지만, 따지고 보면 땜질식으로 '그 때 그때 점검하면 그만' 식의 관행이 계속돼 온 겁니다. 당연히 여기저기 탈이 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곰 우리에서는 콘크리트가 파손됐고, 맹수 우리에서는 물이 샙니다. 이런 것들이 맹수들의 분노를 일으키고, 스트레스를 유발해 돌발 행동을 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정밀 안전 진단 결과 대부분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노후된 시설"이어서, "개선이 시급"하다는 결론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 " 부분은 서울대공원이 내부 보고서 문구를 그대로 옮겼습니다.)

저도 두 살 아이가 있는 엄마라서 동물원 종종 가게 됩니다. 서울 동물원 올해도 벌써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취재를 하다보니 불안합니다. 안전성에 대한 대대적인 인식 전환, 시설 재정비 없이 지금 이대로의 동물원이라면...매일 일어나는 사고는 아니니 "운 나쁘지 않으면 괜찮겠지"하고 가야할까요? 아이에게 호랑이, 코뿔소, 원숭이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또 가기야 하겠지만 개운하지가 않습니다.

코뿔소는 이미 죽었고, 사육사는 중태에 빠졌습니다. 이미 터진 사고를 되돌릴 순 없습니다. '관람객 모 모 씨가 우리를 탈출한 맹수에게 중상을 입었다' 부디 이런 식의 기사를 쓰게되는 일은 없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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